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가를 부르는 시간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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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를 품고 있던 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태교'는 아마 노래 불러주기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조금 뚱땅거려봤고, 어머니 합창단 같은 데서 여러 해 활동한 경력이 있는 친정 엄마와의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임신 기간 동안 유독 동요가 부르고 싶어졌다. 노래를 잘하는 편도, 즐겨 부르는 편도 아닌데 웬 동요를 그렇게 불러댔을까. 지금 생각하니 조금 우습지만 그땐 그렇게라도 해서 임신 기간의 그 지루함을 달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종일 울렁거리긴 했어도 토하고 못 먹는 입덧은 아니었고, 임신 초기/중기/후기 모두 아무 탈 없이 너무나도 순탄하게 잘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초여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창가에 누워 구름을 보면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로 시작하는 노래가 떠올랐고, 초가을 저녁 노을이 질 때면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로 시작하는 <노을>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집 건너편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나와 풀밭이며 놀이터를 누비며 깔깔댈 때면 마치 그 모습이 풀밭을 뛰노는 '아기염소'들 같아 보여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러저러한 동요들을 순서 없이 엮어 부르다가 급기야는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불러 줄 자장가 메들리도 만들었다. <섬집 아기>-<나뭇잎 배>-<과수원 길>-<반달>로 이어지는 나의 메들리는 실제로 케이티가 태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섬집 아기>야 두말이 필요 없는 '국민' 자장가. 이전에는 이 노래 가사와 음정이 이렇게나 슬픈 줄 몰랐는데, 아이를 낳고 이 노래를 자장가 삼아 부르고 있자면 바로 그 순간에도 어디선가 혼자 스르르 잠들고 있을 이름 모를 어느 아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나뭇잎 배>는 어릴 적 엄마가 자주 불러주었던 노래였는데, 한창 그 노래를 불러주던 때의 엄마 모습과 그 후 고달팠던 엄마의 생이 겹쳐져 또 마음 아픈 노래다. <과수원 길>은 중학교 때 잠깐 살았던 시골 한 동네의 어느 길목을 떠올리게 해서, 또 <반달>은 어린 시절 내가 밤길을 걸을 때마다 꼭 "엄마, 왜 달이 자꾸 우리를 따라 와?"하고 물었다던 게 생각나 좋아하는 노래다.


하지만 어디 아기들이 그렇게 빨리 잠이 드나. '드디어 잠이 들었구나!' 싶어 품에서 내려 놓으면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두 눈을 똥그랗게 뜨는 일명 '등짝 센서' 시기엔 낮잠이고 밤잠이고 기본 30분은 들고 안고 서성이며 자장가를 불러야 했다. 하지만 짧은 동요 네 개 엮어 봐야 아무리 느릿느릿 자장가조로 불러도 10분을 다 못 채운다. 그래서 또 다른 메들리를 만들었다. 이번엔 영어 자장가로다가. 첫 번째 노래는 미국의 '국민' 자장가 <롸커바이 베이비>(Rock-a-Bye Baby). 멜로디가 정말 자장가 같아서 끼워 넣지 않을 수 없었지만, 사실 가사를 살펴보면 '잔혹 동요' 같은 데가 있다. 아기가 든 요람을 나무에 묶어 바람에 살랑거리게 두었는데, 그러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요람과 아기 모두 땅으로 떨어질 거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 중에서도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두 번째 노래는 <브람스의 자장가> 로 불리는 노래로, 가사도 멜로디도 예쁘고 졸립(?)다. 아기 침대에 웬 장미와 백합인가, 싶긴 하지만 "이제 너를 내려놓으면 너는 축복 속에서 잠 잔다"는 내용의 마지막 가사 두 줄을 부를 때면 온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최면을 걸었다. "제발 자라, 이제 내 너를 내려 놓겠으니, 눈 뜨지 말고 좀 자라 엉?!"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영어 자장가는 <리틀보이 블루>(Little Boy Blue). 여기서 '블루'는 이 노래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의 이름인데, 그 이름이 나오는 부분에 아이의 이름을 넣고 부를 수가 있다. 가사는 '양과 소들이 다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데 이 양치기 소년은 어디 있는고? 아하, 저기 저 짚더미에 폭 싸여서 잠들었구나!' 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잠에 거의 다 빠져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할 일도 잊고 단잠에 빠진 꼬마 목동이 그려져 웃음이 난다. 요즘 케이티가 낮잠 잘 시간에 안 자겠다고 버티면서 업어달라고 조르면 종종 저 노래를 시작으로 자장가 메들리를 부르곤 하는데, 그게 자장가인 줄은 아는지 내가 이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Nope!" 하면서 내려달라고 버둥거린다.


얼마 전, 자주 나가는 한 모임에서 '자장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기혼의 아이가 있는 여성들이어서 함께 얘기해보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모임엔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각국의 '국민' 자장가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일랜드에서 오래 전 이곳으로 이주해 온 할머니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자주 불러주었다는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한 일본 엄마는 노랫말에 코끼리와 아기가 등장하는 자장가를, 인도네시아 엄마는 "안 자면 모기가 물어버린대!"하는 귀여운 자장가를, 또 멕시코 엄마는 "지금 안 자면 코코라는 괴물이 잡아 먹는대!"하는 무시무시한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내용도 멜로디도 다양한 그 자장가들을 들으며 우리 엄마는, 또 우리 할머니는 그 길고 힘겹고 때로는 지루했을 육아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을까 궁금해졌다. 엄마와 할머니도 아이들을 재우려 자장가를 불렀을까? 어떤 노래를 얼마나 불러야 했을까? 엄마와 할머니도, 자장가를 부르며 엄마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안고 업고 어르고 달래도 잠들지 않는 아이를 원망하며 한숨 쉬고 눈물 지었을까? 아이를 안고 어두운 방 안을 서성이며 입술이 마르도록 자장가를 불러야 했던 그 숱한 밤들을 지나온 지금, 수많은 엄마들이 불러왔고 또 부르게 될 그 많은 자장가들이 내 귓가에 잔잔히 퍼지는 것만 같다. 외롭기도 서글프기도 아프기도 했던 그 시간, 자장가의 시간들이 내 곁을 이렇게 스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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