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를 갖기 위한 필수 조건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33c8659b002988da93b3dc259c0a1d38. # 이 글은 제 블로그에 지난 2010년 2월 썼던 글( http://blog.hani.co.kr/anmadang/24005)에 최근 상황까지 덧붙여 새로 작성한 글입니다. `둘째 아이를 낳을까 말까'를 고민하시는 엄마들과 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 2010년 2월(임신 14주):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한 필수조건 1



 많은 여성들이 첫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둘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을 합니다. 첫째 아이를 생각한다면 형제자매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낳아야 할 것 같고, 힘들고 고단한 현실을 생각한다면 낳고 싶지 않은 것일테지요. 전 지금 둘째를 임신중입니다. 14주니 3개월이 좀 넘은 것이죠. 

 그런데 요즘 둘째를 임신하고 나서 아주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계획임신이 아니라 갑자기 아이를 갖게 되면서 앞으로 제게 벌어질 현실이 눈에 뻔히 보여서 사실은 우울합니다. 걱정도 많이 됩니다. 둘째 낳고 나서 많은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하는데, 혹시 그렇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첫째 아이는 엄마 사랑을 받기 위해, 엄마와 함께 놀기 위해 퇴근 뒤에도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있을테고, 둘째는 둘째대로 엄마 사랑을 원할 겁니다. 그 와중에 머릿속에 `일‘ 밖에 없는 남편은 제게 집안일이고 아이 돌보는 것까지 모두 미룰 겁니다. 주말에 좀 요리하고, 아이가 기분좋을 때 잠깐 놀아주는 정도 가지고 ‘난 다른 남편들보다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으스댈겁니다.‘절체절명의 위기이고, 벼랑끝에 서있는 기분이고, 우리 가정을 위해서 올해 꼭 승부를 봐야하는’ 남편을 위해서 전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할 지도 모르죠.

 한국의 상당수 남성들은 항상 이런 식이죠. 워낙 불안한 사회라 그런지 위기의식이 강해 지금 이순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다들 강하죠. 그리고 그걸 핑계로 육아든 가사일이든 동참하려 하지 않으려하죠. 저는 회사에서의 경력 관리 흐름도 끊길 것이고, 많은 것을 일정부분 포기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느정도 크기 전까진... 그러면서 남편에게 “고생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들으며, 일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고 집알일도 어느정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끔찍하기만 합니다.

 최근 전 깨달았습니다. 남편의 그런 말들은 모두 핑계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는 것을.... 남편이나 저나 항상 일은 있고, 저 역시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꿈도 많다는 것을... 더이상 남편을 배려한답시고 혼자서 알아서 모든 것을 척척 하는 바보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래서 얼마전 남편에게 “더이상 당신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둘째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전 이렇게 조언하고 싶습니다.

 

 1. 계획임신을 하라. 평소 피임을 잘 하라. 결혼했다고 긴장을 풀었다간 여자만 손해다. 



 계획임신이 중요한 것은 임신과 출산, 육아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준비, 경제적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아이를 가지면, 임신한 기간 동안도 충분히 즐길 수 없고, 출산한 뒤에도 힘겹기만 합니다. 둘째를 낳고 싶다면 반드시 계획임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역시 둘째를 낳아 키울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덜컥 임신했다간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축복받고 마냥 행복해야할 임신 기간에 우울하다면 얼마나 아이에게 미안한 일입니까?

 

 2. 남편이 정신적 여유가 있는지 확인하라. 



 남편이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큰 일이 있는데, 그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아내는 둘째 임신에 대한 남편의 배려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배려는 남편의 정신적 여유에서 나옵니다. 아무래도 첫째보다 둘째는 설레임이 덜하기 때문에, 둘째에 대한 배려는 덜할 수 있는데, 정신적 여유까지 없으면 더욱 배려는 적어집니다. 몸은 무거워지고, 호르몬의 장난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기분은 오락가락하는데, 첫째를 돌보면서 일하랴 집안일하랴 아마 돌아버릴 것입니다. 거기에 남편의 배려까지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남편의 정신적 여유를 확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쉽지는 않죠. 아이를 키울 때는 돈 모으고 재테크하는 것은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3. 남편이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전까진 둘째 절대 갖지 마라. 



