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무어의 법칙’ 20년을 단숨에 건너뛸 원리를 발견했다 기술IT

ban6.jpg » 1비트를 저장할 때, 수천 개의 원자집단인 도메인 (왼쪽)을 사용하지 않고, 개별 원자들을 직접 제어해서 저장하므로, 기존 메모리 1비트 면적에 수천 개의 비트를 집적해서 사용 가능케 함 (오른쪽). 미세 전극 기술이 따라올 경우, 향후 500Tb/cm2 에 해당하는 최종 집적도를 구현하는, 반도체 안의 원자 메모리 구현 가능.

유니스트 이준희 교수팀, 산화하프늄 새 기능 발견

지금보다 메모리 용량 1000배 많은 칩 개발 길 터

 

20년간에 걸쳐 진행될 `무어의 법칙'을 단숨에 건너뛰어 실현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 소자의 원리가 발견됐다. 무어의 법칙이란 인텔의 연구원인 고든 무어가 1960년대에 주창한 이론으로, 마이크로칩의 정보 저장 용량이 2년마다 2배씩 늘어나는 걸 말한다.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이준희 교수팀은 메모리 소자의 용량을 1000배 이상 늘릴 수 있는 반도체 산화하프늄(HfO2)의 새로운 기능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3일 발표했다. 이는 현재 10나노미터(nm, 1나노미터=10억분의1미터) 수준에서 정체(플래시 메모리 기준)돼 있는 메모리 소자의 크기를 0.5나노미터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새로운 메모리 소자 패러다임의 등장에 비견된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메모리 소자의 용량이 1000배 늘어나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새로 발견한 원리를 적용할 경우 이를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개별 원자 수준 메모리 소자 구현 가능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개별 원자에 직접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지금까지는 원자들 사이의 강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원자를 개별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반도체 소자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저장 능력도 약해진다. 그러다 수십나노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아예 저장 능력을 잃어버린다. 이를 ‘스케일 현상’이라고 부른다. 스케일 현상은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 무어의 법칙에 따른 집적도 증가가 정체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사본 -울산과학기술원 이준희 교수팀_사이언스지.jpg » 개별 원자 수준의 메모리 칩을 만들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한 이준희 교수(왼쪽 두번째) 연구팀. 유니스트 제공

"현 반도체산업의 마지막 저장 기술 될 것”

 

그러나 이준희 교수팀은 산화하프늄(HfO2)이라는 반도체에 특정 전압을 가하면 원자를 스프링처럼 강하게  묶던 상호작용이 완전히 사라지는 새로운 물리현상을  발견했다. 이어 이 현상을 이용하면 반도체 안의 산소 원자를 개별적으로 메모리 소재로 응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기존 이론에서는 1비트 이상의 정보를 저장하려면 최소한 원자 수천개 이상이 모여 있는 영역(도메인)이 필요한 것으로 보았으나, 이 교수팀은 0.5 나노미터에 불과한 개별 원자 4개 묶음에서도 1비트를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소자를 구현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번에 발견한 원자 메모리의 원리를 적용할 경우 정보 집적도를 1제곱센티미터당 500테라비트(1테라비트=1조비트)까지 높일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는 현재 최고 수준의 메모리보다 1000배 이상 높은 집적도다. 이론적으로는 0.5나노 선폭 공정까지 가능해진다. 물질 내 원자간 거리가 대략 0.5 나노미터이기 때문에, 원자를 쪼개지 않는 한 이보다 작아지기는 어렵다. 이준희 교수는 “개별  원자에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은 원자를 쪼개지 않는 한,  현 반도체 산업의 마지막 집적 저장 기술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ban7.jpg » 단일 원자 메모리와 기존 원자집단 (도메인) 메모리 원리 비교. 기존 메모리(왼쪽)는 원자간 스프링같은 상호작용으로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수천개 원자집단 (도메인)이 동시에 움직여야 비로소 1비트를 저장할 수 있다. 이번에 개발된 단일원자를 이용하는 원자 메모리(오른쪽)는 특정 전압을 걸 때 원자 간의 탄성 상호작용이 완전히 소멸되어 개별 원자 묶음(산소원자 4개)에 개별적인 비트 저장이 가능하다.

질문의 힘이 발상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이 교수팀은 “정보저장을 위해 이  도메인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연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질문의 힘이 발상을 바꾸게 하고, 발상의 전환이 새 원리를 발견하게끔 이끌어낸 것이다. 이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산화하프늄이 원자 하나하나의 위치를 전압으로 움직이며 메모리로 쓸 수 있는 물질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는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순수 물리 이론을 실용 반도체에 적용한 융합연구의 힘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ban8-Hafnium(IV)_oxide.jpg » 실리콘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산화하프늄. 차세대 메모리 소자인 강유전 메모리 (FeRAM)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 사용한 산화하프늄(HfO2) 이라는 산화물은 기존 반도체 공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물질이어서, 이번에 규명한 원자 메모리 시스템의 상업화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이날치 `사이언스'(Science, IF 43.655)에 발표됐다. 논문 제목은 `Scale-free ferroelectricity induced by flat phonon bands in HfO2'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순수 이론 논문이 `사이언스'에 게재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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