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머스크의 `터널루프'는 교통 혁신인가 재미인가 자동차교통

loop5.jpg » 스페이스엑스 본사 주차장 지하에 만든 시범 터널루프. 스페이스엑스 제공

라스베이거스에 첫 상용 터널루프 공사중

최초의 민간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려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은 업체는 미국의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의 오늘을 있게 한 주인공은 억만장자 기업인 일론 머스크다. 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혁신가로 꼽히는 그의 원래 꿈은 지속가능한 교통수단과 에너지, 우주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면 “대학 시절 세계와 인류의 미래에 어떤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뛰어든 사업이 로켓과 우주선, 전기차, 태양전지판이다. 
2016년 12월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도심 교통 체증에서 자유로운 지하터널 교통 시스템을 건설하는 `터널 루프'(tunnel loop)다. 이는 그가 2013년 제안한 진공튜브형 초고속열차 `하이퍼루프'(hyperloop)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하이퍼루프가 도시간 원거리 교통을 염두에 둔 것인 반면, 터널루프는 시내 단거리 교통을 겨냥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못잖게 트위터를 즐겨 이용하며 뉴스거리를 만들어내는 그는 당시 스페이스엑스 본사가 있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교통 정체에 짜증을 내는 트위터를 통해 터널루프 구상을 처음 내놨다. 그가 하이퍼루프 아이디어 경진대회 수상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밝힌 터널루프 발상은 이런 것이다. "터널을 통해 다니면 교통 정체가 크게 완화되지 않을까. 높이가 다른 터널들을 여럿 만들면 교통 수요를 더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30층짜리 터널을 만들 수 있다면 도시 정체 문제는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다.”
loop2.jpg » 터널 뚫기를 마무리하는 순간. 라스베이거스시 제공

플라잉카 대신 지하터널을 택한 이유

대부분의 업체들이 미래 교통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는 플라잉카(비행택시)와는 다른 발상이다. 머스크가 새로운 교통 공간으로 하늘 대신 터널을 택한 것은 크게 3가지 이점 때문이다. 첫째는 항공기의 고질적인 문제인 소음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날씨 변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 셋째는 추락 사고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관광도시이자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요즘 터널루프 공사가 한창이다. 4870만달러(590억원) 규모의 이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굴 파기가 최근 마무리됐다. 터널 길이는 1.37km. 차량 왕복을 위해 두 개의 단방향 터널로 구성돼 있다. 올해 신축중인 새 전시장과 기존 3개 전시장(북, 중, 남)을 잇는다. 깊이는 12미터다. 첫번째 터널이 지난 1월 뚫린 데 이어 두 번째 터널의 굴착이 이번에 끝났다. 폭약을 사용하는 재래식 굴착과 달리 회전식 원형 절삭기로 땅을 파쇄하며 터널을 만들었다. 라스베이거스시 교통관광당국은 코로나19 상황이 괜찮아지는 걸 전제로, 내년 1월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시이에스'(CES)에 맞춰 개통할 계획이다. 완공되면 걸어서 15분 걸리던 거리를 2분 이내에 갈 수 있게 된다. 탑승료는 무료이며 3개 역을 설치한다.
Alignmet+101419.jpg » 컨벤션센터 루프 조감도. 라스베이거스시 제공

지하철보다는 고속도로에 가까운 시스템

터널루프를 운행하는 교통수단은 테슬라의 자율주행 전기차다. 16인승으로 개조한 모델엑스나 모델3를 62대 투입한다. 원칙적으론 최대 시속 155마일(250km)로 운행한다는 구상이지만 길이가 워낙 짧아 최고 속도에 크게 못미치는 시속 35마일(56㎞)로 운행할 예정이다. 운행 방식은 유동적인 듯하다. 애초 이 구상을 처음 내놨을 땐 스케이트보드같은 널따란 판 위에 차량을 올려 운행하는 방식을 구상했다. 그러다 2018년 12월 로스앤젤레스 본사 주차장 지하에 뚫은 시범터널(길이 1.83km)에선, 차 양쪽 앞바퀴에 신축성 있는 롤러를 부착해 차를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당시 머스크는 이 시스템은 테슬라 전기차뿐 아니라 모든 자동차에 장착할 수 있으며 비용은 200~300달러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방식의 문제는 승차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시승 고객들은 차량이 덜컹거리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를 반영한 듯 2019년 6월 보링 컴퍼니는 시범터널을 아스팔트로 포장했다. 교통신호도 없고 차선변경이나 중간정차도 필요없는 길을 자율주행으로 달리므로 굳이 레일이나 스케이트보드 같은 보조장치를 동원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링 컴퍼니는 터널루프는 지하철보다 지하고속도로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중간역에 서지 않고 목적지까지 직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 출입용 터널이 따로 있어서 운행 차량별로 목적지를 달리해 운행할 수 있다. 중간 정차가 필요 없어 최대 속도에 가깝게 평균 속도를 낼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 교통당국은 앞으로 공항과 호텔을 연결하는 터널도 만들어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베이거스 루프'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베이거스 루프 전체가 완공될 경우 최고 시속 250km에 1시간당 4천대 운행을 목표로 한다. 
cyber.jpg » 아스팔트로 포장된 시범 터널루프. 유튜브 갈무리