 육아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해야합니다. `삐뽀삐뽀 119’의 하정훈 소아과 원장은 육아를 쉽게 제대로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육아에 대한 공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육아라고 했을 때 젖먹이기부터 기저귀 갈기, 목욕시키기, 이유식 만들기, 밥 먹이기, 함께 놀기, 함께 외출하기, 책 읽어주기, 예방주사 맞히기, 아프면 케어하기 등 갖가지 온갖 상황들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잠깐 놀아주는 것, 기저귀를 갈거나 분유를 먹이는 것 정도에 동참합니다. 아이 돌보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남편들은 집안일도 자기 일이라 생각하는 법이 없습니다. 원래 ‘집안일=아내일’인데 본인이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돈을 벌어와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주변에서 보면....

 이런 현실에서 둘째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여자만 힘들어집니다. 특히 워킹맘이라면 더 그렇답니다. 밖에서 일도 열심히 해야하고, 집에 들어오면 집안일 대충하고 첫째에게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순간 ‘나’란 존재는 없게 됩니다. 잠깐 누워 멍하니 티비를 볼 시간조차 없고, 커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습니다. 만약 남편이 둘째를 갖고 싶어한다면, 그 전에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해야합니다. 남편이 간절하게 원할때 둘째를 가지세요. 적어도 당신이 숨 쉴 틈이 있을 때 둘째를 가지세요. 그렇기 전에는 절대 모험을 걸어선 안됩니다. 여자 혼자면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둘째를 가지세요.

 

 저출산국가라고 모두들 떠들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셋째를 낳으면 현금을 준다, 둘째를 낳으면 지원을 더 해준다 난리입니다. 우습기만합니다. 정말 여자들이 현실에서 왜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지, 왜 둘째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지, 셋째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인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현실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부는 남자들이 가정친화적이고,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고용이 불안하고,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남자든 여자든 어느 누구든 아이를 낳아 즐겁게 키울 수 없습니다. 육아휴직 제도조차도 제대로 시행안되고 있는 회사도 많습니다. 모유수유를 권장하지만, 모유수유를 하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여성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존재하고, 모유수유를 포기하는 여성들이 수두룩합니다.

 남자고 여자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인생에서 대단한 모험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야 하는 현실에서 본인들이 희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남자들의 가사와 육아에 대한 인식이 전면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여성들에겐 그 어떤 정책도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결혼생활과 육아는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죠. 집에서 매일 부대기는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책적 지원이 있어도 소용 없는 것이죠.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니 아이가 제게 주는 기쁨과 보람, 그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아이는 제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더군요.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세상을 더 폭넓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아직 둘째를 출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둘째를 키우는 또다른 기쁨과 보람은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 비정하고 고단한 현실속에서도 또다른 기쁨이 있겠지요. 일단 전 둘째를 낳아 키워야 하니,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현명하게 현실을 헤쳐나갈 것인지 고민해봐야겠지요. 둘째를 낳지 않은 분들에겐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이 글을 씁니다.

 

 

 @ 2010년 5월(임신 28주차): 둘째 아이 가지기 위한 필수 조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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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쓴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글을 쓴 날, 전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쌍방향의 싸움이 아니라, 어쩌면 일방적으로 제가 남편을 향해 그동안 쌓아놓은 감정을 풀어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겁니다. 밤 12시에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새벽 2시까지 육아와 관련해 평소 제 생각들을 말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말이 술술 잘도 나오더군요.

