[세상 읽기] 미완의 전투기를 도입한다면? 무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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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2년 6월7일자

등록 : 2012.06.06 19:22 수정 : 2012.06.06 19:22

 

 

미국제 F-15K와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가 한국의 차기 전투기로 경합을 벌이던 2002년 3월, 당시 대학교수이던 홍규덕씨는 국내 한 일간지에 기고한 시론에서 “단종이 확실시된 구세대 전투기(F-15K)를 차세대 전투기 사업 대상으로 선정한다는 것도 최근 가뜩이나 높아진 국민들의 반미정서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적고 있다. 그의 우려대로 한달 뒤인 4월에 당시 김대중 정부가 F-15K를 선정하자 더욱 고조된 반미감정으로 현실화되었다. 이것이 그해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홍 교수의 시론에는 “좋은 무기를 싸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사시 부품 공급이나 연합작전의 효율성, 후속 무기체계의 원활한 공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며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와 경쟁을 주문한다. “조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게 그의 인식이었다.

그랬던 홍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정책에 깊이 개입할 수 있는 국방부 국방개혁실장으로 진출하였다. 국방정책과 운영 전반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그런데 현재 공군의 F-15K 운영 실태를 보면 구형 전투기에 대한 10년 전 홍 실장의 우려는 거의 적중하였다. 2005년부터 한국 공군에 인수되기 시작한 F-15K 60대 중 48대가 인수 당시부터 ‘부품 갈아끼우기’, 즉 다른 전투기의 부품을 빼내서 부족한 부분을 충족시키는 ‘동류전환’에 돌입하였다. 부품이 제때 조달되지 않아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동류전환을 하게 되면 전시 임무가 아니라 평시 임무를 수행하는 데도 지장이 초래된다. 전투기 운용에 후속 보완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고려하여 무턱대고 기종을 선정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라는 점은 누구보다 홍 실장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10조원대에 육박하는 현 정부의 전투기 구매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현재 청와대와 국방부는 올해 10월에 반드시 전투기 기종을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제 전투기, 특히 F-35와 F-15SE는 개발되지 않은 미완의 전투기라는 점에서 그 우려는 더 크다. 전투기 기종을 평가하는 데 있어 비행시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올해 전투기 기종 평가에서 운용적합성 평가 269개 항목 중 실제 비행시험은 한 개도 없고, 합동작전능력과 상호운용성에 대한 34개 항목도 실제 비행시험은 생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투기 성능 측정 115개 항목에서도 실제 비행시험은 이착륙 거리를 측정하는 3개 항목밖에 없다. 나머지는 미국 정부의 보증서나 서류평가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이 한국에 팔려는 정부간 거래 방식(FMS)에 의하면 개발중인 기종의 성능과 가격은 보장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F-35, F-15SE, 유로파이터 3개 기종별로 운용적합성 평가는 단 4일, 서류상 평가에 불과한 기종 평가는 단 4주에 마친다는 계획이다.

단 한번도 탑승해보지 않은 전투기를 부실한 검토를 거쳐 정권 말기에 사겠다는 계획에 대해 10년 전 홍 실장이 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한지를 필자는 묻고 싶다. 만일 유효하다면 자신의 직을 걸고 이를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고 대다수 전문가가 뻔히 아는 작금의 무기도입 문제점에 대해 ‘침묵하는 공모’가 이어진다면 그 피해는 누가 감당하게 되는 것인가? 미국의 ‘선의’ 하나만 믿고 10조원이든 20조원이든 퍼주는 것이 정권 말기의 한-미 동맹이라면 이런 동맹은 한국 안보의 자산이 아니라 다음 정부가 짊어져야 할 부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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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