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로봇시대, 빈곤층이 더 위험하다 사회경제

robot1.jpg » 로봇의 부상은 빈곤층에 더 위협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시티그룹 보고서에서 인용

 

에티오피아 일자리 85%가 자동화에 속수무책

 

지난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선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향후 5년간 15개국에서 약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의 일자리 박탈 문제는 사실 산업혁명 초기부터 지속돼온 해묵은 이슈다. 산업혁명 초기라 할 수 있는 1811년에 이미 영국 직물노동자들의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난 데 이어, 대공황 와중에 있던 1930년엔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기술적 실업’ 시대의 도래를 예측했다. 당시 케인스는 “우리는 지금 이름조차 생소한 새로운 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자주 듣게 될 이 병의 이름은 바로 기술적 실업이다. 이 병은 인간이 노동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는 것보다 노동을 절약하는 방법을 더 빠른 속도로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화폐경제론)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인공지능과 인간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단계까지 기술 발전이 이뤄지면서 자동화(로봇)에 의한 일자리 박탈 문제는 지구촌의 주요 경제 현안으로 떠올랐다. 최근 미국의 시티그룹과 영국 옥스퍼드대의 옥스퍼드마틴스쿨(칼 베네딕트 프레이 박사와 마이클 오스본 조교수)이 공동으로 “로봇으로 대표되는 일자리의 자동화는 선진국보다 오히려 개발도상국에 더욱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담은 연구보고서 '일과 기술:혁신과 고용의 미래2.0'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화에 따른 최고의 일자리 박탈 위험 국가는 선진국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다. 무려  전체 일자리의 85%가 자동화 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네팔, 캄보디아, 중국, 방글라데시, 과테말라도 최상위 위험군에 속했다. 이는 OECD 전체 평균 57%나 미국의 47%를 압도하는 비율이다. 개도국 가운데 자동화의 위험이 가장 적은 것으로 분석된 우즈베키스탄도 55%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robot2.jpg » 로봇에 의한 자동화가 이뤄질 경우 사라질 위험에 처한 세계 각국의 일자리 비율.

 

개도국의 '미성숙 탈산업화' 유발하는 자동화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박탈 문제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지난 2013년 옥스퍼드마틴스쿨이 미국의 일자리 47%가 20년 이내에 자동화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이후 본격화했다. 그동안 이뤄진 연구는 영국, 일본 등 주로 선진국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 세계은행 자료를 토대로 연구 대상 지역을 전세계로 확대한 결과. 일반의 예상과는 다르게 자동화의 충격이 개도국에서 훨씬 더 강력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 것. 보고서 공동저자인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옥스퍼드마틴스쿨 교수는 국가별 1인당 소득 수준과 자동화에 대한 취약성 사이에 강력한 음의 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어찌된 연유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개발도상국의 강점은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농업과 제조업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그러나 앞으로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해감에 따라 이런 전통적 강점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개도국 일자리 중에 손쉽게 자동화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는 걸 뜻한다.특히 자동화의 부상과 함께 3D 프린팅 같은 새로운 방식의 제조기술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원가 경쟁력을 노리고 개도국에 진출했던 선진국 기업들이 앞으로 공장을 본국으로 유턴시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다수의 개도국에 산업화 단계를 제대로 밟아보기도 전에 산업화 이후에 대처해야 하는 ‘미성숙 탈산업화’라는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robot3.jpg » 제조업 고용 비중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와 그 때의 1인당 GDP. 한국은 1989년 20%대 후반에서 정점을 찍었다. 당시 1인당 GDP는 1만달러를 밑돌았다.

 

중국은 77%, 인도는 69%의 일자리가 위험에


주보고서에 따르면, 근대 자본주의 산업을 이끈 서구에서 제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30%에서 절정을 맞았다. 그 때가 2차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50~1980년이었다.   1인당 GDP(2005년 불변가격 기준)가 1만1천~2만1천달러인 시기였다. 반면 브라질, 인도 같은 나라들은 이미 1인당 GDP가 5000달러(브라질), 1천달러(인도)도 안되던 때에 불과 15% 지점에서 제조업 고용 비중의 절정을 맞았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 역시 1만달러가 안되는 시기에 정점을 찍었다.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대부분에서는 제조업생산 비중이 지난 25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현재 이들 나라에서의 제조업 일자리 비중은 6%에 불과하다. 프레이 박사는 “자동화는 소비 수요가 작고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나라들에서 잠재적으로 더욱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집약 생산에서 자본집약 생산으로의 이런 이동은 아직도 소농이 중심인 신흥국들에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소농국가에서는 농업 자체가 자동화에 취약하다. 또 농업 노동자의 제조업 이동이 반드시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중국에선 이미 로봇투자 회수기간이 2년 이내로 단축됐다. 보고서는 이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인도의 69%, 중국의 77% 일자리가 자동화의 고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한다. 


 

robot4.jpg » 개발도상국들의 자동화 민감도. 가장 낮은 우즈베키스탄이 55%, 가장 높은 에티오피아가 85%다.

