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_ 2012년 숨은샘 영화제 첫 상영작 ‘굿바이’ 후기 함께 꿈꾸는 세상

숨은샘 영화제.

영화제 제목이 그게 뭐냐고, 음침하고 우울하다고, 밝고 경쾌한 걸 다시 생각해보라고들 했다. 그렇기도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천은사에서 하는 영화제(말이 영화제지 이것 역시, 그냥 영화 두 편 보는 행사였다.)니 숨은샘(천은의 한자 표기는 泉隱이다.)이 제격이라고 마음먹자 다른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번 가버리자 세상의 다른 것들이 다 시시하게 느껴지다니, 마음은 참으로 묘한 녀석이다.

 

천은사의 원래 이름은 감로사였다 한다. 절 이름이 바뀐 이유는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고,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한 필체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샘이 숨은 절, 천은사는 빛깔이 예쁜 절이다. 검은 빛의 절집은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다. 대적광전 앞마당을 걸을 때면 깊은 고요에 빠지게 된다. 지리산자락의 많은 절과 그 절들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와 비교되길 거부하는 또 다른 매력, 천은사는 그런 곳이다.

 

 

 

 

천은사에서의 영화 상영, 오랜 시간 준비되거나 고민하진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등 우리나라 종교계를 대표하는 분들이 세상과 이별하며, 그 분들의 삶과 죽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듯이 우리들의 삶도 단순하고 소박하길 원하고, 세상과의 이별도 담담하고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름다운 마무리’와 관련한 영화를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되어, 전에 봤던 두 편의 영화를 골랐다.

 

일본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 임권택 감독의 축제.

둘 다 오래된 영화이고,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영화가 아니니, ’왜 하필 그 영화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좋아요. 같이 보고 싶었어요. 천은사에서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11월 26일, 하루 종일 지리산 위 하늘이 어둑했다. 비가 오려나, 눈이 오면 좋을 텐데, 낮 3시부터 예정되어 있던 소나무숲길 걷기는 취소했다. 기운이 서늘한 날, 약간은 우울한 날, 숲 안으로 들어가는 게 썩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천은사 공양간에서 공양을 했다. 절집 음식은 맛나다고, 칭찬하는 소리가 여기저기가 나왔다. 공양과 영화 상영시간, 사이 시간엔 이야기도 나누고, 천은사도 돌아보고, 원하는 사람은 예불에도 참석했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기도, 오늘은 마무리가 좋으려나 보다.

 

 

굿바이.

영화가 시작되려는 찰라, 눈발이 날렸다. 올해, 지리산에 들어와 맞이한 첫 눈이다, 오늘은 아무래도 마무리가 좋으려나 보다, 절집에 사는 스님과 보살님들, 남원과 구례에 사는 주민들 30여명이 두 시간 동안 조용히, 각자가 간직한 상처와 기쁨에 따라 서로 다른 장면에서 눈시울을 적시며 영화를 봤다.

 

 

사는 동안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도, 삶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인연이 소중하다는 걸 느끼며 해주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영화였다. 다들, 천은사에서 보니 더 깊은 여운이 남는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12월 3일엔 축제를 본다, 숨은샘 영화제의 두 번째 영화 ‘축제’는 매일을 축제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과 같이 보고 싶다. 모두의 작은 축제 ‘숨은샘 영화제’에 당신을 초대한다.

 

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허명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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