굴 파기에서 나오는 흙을 내벽 재료로 재활용

터널루프의 지향점은 빠르고 저렴한 교통 시스템이다. 건설 비용을 기존 뉴욕 지하철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린다는 목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뉴욕 2번가 지하철 건설 비용은 1마일당 25억달러이며 세계 평균으로는 1마일당 5억달러다. 물론 어떤 교통 시스템의 경제성을 단순히 건축비만 갖고 판단할 수는 없다. 운송 능력과 사고 위험, 운영 비용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어쨌든 건설 비용 절감을 위해 머스크는 우선 터널 크기를 줄였다. 터널의 지름을 현재 28피트(8.5미터)에서 14피트(4.3미터)로 줄였다. 보링 컴퍼니는 웹사이트를 통해 지름을 반으로 줄이면 공사 비용을 3분의1~4분의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해진 트랙을 달리는 자율주행 전기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둘째, 터널 보링 머신(TBM)의 굴착 속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금의 터널 굴착기계는 너무나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달팽이가 움직이는 속도가 14배 더 빠르다고 한다. 달팽이는 보통 한 시간에 0.05km를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링 컴퍼니는 "현재 달팽이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속도 향상의 관건인 기계 출력을 3배로 높이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업 시간의 공백을 줄이는 문제가 있다. 지금은 공사 시간의 절반은 굴을 파고 나머지 절반은 지지대를 세우는 데 투여된다. 보링 컴퍼니는 공사 때 나오는 흙을 현장에서 벽돌로 만들어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벽돌로 터널 내벽을 쌓는다. 콘크리트는 전세계 온실가스 매출량의 4.5%를 차지한다. 흙벽돌을 쓰면 콘크리트를 쓸 필요가 없으므로 비용도 줄이고 환경 영향도 줄일 수 있다.
loop6.png » 보일 컴퍼니가 제작한 터널보링머신. 보링컴퍼니 제공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볼티모어 등에도 제안

보링 컴퍼니는 시카고에서도 터널루프 구축을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시카고 익스프레스 루프'라는 이 시스템은 라스베이거스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시카고 도심과 오헤어공항 간 16마일(26km) 구간에 구축한다. 주파 시간은 12분. 로스앤젤레스 이스트 할리우드 등에서 엘에이다저스 구장을 잇는 덕아웃루프(Dugout Loop), 워싱턴 디시에서 매릴랜드주 볼티모어를 연결하는 `이스트 코스트 루프'(East Coast Loop)도 제안한 상태다. 매릴랜드의 터널은 머스크가 구상중인 워싱턴~뉴욕을 29분만에 주파하는 하이퍼루프의 첫 구간이기도 하다.
musk.jpg » 일론 머스크의 첫 공식 전기집 한국어판 표지. 김영사 제공

하는 것마다 판을 바꾼 `미래의 설계자'

2015년에 나온 머스크의 첫 공식 전기집은 그를 `미래의 설계자'라고 표현했다. 이런 수식어에 걸맞게 그는 손 대는 것마다 그 분야의 산업지형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후반 페이팔이라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개발해 소매 유통의 흐름을 바꿨다. 페이팔을 통해 번 돈으로 2002년 설립한 스페이스엑스는 로켓 재활용과 민간 유인 우주선 시대를 열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별을 탐험하면서 사는 미래와 지구에 갇혀 사는 미래를 비교해봤다. `우리는 언제 화성에 가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그런데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나한테 돈이 있으니 직접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세운 전기차업체 테슬라는 장난감 취급받던 전기차를 고급차 모델로 변신시켰다. 전기차는 이제 세계 자동차의 미래를 이끄는 한 축이 됐다. 2006년 세운 태양광패널업체 솔라시티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2010년대 중반 미국 전역에 주택 지붕 바꾸기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머스크의 목표 지점은 재밌으면서도 혁신적인 지속가능한 교통 시스템 개발이다. 머스크의 터널루프는 이런 혁신의 연장선에 있을까? 아니면 흥미롭긴 하지만 더는 확장하기 어려운 이벤트 사업으로 그칠까?
*지면기사(2020.6.8.)

출처
보도자료
아스팔트로 포장
보링 머신은 첫 번째 머신 'Godot'에서 2세대 'Line-Storm'를 넘어 3세대 'Prufrock' 보링 머신/출력 3배
건설비용 문제
다른 도시 계획
공사 현장 스트리밍 영상
보링 컴퍼니 프로젝트 5개
라스베이거스 프로젝트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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