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씨앗의 방주, 작물의 미래를 품에 안다 에너지식량

 

1216.jpg »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고 조감도. 스발바르저장고 제공

 

폭설과 가뭄, 혹한과 해빙…유별났던 올 겨울 이상기후

 

해가 갈수록 이상기후 현상이 심해지는 걸 목격하지만, 올 겨울 지구촌의 기상이변은 매우 유별난 듯하다. 미국 동쪽끝 워싱턴은 혹한과 폭설로, 서쪽끝 캘리포니아는 가뭄과 기습폭우로 큰 손실을 입었다. 반면 유럽대륙은 전에 없는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북유럽국 스웨덴에선 얼음과 눈이 녹아 1급 홍수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영국 역시 250여년만의 겨울 홍수로 1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호주에선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들이닥쳐 산불이 잇따르고 있다. 세계 주요 곡창지대인 남미에선 수개월째 비가 오지 않아 곡물, 커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해안지역이 기록적인 장기간 폭설로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1217.jpg » 스발바르종자저장고 입구.

 

종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연재해와 인간의 탐욕

 

 갈수록 잦아지는 기상이변은 농작물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다. 자연 재앙은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 되면 종의 안전성에도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기상이변과 이에 따른 작물 피해, 식물 질병 확산, 그리고 전쟁 등 인간에 의한 대규모 작물 파괴 등으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를 농작물 멸종으로부터 종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방법은 없을까?
  

28694_img___1393578556.jpg » 종자가 담긴 박스를 저장고로 옮기고 있다. 스발바르저장고 제공

 

북극권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 종자보관소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고'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세계 최대의 종자보관소가 있다. 북극점에서 약 1300km 거리에 있는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고(SGSV=Svalbard Global Seed Vault)다. 북위 78도에 있는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의 스피츠베르겐(Spitsbergen)섬 안의 산 깊은 곳에 있다. 농작물 종을 멸종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고, 생물다양성 정보를 후손들에게 손실없이 물려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만들어낸 시설이다

 

DSC_0882_tunell_F_Mari_Tefre.jpg » 지하저장고로 연결된 터널.

 

출범 6살 생일 맞아 일본 등서 귀한 종자 2만여종 반입

 

올해로 문을 연 지 6년을 맞은 이곳에 최근 새로운 종자 2만여종이 들어왔다. 일본과 브라질, 멕시코, 페루, 미국에서 온 종자들이다.
 스발바르저장고 쪽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세계 인구는 앞으로 40년 안에 50%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사이 기후 변화는 식물의 성장과 생존 능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식물 다양성은 그래서 다가오는 변화에 농업이 적응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다.”라며 “이 저장고야말로 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한 궁극의 안전장치이다”라고 밝혔다.

doren_inn_til_Hvelvet_F_Mari_Tefre.jpg » 스발바르저장고의 출입문. 상근자가 없는 이 저장고의 출입문은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다. 스발바르저장고 제공.   

 

영구동토층 아래 지하 120미터…소행성 충돌에도 끄떡 없어

 

이를 위해 저장고는 지진이나 핵무기, 기상이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물론 심지어 소행성 충돌에도 끄떡없을 만큼 견고하게 설계돼 있다고 한다. 해발 130m 영구동토층의 사암으로 이뤄진 바위산 속 지하 120m라는 저장고의 위치가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 전기 공급이 끊겨도 저장고를 감싸고 있는 영구동토층이 영하 3.5도 이하로 온도를 유지해준다. 저장고를 운영하고 있는 노르웨이 정부는 이곳을 성경 속의 ‘노아의 방주’에 빗대 ‘씨앗의 방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저장고에 상주 근무자는 없다. 새로운 종자를 반입하거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같은 특별한 손님이 찾아올 경우에만 문이 열린다. 굳게 닫혀 있는 그 문이 지난주 6주년 생일(2월26일)에 맞춰 오랫만에 새 식구를 맞기 위해 열렸다.

 

 800px-Tsang.jpg » 티베트 대표 음식인 참파의 재료들. 참파는 보리를 볶아서 절구에 찧어 가루로 만든 가루에 설탕이나 버터 등을 섞어 반죽해 먹는 것이다. 위에 봉지에 담겨 있는 것이 보릿가루다. 위키미디어  

 

일본, 동일본대지진 겪은 뒤 종자 맡기기로 결정

 

이번에 새로 반입된 종자엔 세계 곡물생산량 4위인 보리가 있다. 이 종자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맥주와 위스키, 일본의 미소된장과 사케, 티베트의 참파(보리를 볶은 뒤 절구로 찧어 가루로 만든 음식) 등의 원료로 쓰이는 종자다. 일본이 이 종자를 이곳에 보관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태였다. 종자는 냉동보관해야 하는데, 대형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냉동보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선 오카야마대 보리유전자센터가 보관하고 있는 수천종 가운데 1차로 575종을 이곳에 입고했다. 앞으로 5천종을 순차적으로 이곳에 반입할 계획이다.
 

