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힘이 되어 살아내자_ 첫 번째 마실가세(8월 25일) 후기 함께 꿈꾸는 세상

2009년 겨울, 두 남자와 토금마을에 갔었다. 길을 안내한 한 남자가 말했다.

‘토금은 숨어 살기 좋은 땅입니다. 구례에서도 첩첩산중이지요. 토금마을에는 산비탈 언덕에 있는 밭이라하여 '산밭등'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우리는 ’삼뱃등‘이라 해요. 도선국사가 이곳에 서서 풍수가 너무 좋아 3번 절을 하였다고 하네요. 토금이요, 다 좋은데 물이 부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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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말이 마음에 남았다. ‘다 좋은데 물이 부족해요.’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나 있는 부족한 한 가지, 그 한가지가 토금에 대한 여운을 깊게 했다. 우리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수원지를 지나 삼뱃등을 넘어 오봉산에 올랐다. 오봉산에서 오르면 섬진강을 볼 수 있다 길래 섬진강의 물빛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안내자를 따라 걸었다. 

맑고 추운 날이었다. 오봉산에 올라서 바라본 섬진강, 섬진강은 멈춰있었다.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3개 도, 12개 시군을 거쳐 망덕포구 배알도로 나가는 섬진강, 유역면적(4.897㎢)과 본류의 길이(225km)로 보면 남한에서 4번째로 큰 강이라는 섬진강은 잠시 멈춰, 비취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섬진강의 멈춤 앞에 세상도 멈춘 듯했다.

강렬했던 비취빛으로, 나의 첫 번째 토금마을 방문은 토금마을에 대한 느낌보다는 섬진강의 물빛으로 기억되었다. 오봉산을 앞산으로 가지고 있는 마을, 앞산에 오르면 섬진강을 볼 수 있는 곳이 토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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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말, 다시 토금마을에 갔었다. 단순소박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다섯 번째 걸음, 그날 ‘지리산만인보’는 문척초교에서 만나 월평삼거리를 지나 오봉산에 올랐다가 토금마을과 섬진강 수달서식지 생태경관보전지역을 걸어 백운나루에서 나룻배로 섬진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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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었다. 초록이 절정인 날이었다. 자운영도, 찔레도, 일본잎깔나무도 초록으로 표현되고, 초록이 있어 세상엔 평화만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토금마을 수원지에 모여 조명제 할아버지으로부터 들은 백운암골 이야기와 진도아리랑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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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제 할아버지는 토금마을에서도 산으로 더 들어간 백운암골에 살았었는데,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을 명분으로 백운암골을 소개하여 토금으로 왔다 하였다. 백운암골에 사실 때는 섬진강 너머 토지까지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고, 농사 일로 하루 세 번 섬진강을 건널 때도 있었다고 하였다.

그날 조명제 할아버지가 전쟁 시기 좌우대립 속에서 살아난 이야기를 하실 때 지리산만인보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눈앞도 흐려졌다. 2010년 4월, 토금은 따뜻한 초록색이었으나 민초들의 삶을 뿌리 채 흔드는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날이었다. 우리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외치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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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금은 지리산과 섬진강, 백운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구례 대부분의 마을과는 다르게, 중심축에서 살짝 비껴난 마을이다. 비껴났다 보다는 숨었다라는 표현이 좋을 수도 있겠다. 구례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곳이 토금이다.

‘토금’이란 말은 앞산인 오봉산과 마을이 자리 잡은 모양새를 두고 붙여진 이름이다. 오봉산에 있는 바위가 토끼 머리에, 토금마을은 꼬리에 해당하며, 토끼가 꼬리를 돌아보는 형국이라하여 토고미(兎顧尾)라 하였다가 쓰기 쉽게 토금으로 하였다고 한다.

토금은 고사리가 유명한 곳으로, 전라남도에서 제일 먼저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도, 마을에서 바라본 앞산에도 고사리가 자라고 있었고, 집집마다 마른 고사리가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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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끝자락, 토금마을에 다시 가게 되었다. 극단 마을과 일파만파, 지리산학교 구례곡성 시문학반, 국시모 지리산사람들이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던 ‘마실가세’의 첫 번째 마을이 토금이었기 때문이다.

