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유토피아' 500년…21세기 이상촌을 만든다 사회경제

regen1.jpg »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하는 재생마을은 21세기판 이상촌이 될 수 있을까? EFFEKT 제공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출간 500년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란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1516년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500년 전이다. 서양 세계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기였다. 당시 유럽은 엔클로저운동, 르네상스, 신대륙 발견 등으로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갈등과 혼란, 좌절과 희망이 뒤엉킨 현실을 보며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토마스 모어(1478~1535)는 이상적인 사회의 꿈을 담은 <유토피아>를 펴냈다. 원제는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다.

 

Isola_di_Utopia_Moro.jpg » 1516년 발간된 <유토피아> 초판에 있는 유토피아섬 그림. 위키피디아


평등과 공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은 세상

 

인구 10만의 유토피아 섬에는 50가구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며 산다. 이상향 사회의 일상은 이렇다. “생업의 기본은 농업이다. 모든 주민이 농사를 짓는다. 다만 다른 한 가지 기술도 갖고 있어야 한다. 게으른 자는 추방한다. 노동시간은 하루 6시간이다. 여가 시간은 각자 마음대로 쓴다. 도시 중앙에는 각자가 생산한 물품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다. 물건값은 무료다. 서로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쓰면 된다.”
새로운 산업의 부상과 함께 중세를 떠받치던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고 부랑자와 빈민이 속출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평등과 공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은 세상을 꿈꿨다. 물론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 21세기의 꿈을 담은 유토피아촌을 만든다면 어떤 가치를 우선 순위로 둬야 할까?

 

regen2.jpg » 인구 과잉과 기후변화, 환경파괴에 대응하는 마을 시스템이다.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하는 재생마을

 

미국의 재생주거형 부동산 개발업체 리젠 빌리지(ReGen Villages)와 덴마크의 건축설계사무소 에펙트(EFFEKT)가 손을 잡고, 하나의 대안이 될 만한 마을 만들기에 나섰다. '리젠 빌리지'라는 영어의 원뜻 그대로 ‘재생마을’이다.
마을의 핵심은 식량과 물, 에너지를 외부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독립형(off-grid) 계획 마을이다. 모든 폐기물도 자체 처리한다. 인구 과잉과 기후변화, 환경파괴라는 지구촌 빅이슈 세 가지를 최우선 순위에 둔 발상이다.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regen3.jpg » 마을 건설과 운영에는 다섯 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리젠 빌리지 조감도.


 

마을 건설과 운영의 다섯가지 원칙

 

이를 위해 마을 건설과 운영에는 다섯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첫째는 쓰고도 남을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는 ‘에너지 포지티브 홈’ 구축이다. 남는 에너지는 인근 전력 공급망에 판다. 개별 주택에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해 가정에 필요한 전기를 자급한다. 전기 수요량이 기존 주택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자연 통풍과 단열공법 덕분이다.
둘째는 고효율 유기농 식량 생산이다. 각 가정은 서로 연결된 온실 네트워크에서 과일과 채소 등을 직접 재배한다. 주민들이 먹는 음식 재료의 절반을 이런 식으로 자급한다.
셋째는 재생에너지 사용이다. 화석연료 대신 오로지 태양광, 지열, 풍력, 바이오매스 등으로 친환경 전기를 만들어 쓴다. 모든 차량은 전기차다. 전기차는 마을 전체가 공유하면서 필요할 때만 이용한다.
넷째는 물과 폐기물의 재활용이다. 물 저장 시스템을 통해 빗물이나 생활 하수를 정화처리해 식수나 농업용수로 자급한다.
다섯째는 자율적인 공동체 운영이다. 전기차 충전소, 수경재배 수직농장, 축사, 공동식당, 학습센터, 물 저장시설, 폐기물 재활용 시스템은 공동으로 관리한다.

regen4.jpg » 미래세대에 지속가능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발상이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선택

 

왜 이런 원칙들을 세웠을까? “2050년에는 지구촌 인구가 100억에 육박한다.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열에 일곱은 도시에 살게 된다. 도시에 기반을 둔 중산층은 지금의 2배인 40억으로 늘어난다. 이 많은 인구를 지구가 견뎌낼 수 있을까? 이미 육지의 42%가 농지로 개발돼 본래의 모습을 잃은 상태다. 이는 아프리카와 남미대륙을 합친 크기다. 농업은 지금도 가장 강력한 삼림 파괴와 생물 다양성 손실 요인이다. 인류 물소비의 70%가 농업용이다. 농업은 지구가 내뿜는 온실 가스 배출량의 30%를 차지한다. 단일 배출원으로는 최대다. 게다가 수확한 식량의 33%(연간 18억톤)는 쓰레기로 버려진다. 그런데도 세계 인구의 7분의 1인 8억4000만명은 극빈자다. 밭에서 재배한 식량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평균 2400킬로미터를 여행해야 한다. 이는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은 생활 방식이다. 미래를 위해선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이들이 웹사이트를 통해 밝힌 상황 인식이다. 후손들에게 지속가능한 지구를 물려주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리젠 빌리지는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이들의 답변이다.

 

regen5.jpg » 이웃의 쓰레기가 나의 생활 자원이 된다.