800px-Feijoada_completa.jpg » 검은콩을 기본재료로 한, 브라질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 페이조아. 위키미디어

 

식민지시절 고통을 간직한 브라질의 검은콩 종자

 

새로 반입된 씨앗 표본엔 야생 종자도 있다. 야생 종자를 수집하는 이유는 이들 다양한 변종들 속에서 더위, 가뭄, 질병 등에 강한 내성을 지닌 유전자적 특성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페루에서 191종의 야생 감자와 65종의 야생 고구마 종자를 보내왔다. 스페인의 국제옥수수 및 밀 개발센터는 옥수수 1946종, 밀 5964종을 보내왔다.
 브라질의 국민음식 재료로 쓰이는 종자도 들어왔다. 거의 모든 브라질 음식에는 검은콩이 기본재료로 쓰인다. 이 콩은 브라질의 전통 서민음식 ‘페이조아’의 필수 재료이다. 페이조아는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노예 생활을 하던 토착민들이 개발한 소고기 및 돼지고기 스튜로, 이제는 브라질 국민 음식이 됐다. 브라질농업연구센터에서 514종의 검은콩 종자를 이곳으로 들여다놨다.   
 

Red_Okra_Pods.jpg » 고추처럼 생긴 레드 오크라. 위키미디어

 

이민자 가족들의 애환이 서린 미국의 종자들

 

미국의 특별한 종자들도 스발바르에 도착했다. 체로키 지역에서 몇세대에 걸쳐 내려온, 고추처럼 생긴 ‘레드 오크라’, 19세기에 시럽 생산용으로 특화 재배된 수수, 헝가리 출신 이민자 가족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온 체리 토마토 등이다. ‘씨앗을 나누는 사람들’(Seed Savers Exchange)이란 이름의 비영리단체가 보내온 것으로, 이들은 희귀한 종자들을 보존하고 농부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한다. 이런 활동은 긴 세월 속에서 소중하고 특별한 씨앗들을 만들어낸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들이다.
 

SGSV Illustration w-o Text FINAL(1).jpg » 스발바르종자저장고 구조도. 터널 안쪽에 3개의 저장고가 있다. 국제작물다양성재단 제공.

 

지금까지 82만여종 보관 위탁

최대 450만종 보관할 수 있어

한국도 6년전 1만3천여점 맡겨

 

이번에 들어온 것까지 합쳐 스발바르저장고에 현재 보관중인 종자는 모두 82만169종에 이른다. 종자저장고는 3개의 지하저장고로 구성돼 있다. 각 저장고는 150만종의 씨앗 표본을 저장할 수 있다. 인근 발전소에서 공급받는 전기로 운영되는 냉각시설의 도움을 받아, 저장고는 섭씨 영하 18도의 내부온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애초 이 저장고는 1980년대 노르웨이유전자센터(NBG)가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이후 큰 진척을 보지 못하다 2004년 국제식량농업기구의 ‘식량농업식물유전자원 국제조약(ITPGRFA)’이 발효되면서 국제적인 공감대를 얻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건설비 5천만크로네(약 89억원)는 노르웨이 정부가 댔다. 운영은 노르웨이 정부가 맡고, 운영비용은 노르웨이 정부와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이 지원한다. 따라서 저장고 보관비는 따로 없다. 저장고는 보관만 할 뿐 소유권은 종자를 위탁한 나라에 있으며, 들어온 종자는 위탁한 기관의 요청에 의해서만 반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저장고 출범 첫해에 보리, 콩, 벼, 조, 수수 등 31개 작물의 종자 1만3185점을 이곳에 보냈다.

1219.jpg » 저장고 내부. 종자 표본을 담은 상자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스발바르저장고 제공.  

 

 낟알로 치면 22억여개까지 보관 가능…20년 지나면 교체해줘야

 

 이 저장고에선 한 품종의 종자당 평균 500개의 씨앗을 보관할 수 있다. 현재 저장 용량이 최대 450만종이므로 최대 22억5천만개의 씨앗 저장이 가능한 셈이다. 이곳에 보관된 종자는 20년이 지나면 다른 씨앗으로 교체해줘야 한다. 발아율을 유지해주기 위해서다.

 스발바르저장고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100여개국 1400여 종자은행에 보관돼 있는 종자는 모두 650만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확실하게 품종이 구별되는 것은 1백만~2백만종이라고 한다.

 

 

출처
스발바르종자저장고 웹사이트

http://www.regjeringen.no/en/dep/lmd/campain/svalbard-global-seed-vault.html?id=462220  
관련기사가 나온 웹사이트

http://www.theatlantic.com/technology/archive/2014/02/future-humans-will-thank-us-for-their-barley-and-okra/284093/ 
국제작물다양성재단 웹사이트

http://www.croptrust.org/content/svalbard-global-seed-vault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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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