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 다행이다 지리산케이블카백지화

지리산도 그렇겠지만 요즘 세종시는 찜통이다. 아침엔 안개가 가득하고, 안개가 걷히고 나면 뙤약볕이 도시를 서서히 달궈, 곳곳에서 김이 난다. 서 있으면 가까이에서 불이 난 것처럼 주변이 화끈거린다.

 

나는 지난 624일부터 세종시 환경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출근, 낮밥, 퇴근시간에 맞춰 1시간 30분씩 생태계 최후의 보루 국립공원은 지켜야 합니다.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NO!!’ 피켓을 들고 서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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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반대피켓 3종 세트 (같은 피켓만 들고 있으면 보는 사람들이 지루해 할 것 같아 날씨에 따라 번갈아 들고 있다. 피켓은 구례에서 착하기로 소문난 후배가 디자인했다.)

 

지리산을 떠나 세종시로 올라온 후 어떤 날은 햇볕이 강했고, 어떤 날은 흐렸고, 또 어떤 날은 비가 내렸다. 세종시는 나를 날씨 민감형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비가 오는지, 낮엔 몇 도까지 올라가는지, 나는 날씨예보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세종시로 올라오는 날, 남편이 내게 말했다. ‘그래도 여름이라 다행이라, 겨울이면 1인 시위하기 정말 힘든데. 정말 다행이라.’ 정말 그렇다. 나는 더위는 참아도 추위는 못 견디는 사람이다. 뙤약볕에 서 있을 때, 머리에서 시작된 땀이 목과 등으로 흐를 때면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살아있다는 느낌, 뭐 그런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20살이 넘어서도 추워서 울었던 것 같다. ‘에이, 왜 이렇게 추워.’라고 입에서 말이 나오자 눈에선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 때문에 더 추워져 눈물, 콧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한 기억이 있다. 서울 신설동 전철역에서 창신동 언덕에 있던 자취방을 오르며 흘렸던 눈물이다.

추위는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며 기억이다. 가을이 되면 겨울 오는 게 걱정스럽고, 한여름에도 아침, 저녁엔 발이 시리다. 여름에도 발목토시를 해야 하는 내가 겨울이 아닌 여름에 1인 시위를 한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세종시로 올라온 후 여러 선후배들이 전화와 문자를 한다. 더위에 고생이 많다고, 우리가 이길 거라고, 뭐 맛난 거 배달할 테니 말하라고. 모두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들이다. 오겠다는 선후배들은 내가 어디에서 자며, 뭘 먹고, 어떤 곳에서 1인 시위를 하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다.

 

나는 방에서 자고, 밥이나 죽, , 과일 등을 먹는다. 하루 7시간 30분씩 자고, 3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 노력하고 있다. 자고, 먹고, 서 있고, 나는 매우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매일 환경부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문 옆에는 그곳에 환경부가 있음을 알려주는 여러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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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를 하는 곳 (환경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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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임을 알려주는 안내판들

 

나의 세종시 1인 시위는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 가부를 결정하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열리는 날까지 계속될 것 같다. 그날이 8월 초중순일 거라는 이야기가 오가지만 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환경부는 알겠지만 우리는 모른다.

8월 초중순이라면 여전히 여름이니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 가을, 겨울이 아닌 여름에 1인 시위를 하고 있으니.

 

 

2015715일 출근시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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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