마실가세를 준비하느라 마을을 들락거리며 알게 된 토금마을회관은 이제까지 본 마을회관 중 가장 멋진 곳이었다. 90년 전에 지어졌다는, 고건축의 냄새가 나는 마을회관만으로도 토금마을은 넉넉하고 품위 있게 느껴졌다. 깔끔하게 정리된 마을길과 텃밭 곳곳에서 가을을 만날 수 있어 괜스레 뿌듯해지는 곳이 토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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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가세'는 옆집에 온 도시 손님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소화시킬 겸하여 나가던, 아프다던 허리는 괜찮은지 달빛 아래 걱정스럽게 옮기던 걸음처럼, 저녁밥 먹고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하며 나서던 마실, 그런 마실이길 바라며 준비한 마을잔치에 붙여진 이름이다. 마실가세는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일을 마을과 함께 하기 위해, 마을을 방문하여 논의하고 결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길 반복하였다. 번거롭고 일관성 없는 듯하였으나 싫지 않은 과정이었다.

첫 번째 마을잔치 '토금으로 마실가세'는 2012년 8월 25일 낮 3시에 시작하여 저녁 9시에 마무리되었다. 낮 3시 마을회관에서 모인 마을사진관팀은 마무리 영상을 준비하고, 어머니들은 먹을거리를 준비하였다. 고사리와 고구마순 나물이 무쳐지고, 부추전이 부쳐지고 기름병이 오가고, 말이 오가고, 정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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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꺾이고 햇살이 부드러워지는 시간, 마실가세 참가자들은 마을 돌아보기에 나서 초동서사(草同書舍)까지 걸었다. 초동서사는 겸산(兼山) 안병탁 (1903-1994) 선생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후 1957년부터 37년간 문하생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실제하지 않았으나 소설로 유명해진 어느 곳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현실이 되고, 실제하였으나 인적이 끊긴 초동서사는 마치 영화 속 세트장 같았다. 초동서사도 만언당도 사람들이 오가고, 글 읽는 소리가 들려야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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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서사를 내려와 저녁밥을 먹었다. 광주에서 온 가족들,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 구례읍에서 달려온 이웃들이 밥과 고사리나물을 먹으며, 이렇게 맛난 고사리는 처음이라고, 들깨가루도 넣지 않은 나물이 왜이리 맛있냐고들 했다. 도토리묵도 뭔가 다르다고, 부추전도 특별하다고, 먹고 또 먹고, 어머니들께 감사하며 먹고, 부녀회에 고맙다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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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잔치는 마현영 이장의 인사로 시작했다. 마실가세가 지리산자락의 그 많은 마을 중에서, 구례에 있는 여러 마을 중에서 토금에서 첫 번째로 열리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 하였다. 훈남스타일 이장님 덕에 마을잔치에 온 어르신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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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잔치 첫 번째 출연진은 광의에 사는 루 님과 구례여중에 다니는 정혜빈 학생이었다. 루 님은 피아노 연주에 맞춰 자작곡한 노래를 불렀다. 지리산에 사는 기쁨, 구례에 사는 행복이 묻어나는 노래였다. 정혜빈 학생은 많은 어르신 앞에서도 떨지 않고 차분히 연주했다. 어르신들은 딸 같은 루 님과 정혜빈 학생의 연주에 힘껏 박수쳐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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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만들어 낭송하는 차례였다. 조명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황용훈 님이, 최복임 할머니의 이야기는 심진미 님이 읽었다. 시가 낭송되고 영상이 보여지는 내내 어르신들은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가끔씩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이야기고, 우리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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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이지, 좋은날 눈이 펑 펑 왔응께 을매나 좋아

 

구술 조명제 할아버지

 

나가 백운암, 백운마을 사람이제

반란사건때 마을이 없어져부러서

내려왔제

 

그 전에 어메이가 세 살 묵어 돌아가셌어

긍께 나 같이 고생한 놈은 없어

열 다섯 먹어 아버지도 돌아가셨제

부모가 없은께 누가 갈쳤겠어

 

섬어머니가

섬어머니가 나를 키웠어 그래가지고

나를 키웠어 그래가지고

그 분이 고맙제 나를 키운 사람이

어머이제 어머니

 

나같이 고생한 놈은 없어

아 긍께 배 타고, 걸어가서 배타고

토지까지 농사지어러 댕겼제 하루 세 번

하루 세 번 지게지고

새벽에 나가 나락 한 짐 지고 오고

밥 묵고 또 한 짐 지고 오고

저녁에 오면

백운마을 가는 중간쯤 오멘 아짐마들이 고개 내밀고

시방은 호강이야

 

 