  

 남편은 제가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었습니다. 아마 그것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저희 부부관계는 더욱 악화됐을 겁니다. 제 얘기를 모두 들은 남편은 “그래, 알았다. 당신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어. 앞으로 노력할게”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나서 다음날 예방접종때문에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하는데, 아이 병원을 자신이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그날 저도 남편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얘기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들로 남편도 고민도 많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남편에게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게 됐으니 배려하겠다. 그러나 당신도 날 배려해달라. 지금처럼은 아니다”고 부탁했습니다.

 

 그 부부싸움 뒤 남편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평일·주말을 구분않고 회사 일에만 매달려 있던 남편이 주말엔 적어도 하루는 집에 있고 아이와 함께 놀아주더군요. 고양시 꽃박람회, 주주 동물원 등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들이도 제안했습니다. 주말 하루는 적어도 두 끼 정도는 저와 아이 위해서 남편이 직접 요리를 해주고,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가끔 전 혼자 외출할 수도 있었습니다. 주말에 아이가 문화센터를 가는데, 제가 너무 피곤한 날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혼자 문화센터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전엔 문화센터를 가더라도 항상 저를 동반하고 갔었죠. 혼자는 절대 못간다고 했으니까요.) 장보기도 남편이 주말을 이용해 일주일치를 봐오고 있습니다. 제 육아 부담은 상당히 줄었고, “나 혼자만 애기 키우느라 고생한다”는 피해의식이 사라졌습니다. 요리를 하는 남편이 사랑스럽고, 아이랑 놀이터에서 즐겁게 노는 남편을 보면 행복합니다. 남편에 대한 불평도 많이 줄어들었지요. 적어도 지금 이 정도라면 둘째 아이를 낳아도 저 혼자 모든 걸 떠안을 것 같은 부담감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남편과 저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고, 남편에 대한 저의 배려도 많이 늘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한 필수 조건 위 3가지에 한 가지를 더 보탭니다. 

 

 4.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가족도 행복하다. 혹시 당신이 ‘완벽한 엄마, 좋은 아내가 되고자 하는 환상’을 가졌는지 돌아보라. 만약 그렇다면 당장 버려라.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결혼생활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남편에게 요구할 것이 있다면 요구하라. 결혼생활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때 둘째 아이를 가져도 늦지 않다.



  둘째 아이를 낳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엄마들을 보면 자신의 행복보다는 ‘터울이 너무 벌어지면 안될 것같다’ ‘첫째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다’‘아이 하나로는 뭔가 부족해보인다’‘그냥 둘째가 있음 좋을 것 같아서’서라는 막연한 이유로 둘째를 가지려 합니다. 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고, 지금 결혼생활이 행복해야 둘째 아이도 행복하게 기를 수 있다고요. 지금 당장 당신의 결혼 생활이 행복한지, 어떤 점들이 내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저처럼 글로 한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본 뒤, 남편과 대화를 해보세요. 부부싸움을 해야한다면 부부싸움도 하세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편에게 명확하게 얘기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으론 남자들은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얘기해줬을 때 더 잘 해줍니다. 예를 들면 "장보기는 당신이 해달라" "예방접종 일정은 내가 챙길테니, 당신이 병원은 가라" "주말 하루는 꼭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달라" "청소는 일주일에 몇 번 당신이 하라" 하는 식으로요. 싸우는 것이 싫어서, 남편과 부딪히는 것이 귀찮아서 미루면 안됩니다. 그러다 문제는 곪고 곪아 언젠가는 터집니다. 아무도 내 행복을 책임져주지 않으니까요. 남편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가정이나 아이에 대한 책임감만으로는 행복하지 않으니, 구체적으로 아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표현을 해야합니다.

 

 결혼 생활을 하다보면 고비고비가 많습니다. 그 고비고비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결혼생활의 만족도도 달라집니다. 부부 관계든, 부모와 자식 관계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아가면서 맞춰가는 것이 가족인 것 같습니다. 행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기 전에는 반드시 ‘내가 지금 행복한가’ ‘내 결혼생활이 만족스러운가’ ‘둘째가 생기면 난 행복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를 물어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결혼생활 행복하세요?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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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