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감수성 생생육아

며칠 째 아이가 조금 아프다. 시작은 배탈이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 날 밤, 평소 습관처럼 이불을 다 걷어내고 잠을 잔 게 화근이었다. KT 때문에 하체 피부 온도가 늘 약간 높은 편이라 추운 한겨울이 아니면 이불을 덮지 않는 편이 숙면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약 3년간의 경험으로 몸소 터득한지라 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 그날 밤에는 하필 아이의 배가 찬 공기에 그대로 노출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 줄 모르고 평소처럼 아침 식사 때 찬 우유를 그대로 먹였기 때문일까, 아이는 그 날 점심 때부터 간헐적인 복통과 설사에 시달렸다. 그 흔하다는 돌 발진도 수족구도 장염도 한번 걸려본 적 없는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진을 뺐다

 

다행히 배탈은 하루 반 만에 진정되었다. 당장 찬 우유를 끊고 따뜻한 보리차를 먹여 탈수를 방지하고, 배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옆에 눕혀 이불을 덮고 배를 문질러주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배탈이 진정되고 이, 삼일 뒤부터 KT쪽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잠들 무렵 갑자기 찾아온 통증 때문에 다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보고 놀란 우리는 결국 진통제를 먹여 아이를 재워야 했다. 진통제를 먹고서도 다리를 어찌할 줄 몰라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듬어 안고 나는 실로 오랜만에 소리 내어 울었다. 어쩐지 요 며칠 자꾸 안 걷겠다고, 안아달라고 그러더니 그때부터 아팠던 거구나. 나는 그저 또 신발이 작아질 때가 되었으니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팠던 거구나. 얼마나 아프면 다리를 버둥대며 내게 이렇게 안겨 잠들어야 하는 걸까. 내가 너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통증은 또 얼마나 가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아뜩해졌다.

 

KT는 림프계에도 이상이 있는 병이어서, 몸 전체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다른 증상들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쉽다. 실제로 이전에 감기를 좀 오래 한 뒤에 다리에 통증이 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감기 기운이 있으면 평소보다 긴장해서 아이 상태를 살피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평소 아이 몸 구석구석을 자주 들여다보고 만져보기 때문에, 아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눈으로든 손으로든 빨리 알아채는 편이다. 특히 몸에 자주 생기는 혈전이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경우, 그것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때가 잦아 그런 것들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예상치 못하게, 그것도 처음으로 심한 배탈을 겪은 것이라 이것 때문에 다리가 아프게 될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고, 다리에 평소와 다른 뭔가가 만져지지도 않아 정말이지 까맣게 몰랐다

 

케이티에게 통증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무엇일 지도 모른다. 내 몸이 아니어서 아주 정확히는 모르지만, 평소 여기저기 생기는 혈전 때문에 늘 어딘가는 아프고 불편한 느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아이가 KT를 갖고 태어나기 전에는 이 통증이란 것의 실체에 대해, 진통제의 작용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의 병을 알게 되고 관련 공부를 조금씩 하게 되면서 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한 루푸스(Lupus:만성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쓴 글 한 편이 만성통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는데, 이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게으르다거나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등의 오해를 사기 쉬운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나는 공격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마치 전쟁 전략 짜듯이 해야 겨우 할 수 있다.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그런 생활 방식에 있다. 미리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그건 정말 복이다.”

 

이제 고작 세 살 다 되어가는 케이티의 삶만 봐도 그렇다. 그렇게 밖에 나가 놀기 좋아하는 아이지만, 발과 다리에 느껴지는 통증은 이 아이를 풀썩 주저앉게 만든다. 다리가 아프면 누워 쉬어 주는 게 도움이 되더라는 걸 알게 된 아이는 다리가 아프면 이제 엄마 손을 잡아 끌고 침대로 향한다. 아플 때 할 수 있는 거라곤 엄마 앞에 누워 마사지를 받고 진통제를 먹는 것뿐이라는 걸 벌써부터 아는 아이는 이제 아프면 스스로 엄마에게 다리를 내맡기고 누워 약을 찾는다. 그런 삶을 몰랐던 나로서는 통증 때문에 놀이를 중단하고 쉬어야 하는, 통증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살게 될 이 아이의 삶이 때때로 가슴 아프게 안타깝다. 하지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아이는 그런 제 삶 속에서 나름대로의 전략과 대처 방법을 익혀가며 때로는 남과 다르게, 또 때로는 남과 같게 그렇게 살아가리라는 것을

 

평소 워낙 잘 웃고 잘 노는 아이라, 아이와 집 밖에 나서면 아는 사람/모르는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 입을 모아 얘기한다. 아이가 참 잘 큰다고. 불치병이라지만 저렇게 잘 놀고 잘 웃으니 괜찮을 거라고. , 참말 뭘 모르는 소리다. 우리의 아픔을, 우리의 걱정을, 그 누가 어떻게 알까. 당장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본격화 된 입식 생활이 다리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걸, 기온과 기압, 습도에 따라 달라지는 몸 상태 때문에 매일이 신경 쓰인다는 걸. 외상에 조심해야 하지만 또 그렇다고 제약을 가하기보다는 가능한 모든 신체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고민에 빠진다는 걸, 누가 알까. 때때로 찾아오는 아이의 모든 미래--학교생활, 사회생활, 연애, 직장 등-- 그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이다.    

 

그런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왼쪽 다리보다 두 배 넘게 큰 오른 다리를 훤히 드러내놓고 내게 안겨 있는 아이를 보고 그저 안타까워하고, ‘불치병이라는 설명을 듣고 미안한 표정을 내보이거나 안 됐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도 있다. , 뭐 그럴 것까진 없는데. 이 애도 여느 두어살 꼬맹이들처럼 테러블 투이고, 나는 뭐 그렇게 모성애 넘치는 사람도 아니어서 애가 아픈 건 아픈 거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인 사람인데 말이다.   

 

우리 속은 모른 채 아이가 참 잘 자란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리고 반대로 우리가 얼마나 재미나게 웃으며, 지지고 볶고 사는지 모른 채 딱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나는 우리가 얼마나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람도, 세상도,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먹고 살기 바빠 아옹다옹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때가 많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놓고 평가하고 비교하고, 만족하고 불평한다. 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아파 보인다고 해서 모든 방면에서 약자인 것은 아니고, 겉보기에 아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닌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너무 모른다.

 

드러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거기에 더해 숨겨지고 잊혀진 것들에 대한 감수성. 요즘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설픈 지식과 경험으로 지레짐작하지 않고, 편견을 버린 시선으로 조금 더 진실되게 다가서는 것. 타인의 고통을 민감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교감하되 감정 과잉이나 과장된 수사만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 이 밤, 아이의 이번 통증이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놓치고 있는 또 다른 것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본다. 내가 눈을 열고 조금 더 진실되게 다가서야 할 곳은 어디인지, 민감한 마음과 냉철한 머리로 다가서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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