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인터뷰

  D&D Focus 2009년 6월호

 

이제는 통일의 눈높이 낮출 때



중국식 실용주의 


이번에 백용기 회장의 대만 방문을 수행한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월 15일 왕금평 중국 입법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얼마 전 작고한 미국의 사무엘 헌팅턴이라는 학자는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번의 권력교체라는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만과 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두 번의 정권교체를 하면서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두 나라는 분단국가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두 나라가 서로 합심하여 공동의 문제를 연구하고 국제적으로 공조한다면 동아시아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때 기자는 동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거시적 전망을 설파하는 임 교수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타이페이 공항의 한적한 오후. 기자는 급히 취재수첩을 들고 임 교수를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 앞으로 중국과 대만 간의 문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장개석 이래 대만 국민당의 대 중국 기본노선은 전통적으로 공격적인 통일론이었다. 그런데 야당인 민진당의 천수이벤이 집권한 8년은 대만이 ‘타이완 공화국’으로 독립한다는 것으로 기본노선이 바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과 대만 간의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이 집권한 최근에 와서 통일에 대한 언급이 없었음에도 많은 진전이 있고, 양안관계도 급격히 호전되고 있다고 본다. 다시 예전의 긴장관계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 양안 관계가 급격히 발전된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바로 중국식 실용주의다. 사실 마잉주 총통은 실용주의라는 표현 자체를 쓰지 않는다. 중국과 통일문제나 정치적인 대화도 없다. 그럼에도 모든 문제를 실용적으로 풀어나간다. 실용주의의 핵심은 대만의 자본가다. 이들을 주축으로 중국과 소위 3통(통행, 통상, 통신)과 같은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이 3통이라는 것은 정말로 소박한 것이다. 쉬운 문제를 먼저 풀어가다 보니 거창하게 통일을 말하지 않아도 통일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자유로운 왕래와 친지 상봉이 가능한 양안 간에 불편한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여러 민족을 다스리는 제국을 운영해 본 경험에서 나오는 중국식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놀라왔다.



눈높이를 낮춰 소박하게 접근


- 양안관계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교훈을 도출한다면?


통일의 눈높이를 낮추자는 것이다. 거창한 체제나 정치문제 같은 것들은 후세로 미루고 자유롭게 왕래하고 친지가 만나며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이 양안관계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우리의 경우는 남북이 정부 간에 많은 대화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실천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반면 중국과 대만은 정부 간에 별다른 대화가 없었음에도 수백만이 서로 불편 없이 왕래하며 무역액이 넘치고 있지 않나? 통일을 말하지 않았으되 '사실상 통일 상태(state of union)'로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남북문제를 이념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통일문제, 체제문제 같은 정치적 문제들이 실질적 교류를 가로막아 왔다. 그러한 정치문제로부터 현실적인 문제로 우리의 눈높이를 대폭 낮추어야 한다.


- 대만이 중국과 화평을 이루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화해와 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트렌드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대북 강경 내지는 무시정책으로 나가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세계 주류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6․15 공동선언을 하고 클린턴과 공조하면서 북한을 연착륙(Soft-landing)하려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부시가 등장하면서 대북 강경정책을 펴고 우리와 엇박자를 냈다. 우리의 힘은 원천은 동맹이다. 미국에 대한 ‘편승외교(band-wagon)’가 북한을 관리하는 동력이 된다. 그걸 갖고 김정일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 비단 북한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국제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프간에서 우리 국민이 피랍되었을 때 외교부 장관이 왜 아프간으로 달려가나? 미국에 달려가야지. 우리가 미국과 친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남북관계 건 외교 건 잘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는 다른 의미로 오바마 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남북관계 문제도 그렇고 소고기 문제, FTA 문제 등 여러 가지가 그렇다.


경제적 낙관주의, 정치적 비관주의


- 동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해 입법원에서 말씀하신 것에 인상 깊었다. 앞으로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통합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동아시아는 경제적으로 급속히 통합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갈등적 요소가 많은 이중적 상황이다. 동아시아 역내 교역(intra regional trade)과 투자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비율이 53%로 EU 51%를 능가하고 북미, 즉 NAFTA보다도 높다. 이렇게 역내 교역과 투자가 활발한 가운데 경제적 통합이 급속히 진행되는 반면에, 정치적인 면으로 보면 아직도 내셔널리즘이 대두되어 장애물을 조성하고 있다. 독도 문제가 바로 그런 사례다. 특히 안보문제, 군사적인 문제로 옮겨가면 아직도 긴장요인이 많아 정치적인 협력은 앞으로도 요원한 상태다.


- 말씀을 듣고 보니 지역 통합에 있어 경제적 낙관주의와 정치적 비관주의라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느껴진다. 결국 경제가 정치가 발목 잡혀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민주주의 발전이 국가 간의 교류와 평화를 촉진시키는 킨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정착된 바탕 위에서 장기적으로 안보 공동체, 즉 국가연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아직은 요원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아래로부터 교류와 협력을 촉진시킴으로써 장기적인 전망의 토대를 형성해야 한다.


임 교수는 5월 14일 대만 외교부를 방문하였을 당시 하립원 외교부 차장과도 이 문제를 토론한 바 있다. 당시 하립원 차장은 “한국의 전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인의 평화에 대한 성취의지를 과시한 것”이라며 한국의 햇볕정책에 대해 깊은 인상을 피력했다. 더불어 그는 “에너지와 환경문제와 같은 지역적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대만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임 교수는 정치학에서 말하는 ‘기능적 통합이론’을 설명하며 “한국과 대만의 민간교류가 양국 사이의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 앞으로 한국과 대만 관계에 대해 전망하신다면?


한국은 장개석의 도움으로 독립을 한 나라다. 이렇게 오랜 형제의 의리를 저버리고 한국은 예의도 없이 거칠게 대만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잉주 총통이 “한국과 대만의 관계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이 사라졌다”고 말할 때 나는 강한 희망을 느꼈다. 그 메시지는 매우 강렬한 것이었다. 이제 한국이 적극적으로 예전의 신의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만 한다면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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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