 

변화 속도는 빨라지고, 영역은 넓어지고, 혜택은 좁아지고

 

앞서 지난해 2월에 낸 보고서에서 두 팀은 현재의 기술 변화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과거와 달라진 점 세 가지를 꼽은 바 있다. 첫째는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졌으며, 둘째는 기술 변화 영역이 넓어지고 있고, 셋째는 과거와 달리 기술변화의 혜택이 널리 공유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기술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공작기계의 주요 부품인 스핀들(spindle)이 유럽 이외의 지역에 보급되는 데는 119년이 걸렸지만 인터넷이 전세계에 확산되는 데는 불과 7년이 걸렸다는 것. 글로벌화, 디지털화의 영향이다. 이들은 연결성의 다음 단계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사물이다. 시스코 예측에 따르면 사물인터넷은 2013년 130억개에서 2030년 5천억개로 급증할 전망이다. 데이터량은 18개월마다 2배씩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는 기술 변화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빅데이터 혁명과 기계학습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갈수록 더 많은 업무가 기술로 대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자동차 운전처럼 순전히 인간만이 가능했던 일들에도 이젠 기계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저임금 국가들에서 자동화 확산은 오히려 그동안의 비용 절감 매력을 퇴색시켜 이들 나라의 고도성장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개도국과 선진국의 갭을 줄여온 제조업이 자동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과거와 같은 부의 확산 효과가 이제 더 이상은 통하지 않게 됐다. 이번 연구 보고서는 이런 세가지 기술 변화 포인트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인 셈이다.

04733374_P_0.jpg » 자동화의 일자리 영향은 한 나라 안에서도 도시별 특성에 따라 다양하다. 사진은 리싱크로보틱스의 협업로봇 '백스터'. 리싱크로보틱스 제공

 

신기술의 일자리 창출, 갈수록 떨어져


보고서는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자동화의 영향은 모두 똑같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선진국 도시들의 일자리에 주된 영향을 끼친 것은 기업의 해외이전이었다. 반면 지금 자동화는 선진국 내 전통 서비스 일자리조차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연구팀이 미국의 도시를 분석한 결과, 프레스노와 라스베이거스가 가장 큰 일자리 위험에 빠져 있고 보스턴과 워싱턴, 뉴욕의 위험도는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스턴처럼 상대적으로 기술 직업의 비율이 높은 도시에서는 자동화에 취약한 일자리 비중이 38%에 불과하다. 반면 샌프란시스코 남동쪽에 있는 프레스노는 이 비율이 54%에 이른다.
보고서는 1980년대에 미국 노동력의 8.2%가 신기술의 부상과 관련 있는 새 일자리로 옮겨갔다는 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 숫자는 1990년대에 4.4%, 2000년대에 0.5%로 뚝 떨어졌다. 프레이 박사는 “이는 현재의 왓츠앱이 과거의 지엠이나 아이비엠만큼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걸 말해준다”라고 강조했다. 대신 보고서는 향후 수십년 동안 생겨날 일자리의 대다수는 건강 부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강부문에서만 2012~2022년에 미국에서 400만개 이상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robot5.jpg » 제조업부문 1만명당 로봇 수. 한국이 478개로 로봇 사용 비율이 가장 높다. 세계 평균치의 7배가 넘는다. 이어 일본 독일 미국 차례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교육부문 투자

 

기술 변화가 가져오는 일자리 충격에 정책 당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시티 그룹이 투자자 고객들을 대상으로 물어본 결과, 미래세대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자동화의 부정적 영향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동시장 정책으로는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훈련과 함께 근로장려세제(EITC=저소득층 가구에 가구원수와 급여 등에 따라 근로장려금을 지급하는 제도)나 조세부담 완화, 자영업자들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꼽았다.
캐슬린 보일(Kathleen Boyle) 시티 지피에스(Citi GPS) 편집장은 “노동자에 대한 자동화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에 놓인 도전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인식하고 교육 문제를 다룰 정책 아젠다 세팅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및 참고
 http://www.oxfordmartin.ox.ac.uk/news/201601_Technology_at_Work_2
 http://www.ft.com/intl/cms/s/3/577e44be-c426-11e5-b3b1-7b2481276e45.html#axzz3zdRSWO92
 http://www.kurzweilai.net/impact-of-automation-puts-up-to-85-of-jobs-in-developing-countries-at-risk?utm_source=KurzweilAI+Daily+Newsletter&utm_campaign=0703504b19-UA-946742-1&utm_medium=email&utm_term=0_6de721fb33-0703504b19-282184481
 http://www.kban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363


 보고서 원문 보기

   고용의 미래:컴퓨터화는 일자리 미래에 얼마나 민감한가(2013.7)
 http://www.oxfordmartin.ox.ac.uk/downloads/academic/The_Future_of_Employment.pdf
 일과 기술 : 혁신과 고용의 미래(2015.2)
 http://www.oxfordmartin.ox.ac.uk/downloads/reports/Citi_GPS_Technology_Work.pdf
 일과 기술 : 혁신과 고용의 미래2.0(2016.1)
 http://www.oxfordmartin.ox.ac.uk/downloads/reports/Citi_GPS_Technology_Work_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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