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계 평화 지수는 높아지고 있나 사회경제

conflict.jpg » 1946~2010 세계 무력충돌 추이. 빨간색은 국가간 충돌, 파란색은 내전, 노란선은 합계. sipri.

 큰 흐름은 분쟁의 지속적 감소

 최근 6년 간은 평화 상황 악화

 한국 평화지수 순위는 47위

 최고 평화국가는 아이슬란드

 

 오늘날의 인류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자연의 역사는 어떤 측면에선 생존을 위한 개체들간의 투쟁사다. 자연 안에서 진화를 거듭해온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그 투쟁은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한다. 가장 대규모적이고 집단적인 폭력이 바로 전쟁이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폭력은 어떤 추세를 보였을까. 전중환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쟁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고 말한다(<한겨레> 2013년4월2일 `세상읽기' 칼럼). 그에 따르면 1만여년 전엔 세계 총인구의 15%가 전쟁으로 죽었다. 반면 20세기에는 총인구의 0.7%가 전쟁으로 죽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서부터 사망자 수가 크게 줄기 시작해 1980년대에는 세계 인구의 0.01% 미만이, 21세기엔 0.001% 미만이 전쟁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국제포럼기구인 윌튼파크의 2011년 보고서를 보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을 포함하더라도 1950년대 이후 무력충돌로 인한 사망자 수는 90%나 감소했다고 한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폭력을 배척하는 심리적 기제들, 즉 공감, 자기절제, 이성, 정의감 같은  우리 내부의 ‘천사들’이 제도와 규범으로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간 무역, 국제기구 같은 장치들이 그런 사례들이라는 것.
 

 국가간 충돌은 줄고 국가 내부 폭력은 증가

 

 이런 추세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을까. 2008년부터 해마다 세계평화지수(GPI)를 발표해오고 있는 호주의 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 IEP)라는 단체가 최근 발표한 세계평화지수를 보면, 유감스럽게도 6년 사이 세계 평화 상황은 5% 악화됐다. 주요 원인으로는 살인 증가와 59개국의 군사비 지출 증가 등이 꼽혔다. 세계평화지수를 구성하는 22개 지표 가운데 개선된 것은 5개에 불과했다. 그 5개는 정치적 테러, 군사비 지출(GDP 대비), 10만명당 군인 수, 핵과 대량살상 무기 능력, 국가간 충돌로 인한 사망자 수다.
 전체적으로는 국가간 무력충돌은 감소하고 국가 내부의 조직적인 폭력이 증가했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시리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데, 2008년 이라크 내전의 사망자 수가 1만2050명이었던 데 비해 2012년 시리아 내전의 사망자 수는 7만2900명이나 됐다.
 가장 악화된 지표들은 살인율, 범죄 인지, 폭력 시위이다. 이 지표들은 소득수준과 정부관리 형태에 따라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살인율은 유럽과 북아메리가케서는 감소했으나 나머지 지역에서는 증가했다. 폭력 시위는 유럽을 포함해 중동 북아프리카 러시아 남아시아 등에서 증가하는 등 좀 다른 양상을 보였다. 반면 국가간 충돌의 감소는 군사비 지출, 군인 수, 국가간 충돌 사망자 수의 감소로 나타났다. 군사비 지출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긴축재정에 영향을 받았다.

 이번 조사에서 110개 국가의 평화지수가 악화됐으며 개선된 국가는 48개국에 불과했다. 평화지수의 악화로 지난해 세계 경제에 4730억 달러의 비용이 추가됐는데, 이는 2012년 개발도상국 개발원조(ODA) 금액의 4배에 이르는 규모라고 연구소쪽은 밝혔다.
 지난해 살인 사건은 8% 증가했다. 이는 남미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사건 증가에 거의 전적으로 기인했다. 예컨대 온두라스의 살인 사건 수는 인구 10만명당 10명 가까이 늘어난 10만명당 92건으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이 단체 설립자이자 집행의장인 스티브 킬렐리아(Steve Killelea)는 “개발도상국의 도시화가 전세계 살인 사건 증가의 중요한 요인”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찰 내부의 부패 척결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군사비 지출 지표의 악화는 다수의 저-중소득 국가들에서 발생했다. 이들 국가는 이란, 이라크, 오만, 짐바브웨와 아프가니스탄, 코트디부아르 같은 권위주의적 정권들로 이들의 군사비 지출 규모는 GDP의 7%를 웃돈다. 주목되는 것은 전체적인 방위비는 1998년 이래 처음으로 하락했다는 점이다. 이는 몇몇 강대국들이 지출 규모를 줄인 데 기인한다. 예컨대 미국은 군사 지출을 GDP 대비 4.6%에서 4.1%로 줄였다.

