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붕괴된 신화, 69만 미 지원군 국제안보

 

b0050805_4a2816a2dfc7f.jpg 우리 사회의 동맹주의자들은 미국이 엄마 품처럼 따뜻하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한국이 안보위기에 처하면 미군이 69만 명의 병력과 2300대의 항공기와 5대의 항모전단을 이끌고 달려와 도와준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렇게 착하고 고마운 ‘엉클 샘’은 이제 없다. 다름 아닌 <조선일보>가 1월 6일자 지면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이 신문은 지난 1월 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미국의 새로운 국방전략인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유지 : 21세기 방위를 위한 우선순위’에 대해 “재정 위기에 처한 미국이 지상군 병력을 감축하면서 2개의 전쟁전략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 미 증원군 규모는 10~2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69만 명의 증원군을 전제로 한) 작전계획 5027도 수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보도는 생뚱맞다. 69만 명의 증원군이라는 수치는 냉전의 절정기인 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다. 당시 미군은 240만 명인데 지금은 140만 명이다. 냉전의 마지막 시기인 91년의 걸프 전쟁 때 미군이 동원한 병력은 약 50만 명이다. 걸프전 이후 미군은 어떤 전쟁에서도 이런 대군을 동원한 적이 없다. 본격적인 군 감축을 추진했던 클린턴 정부와 부시 정부에서는 미국이 이렇게 많은 병력으로 한국을 지원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단 한 번도 보장한 적이 없다. 69만명의 증원병력 목록인 시차별부대전개목록(TDFDD)은 한국군에게 철저히 비밀로 하여 우리는 그 내용은 알 수가 없었고, 막연히 미국의 선의에 우리의 안보를 의존해왔다. 다만 94년에 평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하면서 미 측이 신속억제전력(FOD)을 제공한다고 하였지만 이것도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후로 미국은 69만 명 지원이라는 입에 발린 립 서비스조차 우리에게 한 적이 없다. 이미 20년 전부터 이런 상황이었는데 ‘69만 명 증원군’이라는 전설과 환상이 무너지자 충격을 받은 듯한 보수언론의 보도는 무지의 소치인지, 순진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대규모 군축을 진행하면서 냉전 이후에는 대규모 지상전을 수행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판단했다. 오죽하면 군사력을 유지하는 명분으로 인도주의 지원과 같은 '전쟁 이외의 작전(OOTW : Operation other than war)'을 군대 유지의 명분으로 추가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 시기부터 ‘냉전형 붙박이 군대’라고 할 수 있는 해외에 전진 배치한 대규모 병력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미군을 본토로 불러들여 신속대응군으로 재편한다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도 이 당시였다.

이미 이 당시에 미군의 주요 전략가들은 ‘몇 개의 대규모 분쟁’이라는 식의 고강도 전쟁에 집착하는 군부를 ‘냉전의 유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후 보수적인 성향의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럼스펠드 장관은 군 감축에 더욱 가속을 붙이기 시작했다. 9․11을 겪은 미국은 안보의 중심은 ‘본토 방어’로 전환하면서 해외 미군 주둔에 대해 부정적인 정책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샘 탱그레디(Sam J. Tangredi) 같은 학자는 클린턴 정부 당시에 입안된 합동비전(Joint Vision 2010, 2020)이 신기술의 이용을 간과한 잘못된 정책으로 평가하였다. 이미 이 시기에 ‘몇 개의 전쟁’이라는 패러다임은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앞으로의 분쟁 스펙트럼(SOC) 모델은 미국의 ▲생존 이익 ▲절대이익 ▲가치이익에 의해 구분되는 새로운 임무계층모델(HOM : Hierarchy of Mission)으로 전환되는 조짐을 보였다.  

새로운 군사과학기술과 현대화된 첨단장비를 이용하여 분쟁지역에 미군을 신속히 투입한다는 사상은 군사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되었다. 현대화된 미군의 투사(Projection) 능력을 핵심으로 다양한 분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취지는 4주기 국방검토(QDR)에서 구체화되었는데, 얼핏 미군이 다양한 분쟁에 개입한다고 되어 있으나 그 실상을 보면 전 세계적인 감시정찰을 수행하는 본토의 미군이 신속하게 소규모로 다양한 분쟁에 개입하는 전략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는 럼스펠드는 13만 명의 병력으로 개전을 했으며, 3주 만에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 당시 병력이 적다고 불평하던 에릭 신세키 육군총장은 “현대전을 모른다”며 럼스펠드로 공격받고 전격적으로 경질되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우위를 달성한다”는 콜린 파웰의 독트린도 무시되었다. 과연 전쟁은 럼스펠드의 현대적 전쟁관과 프랭크스 중부군사령관의 급한 성격이 접목되어 속전속결로 끝났다. 더 이상 미군의 현대적 군사과학기술 앞에 경쟁자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추세가 뻔히 드러나는 마당에서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미군이 냉전시대와 같은 지원자라는 환상에서 단 한 차례도 깨어난 적이 없었다.