시월 열여드레, 아 갸 누가 중맬 섰더만

선도 안보고

시월 열여드레인디 장가를 그 날 저녁에 갔는디

내가 스물서이고 여그는 열일곱

손맹순, 토지 신촌서 온 사람이여

백운암서 넘어 들어가 자고

아 이 자고 일어난께 눈이 눈이 와버렸어

아 눈이 와가지고 빌어묵을 가도 몬하네

우리 이모 당숙들 다 왔는데

눈이 펑펑 와부렀어

나는 눈이 좋은갑서 비오는거보다

좋은날이지 좋은날 눈이 펑 펑 왔응께 을매나 좋아

그래 내가 오래 사나봐 이 사람이랑

그래서 내가 오래 사나봐 눈을 좋아해서

 

좋은날이제 장날도

장날은 아무리 바빠도 가요, 그거 영감들 재밌지

내가 인자 가면 저 저 저기 뭐냐

어디냐 거기 아흔네살 먹은 그 양반 오면 술 받아주지

근디 이 버러지가 장날만 되면 장날만 되면

꼭 갔다와야 했어 좋은날인께

 

인자 을매나 살까

돈 있어바야 소용없어

내외간에 따순 밥 갈라묵고

그기 그 사는게 좋은날이제

 

우리 사는 이기 좋은날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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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머리 쪽하고 그랬는디, 어떻게 넘어갔는가 몰라

 

구술 최복임 할머니

 

저기, 친정에서 했지, 새뜸

가마타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만나서 그냥 살았어

갖다 대면 그냥 살았지

그래도 우린 좋게 살았어

 

구년 살았어, 구년

딸 둘, 아들 하나거든

구년인께 많이 난거지

네개 낳는데 하나 끊기고

아들 끊기고

 

밭 매고 논 매고, 농사짓고 그러느라

어떻게 넘어갔는가 몰라

새끼들 키워야지 어떻게 할거여

고생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지

이렇게 늙어버렸으니까 몰라

정신없이 키웠으니까 몰라

 

아들만 갔지

자취하고 살았지

밥 해먹고 살았는데

한번 가본께

밥을 하는디

나오도 모타게 해

어머니 나오지 말라고, 어머니 모탄다고

 

팔십 둘에 집을 젔는데

산에 가서 고사리 끈어온께

대목들이 자기 어무니랑 동갑이라고

어무니 어찌기 일하시냐고

 

 

지금은 암 것도 모태

그냥 밥먹고 노는게 일이라

노는 것도 되

 

자고나면

뽀도시 일어나

기대고 있다가

걸어 다니면

다리가 아파고, 허리 아프고

 

여기 올라온 게 일이라

깐딱깐딱 올라와

올라오면 얘기도 하고

백원짜리 화투도 칠 수 있고

딸 때도 있고 또 잃 때도 있고

 

옛날에는 머리 쪽하고 그랬는디

이젠 뼈따귀만 남았어

살다가 언릉 가야되는데

어서 가야할 건디

너무도 오래 살아서

맘대로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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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이 끝나고 흥에 겨운 조명제 할아버지와 최복임 할머니, 마현영 이장, 박종순 부녀회장이 노래를 불렀다. 덩실 춤을 춰야할 노래도 있었고, 강물에 떠나보내야 할 노래도 있었고, 집에 가서 흥얼거려야 할 노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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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손님으로 온 고명숙 님과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일파만파'도 따뜻해진 마음을 노래로 표현했다. 아이 노래, 어른 노래가 따로 없고, 이 마을과 저 마을이 구분 없이 모두가 하나 되는 자리였다. 어설프게 준비된, 우선 판을 벌이자하여 시작된 마실가세는 이렇게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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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로 마을 영상이 올라갔다. 지리산만인보가 걸었던 사진과 토금마을을 드나들며 찍었던 사진, 마현영 이장이 찍은 사진이 마을회관 벽에 비춰지자 어르신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네네, 우와 뭐하는 겨, 에고 힘들겄다.... 밖은 어두워지고, 첫 번째 마을잔치 '토금으로 마실가세'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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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준비한 마을잔치가 끝났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세월 이곳에서 살며 토금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어 주신 어르신들, 정말 감사합니다. 어두운 밤길, 조심히 가십시오.' 끝났음을 알리는 사회자의 말이 있었으나 어르신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쉬움과 고마움이 마을회관에 넘쳐났다. 건강히, 힘이 되어 살아보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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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강영석 님, 전재완 님, 허명구 님, 윤주옥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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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