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봄방학 생생육아

지난 해 9월 초부터 다니기 시작한 이 곳 고등학교 과정을 절반 가량 이수했다. 한 학기(term) 8주에 걸쳐 진행하는 이 학교의 커리큘럼으로 따지면 벌써 세 번째 학기를 마친 셈이다. 비록 중학교 수준의 내용이긴 하지만 기초 과학, 대수, 기하, 영어, 역사 등 여러 과목을 이수했고 졸업 요건 중 하나인 수학 시험도 무사히 치렀다. 매일 아침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바쁜 사이에 겨울이 거의 다 넘어가고 달력은 어느새 3월 중순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하여 맞이한 봄방학. 지금부터 4월 초까지, 2주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나와 아이는 봄방학을 보내게 된다.

 

자 이제 방학이니 어디 한 숨 좀 돌려볼까, 했더니 웬걸, 아이는 원인 불명의 알러지를 겪느라 온 몸을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 방학이 시작되기 열흘 전에 갑자기 시작된 이 소동으로 지난 2주간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소아과를 방문한 것만도 세 번. 처음 처방 받은 약이 맞지 않아 증상이 더 심해지는 바람에 이틀 만에 약을 바꿔 오고, 약이 떨어지자 다시 반응이 올라와 또 병원엘 가야 했다. 그 동안 써 온 샴푸며 로션의 특정 물질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걸 수도 있다는 말에 아이 몸에 닿는 모든 것을 바꾸는 일도 해야 했다. 비싸고 20분 남짓 걸어야 갈 수 있어 이용할 일이 거의 없는 유기농 매장에까지 가서 눈물을 머금고(!) 거금을 들여 로션과 샴푸를 샀다. 지난주엔 마침 1주일간의 봄방학을 맞은 남편이 인근 마트에서 전용 청소기를 빌려다 하루를 다 바쳐 식초 스팀으로 카펫 청소를 했다. 옷과 이불도 순한 세제로 빨고 또 빨기를 여러 번, 아이는 이제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믿고 싶다….)

 

웬만큼 아파서는 기력이 떨어지지 않는 에너자이저 아들은 이 와중에도 틈만 나면 놀이터, 놀이터 노래를 불러댄다. 4월이 되기 전엔 기온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 곳 날씨 탓에 아직도 아침 기온은 영하권인 날이 있고, 낮 최고 기온도 영상 6, 7도에 머무는데 아이는 이 정도는 괜찮아!”라면서 기어이 나를 잡아 끌고 매일같이 동네 놀이터 순회를 나선다. 어제 바람 부는 쌀쌀한 오후에 놀이터에서 벌벌 떨었더니 나는 결국 몸살 기운이 퍼져 온 몸이 쑤시고, 그 와중에도 밥은 헐레벌떡 먹어야 하고 커피는 계속 들이마셔야 하니 매 끼니마다 속이 쓰리고 불편하다. 그런데도 나는 도무지 쉴 수가 없다. 남편의 방학은 오늘로 끝이고, 내 할 일은 쌓이기만 한다. 대체 엄마라는 사람들에게 방학이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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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밖에서 놀기엔 추운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나가 논다. 덕분에 엄마는 감기 몸살을.....>

 

내 이 황금 같은 방학 기간 중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은 아이의 KT와 관련된 일. 보스턴 아동병원에 상담을 넣기로 했지만 어처구니 없는 혼선으로 의료기록이 아직도 다 모이지 않아 내일 날이 밝으면 또 병원에 전화를 넣어 닦달을 해야 한다. 닦달하는 일이야 빨리 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지난 2주간 아이 피부 문제로 정신이 없어서 이걸 할 새가 없었다. 내 비록 영어를 좀 하는 사람이긴 하나 병원 사람들과 전화로 대화하는 일은 제법 많은 인내와 대화의 기술(!)을 요하는 일이라 긴장 바짝 하고 통화를 시도해야 하는데 내가 전화기만 들었다 하면 빽빽 소리를 치며 전화를 끊으라고 명령해대는 아들 때문에 요즘 골치가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니다. 내일 또 그렇게 될 걸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다. 그리고 이 자료가 오면 그간 받은 모든 자료를 묶어 한 봉투에 담아 보스턴까지 보내고, 병원에서 서류를 잘 받았는지 확인하는 과정까지 마쳐야 한다. 아마 이걸 무사히 끝내고 나면 내 봄방학은 끝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하는 와중에 나는 또 미네소타에 있는 다른 병원에 연락을 넣어 약속을 잡을 수 있는지를 문의해야 한다. 올해 7월에 이 곳 KT 서포트 그룹에서 여러 의료진과 연계해서 여는 의학 컨퍼런스가 있는데, 고심 끝에 이 컨퍼런스에 가보기로 했고 그 일정 사이에 그 곳 병원에서 제공하는 상담을 받아볼까 생각하고 있다. 보험 처리 문제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우선 컨퍼런스에 가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이 컨퍼런스에 가기로 결심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지금 우리 형편상 이 일정을 소화하기엔 경제적으로 무리이기 때문이다. 컨퍼런스 등록비와 2 3일 숙박비만으로도 수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데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막막해서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크라우드 펀딩(다수의 개인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늘 우리를, 우리의 삶을 응원해주는 고마운 친구들과 지인들 덕분에 글을 올린 지 3일만에 목표액의 거의 전부를 모을 수 있었다. 십 년, 이십 년 된 친구들에서부터 여기 와서 만난 일본인, 멕시코인 친구들까지, 모두가 도와준 덕분에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고마운 마음을 모아 컨퍼런스에 등록을 하고, 준비 과정과 그 결과를 약속한대로 내 블로그에 하나씩 포스팅하는 일. 봄방학 동안 그간 방치하다시피 했던 내 영문 블로그를 다시 손보고 짧은 글이라도 주기적으로 올리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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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방치되어 있던 영문 블로그. http://yswonderland.blogspot.com/2015/11/joie-de-vivre-kts.html>


몸도 마음도 지치기 일쑤인 육아를 하면서, 그것도 KT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육아를 하면서 나는 자주 내 인생의 전반을 지배해 왔던 비관주의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렇게 비관적인 생각을 때때로 하면서도 결국 다시 힘을 내 아이를 마주 보게 되는 건, 나의 어려움과 용기를 알아주고 내가 이 삶을 끝내는 무사히, 잘 살아내리라는 걸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봄방학 기간 동안, 이 고마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새기며 좀 덜 찌푸리고 좀 더 웃으며 새 봄 맞이를 해야겠다. 비록 내 봄방학은 과는 거리가 멀지만, 방학이 끝나고 정말로 봄이 오면 조금 더 가뿐하고 산뜻한 마음으로 학교 생활도 육아도 해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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