여기에서 탄력을 받은 럼스펠드는 합동전력사령부(JFCOM)를 미군 군사변혁의 심장과 엔진으로 삼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몰아주었다. 미군 병력의 80%를 통제하는 이 부대는 2007년에만 560억불의 예산을 사용하며 미국의 육․해․공군의 병력을 융합시켜 새로운 합동부대로 편성하고, 해외 파병을 전담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사령부가 2006년에 한반도 전쟁계획을 재검토한 내용은 우리 보수 세력이 알면 기절초풍할 만 한 것이었다.

우선 69만 명의 병력이 동원된다는 한반도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은 한마디로 쓰레기라는 것이다. 이 사령부는 한미연합사령부가 전 세계 미군사령부 중에 유일하게 2차 대전 식의 재래식 전쟁교리가 보존되어 있는 사령부라는 점에 대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전 세계 미군이 다 폐기한 재래식 전략을 고수하며 전통적인 지상군 체제를 유지하려는 한미연합사령관이 고와 보일 리가 없었다. 합동전력사는 한미연합사령부의 수구적 작전계획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그 결과를 2006년에 미 합참에 통보했다.

더 놀라운 것은 유사시 미군을 한반도에 지원하는 절차 역시 바꾸어버렸다는 점이다. 합동전력사는 2005년부터 해외 미군 지원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면서 미 합참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우리는 이제껏 한반도 유사시에 미군 증원이 미 합참이 미 육․해․공군의 협조를 받아 한반도에 파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절차에 의하면 미 합참은 이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으며 오직 합동전력사가 이를 담당하게 되는데, 이런 내용을 담은 부시 대통령의 비밀훈령이 제정된 때가 대략 2007년 초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러한 사실을 한국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애초 69만 명 지원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면 소규모 병력으로 지원되는 실제 계획이란 게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02년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2002년 11월 리언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이 이남신 합참의장을 찾아왔는데 이 때 이상희 작전본부장과 한성주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이 때 라포트는 “럼스펠드 장관이 직접 얘기 하라고 해서 왔다”면서 “작계5027 가지고 안 되니까 다른 작전계획을 만들겠다, 그게 5026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대포 한 방 안 떨어지게 하고 이기는 작전계획을 만들거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우발계획(Contingency plan)'이라 할 수 있는 5026과 뒤이어 참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5028, 5030과 같은 작전계획들은 10~20만 명에 불과한 미군을 가지고 한반도에서 더욱 공격적이고 치명적인 작전을 전개한다는 완전히 새로운 계획들이었다.

이후 미국은 이미 퇴물이 된 5027이 아니라 새로운 작전계획으로 중심을 이동하였고, 얼마 후에는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한 5029도 추가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더 이상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해군과 공군 중심으로 한반도 분쟁에 개입한다는 원칙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에 오바마가 발표한 새로운 국방전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20년 에 걸쳐 체계적으로 진행되어 온 군사전략의 변화는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미군의 증원군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실상은 2009년과 2010년 프리덤 가디언 한미군사연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제껏 우리가 개념상으로 알고 있던 미국의 증원전력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오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지원이나 대규모 증원군, 첨단전력도 배정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국군 주도로 작전계획 5027을 수행하는데 미군은 지원만 하겠다는 입장으로 기울자 한국 군부는 커다란 위기의식에 봉착했다. 이 때가 바로 우리가 자주적으로 방위력을 개선해야 할 절호의 시점이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2015년으로 연기함으로써 한국군의 부족한 능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런데 전작권 전환 시기가 연기되면서 한국군 지휘부의 경각심마저도 무너졌다. 오바마가 “앞으로 대규모로 지상군을 동원하는 전쟁을 치루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이제야 이명박 정부가 그 실상을 깨닫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미 증원군에 대한 정확한 실상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부풀리고 과대평가함으로써 한미동맹의 신성불가침한 권위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의에 안보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태도를 개선해야 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하는 풍조에서 동맹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불온하고 위험한 태도였다. 그렇게 ‘닫힌 사고’로 허상에 불과한 증원전력에 매달리는 우리의 처지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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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