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이슈] "2030년 세계는 `다극' 아닌 `다결절'로 간다" 미래이슈

leo2.jpg »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레오폴드 슈메르징 유럽의회 정책분석관. 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인터뷰/유럽의회 글로벌트렌드팀 정책분석관 레오폴드 슈메르징


미국의 정보기관 16개를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보좌기관 NIC(국가정보위원회)가 펴내는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는 지구촌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거대한 흐름(메가트렌드)에 관한 분석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새로운 미국 대통령 취임에 맞춰 작성되는 이 보고서는 대략 15년 안팎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주요한 흐름을 선별해 그 배경을 분석하고 다양한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1997년 `글로벌 트렌드 2010'을 시작으로 2017년 `글로벌 트렌드 2035'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 동안 6차례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중심 시각의 보고서라는 한계가 있다. 2010년대 들어 유럽에서 독자적인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 작업을 시작한 이유다. 유럽의회는 2014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글로벌 트렌드 2030' 보고서를 냈다. 이달 초 열린 국회미래연구원 개원 1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월드 2050 :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정책 수립'에 참석해 보고서 내용을 소개한 레오폴드 슈메르징(leopold schmertzing) 유럽의회 글로벌트렌드팀 정책분석관을 만났다.

leo4.jpg » 2019년 4월 발표한 유럽의회의 `글로벌 트렌드 2030' 표지.

2014년 이어 두번째 `글로벌 트렌드 2030' 보고서

7가지 메가트렌드서 `다결절화' 독특한 개념 도출

"강국 중심 아닌 사안별 연대 네트워크 출현" 전망


-유럽의회 보고서와 미 NIC 보고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NIC 보고서는 내용이 상세하고 방대하고 권위도 있다. 우리도 미국 NIC와 협력하고 있다. 수백쪽짜리 두터운 책으로 출판되는 미국 것에 비하면 유럽의회의 보고서는 분량이 단출한 편이다. 1시간 정도면 다 훑어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미국 보고서의 복사판은 아니다. 유럽에 관한 연구만은 차별성을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연구기관들과 협력하고 있다. 또 정부 기관인 NIC와 달리 우리는 의회 기관이라서 좀 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에 대해 과감하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럽의회 연구원들이 1년여 작업 끝에 완성한 `글로벌 트렌드 2030' 보고서는 2030년까지 세계의 변화를 주도할 메가트렌드로 7가지를 꼽았다. 기후변화, 인구 증가, 도시화, 경제 성장, 에너지 수요 증가, 연결성 강화 등 대부분 다른 보고서에서도 공통으로 지적하는 익숙한 것들이다. 다만 보고서가 맨 마지막으로 꼽은 다결절(poly-nodality)은 다른 트렌드 보고서에선 볼 수 없었던 생소한 용어다. 현재의 세계 질서는 다극화(mutipolarity)가 아닌 다결절화(poly-nodality)로 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개념인지 물어봤다.
"많은 분석가들이 세계가 다극체제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성급한 판단이라고 본다. 세계는 여전히 단일극체제에 있다. 단지 빠져나오려 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에 대적할 만한 나라는 아직 없다. 흥미로운 개념이긴 하지만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얘기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유효한지 우리는 자문해봤다. 현재는 군사력, 경제력이 중요하지만 앞으로 20년 후에도 그럴까? 다극체제보다 좀더 유효한 개념을 생각하던 중 연구팀원 일원인 매트 버로스(애틀랜틱 카운슬 소속)가 유럽, 미국 학자들과 함께 양자,다자주의를 강조하는 한 보고서에서 힌트를 얻어 `다결절' 개념을 끌어내게 됐다. 다결절이 뜻하는 것은, 특정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주체들 사이에 더 빠르고 지속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할수록 힘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다결절 세계는 새로운 강국을 중심으로 그룹을 짓는 것이 아니라 어떤 네트워크의 노드(연결점), 즉 다른 많은 역할자들을 연결해주는 능력 여하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세상을 말한다.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자도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도시, 기업, 사회운동단체, 국제기구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 개념에 끌린다고 말했다. 이는 유럽의 바람도 담겨 있는 개념이라고도 덧붙였다. 유럽은 군사력에 기반한 세상보다는 이런 세상에 더 잘 준비돼 있다. 그는 세계가 2030년까지 얼마만큼 이런 세상이 될지는 중국과 다른 나라들, 특히 미국 간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한 국가가 더 강한 국가와 영유권 분쟁이 벌어질 경우, 다결절 세계에선 다양한 주체들과 연대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구축할 수 있다. 다결절은 다자주의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다자주의는 공통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다결절 세상엔 공동원칙이 힘을 잃고, 작고 다양하고 독립적인 나라들이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응하는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결절 세계에선 누구라도 협력 상대가 될 수 있다. 일종의 자발적 연대(coalition of the willing)다. 이는 유럽의 경우 지역적 주체들과 그때그때 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대의 주체는 나라가 될 수도 있고 국가가 될 수도 있고 기업이 될 수도 있다."
그는 "2050년까지 길게 보면 중앙집중형의 국민국가 효율성에 더 큰 의문을 품게 된다"며 "우리는 이미 코스모폴리탄과 민족주의자들의 분리를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30년 후엔 더욱 적절한 질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leo5.jpg » 유럽과 다른 지역의 위상 비교.

"1차 보고서때보다 불평등·대응능력·민주주의 상황 더 악화"


- 5년 전 첫번째 보고서에서 언급한 내용이 두번째 보고서에서 달라진 것이 있나?
 "세 가지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더 기울었다. 첫째는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악화된 점을 꼽을 수 있다. 둘째, 이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응 능력도 약해졌다. 셋째는 민주주의가 후퇴했다. 프리덤하우스에선 이미 10여년 전부터 민주주의 후퇴를 경고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유럽에선 민주주의 후퇴 문제는 남의 문제로 인식해왔다. 그런데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트럼프 집권 등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유럽에선 4차산업혁명에서 가장 주요한 흐름을 무엇이라고 보나.
"단언컨대 소셜미디어다. 소셜미디어의 파급력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엄청나다. 소셜미디어는 사회, 생활, 정치, 산업, 데이터 창출 등등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 또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다. 물론 미래를 보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더 강력할 것이다. 유럽은 이 부문에서 기술과 자본은 있으나 진척 속도가 더디다."
-앞으로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이 될까?
"당장 시급한 건 기후변화의 폭발력이다. 전 세계가 협력하지 않으면 20년 이상 지속될 문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개개인의 커진 힘이다. 개인도 정치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제는 모두가 정치 주체인 시대가 됐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가 만든 창조물이지만 나보다 더 똑똑한 상대가 탄생한다. 그런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유럽의회의 글로벌 트렌드팀은 28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럽의회의 연구 서비스 조직으로 2014년 설립됐다. 가장 큰 역할은 의원들의 정책 자문이다. 슈메르징 분석관은 "사무총장은 우리에게 특정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모든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의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도록 독려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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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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