 정치적 테러와 폭력적 시위 가능성 지표에서는 약간의 개선이 엿보였다. 이는 전년에 비해 케냐, 키르기즈공화국, 잠비아, 튀니지 같은 국가들의 상황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킬렐리아 의장은 “올해 지수를 분석한 결과 국가간 군비 경쟁에서 보다 조직화된 내분으로 바뀌는 흐름이 엿보인다”며 “이는 권위주의 정권 하의 국가들과 나머지 국가들의 평화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현상은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시리아를 꼽았다. 시리아는 2007년 평화지수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최대의 점수 하락을 기록했다.
 연구소는 그러나 일부 국가들은 ‘평화의 기둥(Pillars of Peace)’들을 재구축하는 길로 들어서면서 상당한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증거들도 보여 주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리비아는 최근의 혁명과 내전의 혼란에 이어 새로 선출된 정부와 복구 기관들이 세워지면서 평화지수가 가장 크게 상승했다. 북아프리카의 수단과 차드도 각각 내분이 약화되면서 두 번째와 세 번째로 평화지수가 개선된 국가에 포함됐다.
 킬렐리아 의장은 “6년간의 데이터 추세를 분석한 결과 분쟁은 빠르게 발생할 수 있지만 평화는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것이 확인됐다”며 “리비아의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며 아프가니스탄은 평화지수의 최저점으로 다시 내려갔다”라고 덧붙였다.

 

평화 상위 20개국 중 13개국이 유럽

 

 지역별 상황을 보면, 유럽은 1위를 계속 차지하고 있는 아이슬란드를 포함해 13개 국가가 최상위 20개 국가에 포함됨으로써 가장 평화로운 지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스페인, 그리스, 프랑스와 포르투갈 같은 고채무국가들은 지난해 도전적인 경제 상황 속에서 평화적인 조건이 악화됐다.
 북미는 2012년 대비 소폭 점수가 상승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수에서 99위를 차지했으며 수감 인구(세계 최고), 다수의 해외 분쟁 개입, 살인율 및 핵 및 대량살상무기 역량 같은 요인들로 인해 OECD 국가중 저조한 점수를 기록했다.

 남미 국가인 우루과이와 칠레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기관과 법치가 특징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평화로운 국가로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다. 3위를 차지한 아르헨티나는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여러 국내 지표가 하락한 가운데 전반적인 상황이 악화됐다.
 중미에서는 코스타리카가 다시 한 번 가장 평화로운 국가에 올랐다. 니카라과, 과테말라 그리고 엘살바도르는 모두 비록 낮은 수준이었지만 GPI 점수가 개선되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들 국가의 정부들이 몇 년 간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관련해 폭력이 고조되었던 상황을 겪은 후 국내 치안을 개선한 것을 반영하고 있다.
 러시아와 유라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지 못한 지역 중 하나로 그 뒤를 남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MENA)가 잇고 있다. 작년에 우크라이나, 타지키스탄 그리고 러시아에서 상당히 점수가 하락했다. 러시아의 경우, 북코카서스 지역의 폭력 사태와 연계된 테러 활동 점수와 내부 갈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감소했다. 러시아의 점수 하락은 무기 공급 업체로서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시아 태평양은 일본과 호주, 그리고 싱가포르가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20대 국가에 속하는 등 평화와 안보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웃 국가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가 이들 지역의 공통된 특징이다.
 

 한국과 북한, 2008년 이래 꾸준히 순위 하락

 

 평화로운 나라 순위에서는 조사 대상 162개국 중 한국이 47위, 북한이 154위를 기록했다. 가장 평화로운 나라는 2년 연속 아이슬란드가 꼽혔다.
 한국은 1.822점으로 지난해 42위에서 47위로, 북한은 3.044점으로 지난해 152위에서 2단계 하락했다. 2008년부터 따져보면 한국은 32위에서 15계단, 북한은 133위에서 19계단이나 떨어진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1.162점으로 지난해에 이어 1위를 다시 차지했다. 평화 순위 상위 10위 안에는 덴마크(1.207점), 뉴질랜드(1.237점), 오스트리아(1.250점), 스위스(1.272점), 일본(1.293점), 핀란드(1.297점), 캐나다(1.306점), 스웨덴(1.319점), 벨기에(1.339점) 등이 들었다. 최하위는 아프가니스탄(3.440점)이었고 소말리아(3.394)가 161위, 시리아(3.193점)가 160위, 이라크(3.192점)가 159위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상위 10위권에 7개국이나 이름을 올린 유럽이 가장 평화로운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의 경우 북한과 일본 등 주변국과의 긴장관계가 낮은 순위의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세계평화지수(GPI)는 22개의 개별 지표를 고려해서 162개 국가에서 현재 진행중인 국내 및 국제 분쟁, 사회의 안전 및 보안 그리고 군사화 등을 측정한다. 올해 추가된 나라는 코소보, 남수단, 티모르-레스테와 토고 4개국이다.
 국제평화지수는 호주 사업가 스티브 킬렐리아가 주도하는 것으로, 그는 2007년부터 영국 <이코노미스트> 계열사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 EIU)과 함께 ‘비전 오브 휴머니티’(http://www.visionofhumanity.org) 사이트를 통해 국가별 평화지수 순위를 발표해오고 있다.

 세계평화지수는 국내 및 국제분쟁, 사회 안전, 치안, 군비확장, 폭력범죄의 정도 등 22개 지표에 대해 각각 1~5점을 매겨 산출하는데, 1에 가까울수록 ‘평화로운 상태’를 뜻한다.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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