한쪽서 쓰고 버린 것을 다른 곳의 자원으로

 

재생마을의 각 가정 주방 옆에는 온실이, 집 앞엔 텃밭이 있다. 마을 중간 중간에는 주민들이 공동 관리하는 수경재배 수직농장이 있다.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 중 일부는 가축이나 등에의 사료로 쓴다. 등에는 물고기의 먹이로 쓴다. 사람들이 먹고 남은 물고기는 농장의 비료로 쓴다. 가축에서 나오는 분뇨는 텃밭의 퇴비로 쓴다. 퇴비나 사료로 쓸 수 없는 생활 폐기물은 바이오매스 공장에서 전기와 물로 바꿔준다. 빗물과 생활하수는 정화처리해 텃밭과 수직농장에 용수로 공급한다.
한쪽에서 쓰고 남거나 버린 것을 다른 곳의 자원으로 쓰는 자원순환형 시스템이다. 자연과 인간, 생산과 소비가 하나로 결합되면서 경제성과 친환경,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구상대로만 실현된다면 인구 증가와 도시 비대화에 따른 자원 및 식량 부족 사태, 환경 파괴를 막는 지구 선순환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는 방식이다.

 

regen6.jpg » 암스테르담 인근에 첫 시범마을을 조성한다.

 

암스테르담 인근에 100가구 마을 시범조성

 

가능한 일일까? 이들은 “기술은 충분하다. 이를 과학적으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미 개발돼 있는 재생에너지, 에너지 절감 및 저장, 수경재배, 자원재활용 시스템 같은 다양한 혁신기술의 결합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예컨대 수경재배는 물을 90% 덜 쓰면서도 같은 땅에서 10배나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들의 계산으론, 3인 가구가 이 마을에서 자급자족하는 데 필요한 땅은 639㎡다. 기존 농업 방식을 고수했을 때 필요한 땅(8100㎡)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
두 업체는 첫 단계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인근 알미르시 교외에 100가구로 구성된 자족형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자동차로 25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우선 25채의 주택으로 시범단지를 조성한 뒤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올 여름 착공에 들어가 2017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regen7.jpg » "에코빌리지의 테슬라가 되고 싶다." 리젠 빌리지 모형.


 

"에코빌리지의 테슬라가 되고 싶다"

 

1단계 사업이 성공하면 앞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에도 이와 비슷한 마을을 건설할 계획이다. 후보지는 이미 물색해 놓았다고 한다. 이 마을 시스템의 효용성과 현실성이 확인되면 중동을 비롯한 전 세계에 보급하는 꿈도 갖고 있다. 가장 척박한 기후지역부터 시작해 인도의 농촌, 사하라 이남지역 등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인구 증가율이 높고 소득 향상으로 자원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지역이 후보지역이다.
제임스 얼리히(James Ehrlich) 리젠빌리지 대표는 “우리는 에코빌리지의 테슬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테슬라 모터스가 고성능 전기차로 친환경 자동차 시대를 열어가는 것에 빗댄 비유다. 미 스탠퍼드대의 초빙기업가이자 시니어 테크놀로지스트인 그는 2013년 자족형 공동체(self-sufficient communities) 건설을 제안하는 유엔 보고서의 공동저자로 참여하면서 영감을 얻어 회사를 창업했다고 한다.

 

regen8.jpg » 리젠 빌리지 건설 예정지.

 

21세기판 이상촌 건설은 성공할까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합성어다. ‘없다’ 또는 ‘좋다’를 뜻하는 ‘유’와 장소를 뜻하는 ‘토피아’가 합쳐진 말이다. ‘아무 데도 없는 곳’이자 `진짜 좋은 곳‘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말 자체에 이상향을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 담긴 셈이다. 이상향은 단순히 자금과 기술이 있다고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얼마나 많이 공유하며, 또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들은 5월말부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고 있는 건축비엔날레(5월28일~11월27일) 덴마크 전시관에 마을 모형을 출품했다. 비엔날레 참가 이후 미얀마, 나미비아, 아이슬란드, 일본, 미국, 페루, 남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14개국 정부와 37개 시 당국, 200여 개발업체들과 입주 희망자들이 6천통이 넘는 메일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런 반응들이 행동으로 옮겨져 마을 건설이 실현된다면 과연 21세기판 이상촌이라 불러도 무방할까?

 

관련기사
http://nextshark.com/regen-villages-self-sustaining-community/
http://www.sciencealert.com/this-dutch-town-will-grow-its-own-food-live-off-grid-and-handle-its-own-waste
http://inhabitat.com/utopian-off-grid-village-grows-own-food-in-shared-local-eco-system/ 
http://www.dezeen.com/2016/05/20/effekt-designs-regen-villages-produce-own-food-energy-danish-pavilion-venice-architecture-biennale-2016/
http://www.fastcoexist.com/3060167/this-new-neighborhood-will-grow-its-own-food-power-itself-and-handle-its-own-waste/4
리젠 빌리지 웹사이트
http://www.regenvillages.com/
에펙트 웹사이트
http://www.effekt.dk/work/#/regenvillages/
유토피아에 대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2591&cid=41773&categoryId=41780
베네치아건축비엔날레 웹사이트
http://www.labiennale.org/en/Home.html
유토피아의 역사
http://blog.daum.net/donglakjae/16184656
http://www.bl.uk/learning/histcitizen/21cc/utopia/utopi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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