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 사회경제

hand2.jpg » 손으로 쓰는 것이 키보드로 기록하는 것보다 학습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정효 한겨레신문 기자

 

손 글씨와 키보드의 학습효과 비교 실험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Z세대는 흔히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린다. 태어나서부터 디지털 기기와 친숙해진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이에 펜으로 손글씨를 쓰기보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 더 익숙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도 강의 내용을 노트에 필기하는 대신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꽤 있다. 그런데 2014년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손글씨로 쓰는 것이 자판을 두드리는 것보다 학습효과가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팸 뮬러(Pam Mueller) 미 프린스턴대 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연구진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가지 기록 방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 실시한 세 가지 실험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다.
이 연구는 원래 논문 저자인 뮬러 자신이 겪은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조교로 일하던 중, 어느날 노트북 피시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날 더 많은 걸 배운 것 같은 느낌을 받고나서는 이를 연구과제로 삼기로 했다고 한다.
이 실험에 참가한 학생은 67~151명. 연구진은 이들을 손글씨 사용 집단과 키보드 사용 집단으로 나누고, 이들에게 15분 안팎의 테드 동영상 강연을 틀어줬다.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노트북 피시에는 다른 아무런 프로그램도 깔지 않았고, 인터넷도 접속되지 않도록 했다. 연구진은 강연 시청이 끝난 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 내용에 대한 기억력 테스트를 했다. 그런 다음 자신들의 기억과 노트 내용을 참고해 다시 한번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에는 강의에 대한 이해도 측정을 위해 사실을 묻는 질문과 개념을 묻는 질문을 함께 포함시켰다.
 이 연구는 노트 기록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존의 2개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첫째는 부호화 가설(encoding hypothesis)이다. 노트를 기록하는 동안 뇌에서 부호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학습과 기억을 개선시킨다는 가설이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내용을 요약하는 노트 기록은 말 전체를 그대로 받아적는 것보다 인지과정 수준이 높은 것으로 간주된다. 둘째는 외부저장가설(external storage hypothesis)이다. 이는 노트 기록은 내용을 리뷰할 수 있게 해주며, 이는 다른 사람이 노트를 가져가도 마찬가지라는 이론이다.
실험 결과 겉으로 드러난 가장 큰 차이는 노트북 피시 이용자들이 손 글씨로 쓴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노트북 피시를 쓴 학생들은 평균 309개의 단어를 타이핑했다. 반면 손으로 쓴 학생들은 173개의 단어를 적었다.
 

hands-545394_1280.jpg » 수업 내용을 타이핑하는 것은 학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pixabay.com

 

사실을 기억해내는 질문에서 별 차이 없지만

개념을 묻는 질문에서 손글씨가 훨씬 탁월

 

첫번째 실험에서, 노트북 이용자와 손 필기자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질문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개념을 묻는 질문에서는 노트북 이용자가 훨씬 점수가 좋지 않았다. 두 가지 상반된 요인이 이런 결과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학생들은 기록 양이 많을 때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노트북을 이용했을 때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록 내용에 그대로 받아적는 것의 비중이 덜할 때도 더 좋은 점수가 나왔다. 이는 손 필기자들에게 해당한다. 이는 노트북을 이용하면서 더 많이 노트하는 것이, 아무 생각없이 필기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번째 실험에서는 노트북 이용자들에게 강연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지 말도록 요구했다. 즉 자기 자신의 말로 바꿔 노트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지침에도 불구하고 노트북 이용자들은 손 필기자보다 말 그대로 적는 비율이 높았다.
 세번째 실험에서는 강연을 시청한 지 1주일 후에 시험을 치렀다. 노트북 이용자들의 기록들이 강연 내용을 공부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우선, 시험 전에 노트 내용을 공부할 기회를 주지 않은 학생 그룹들 사이에서는 노트북 이용자와 손 필기자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시험에 앞서 10분간 노트를  볼 수 있도록 한 학생들의 경우엔, 손 필기자들이 노트북 이용자들보다 사실과 개념을 묻는 질문에서 모두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세번째 실험 결과는, 더 많이 기록하면 내용을 기억하는 데도 더 유리하다는 외부저장가설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호화 기능이 외부저장 효과보다 좀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을 뿐이라는 것도 가능하다.

l1.jpg » 손 글씨(짙은색), 내용 요약 타이핑(빗금), 받아적기 타이핑(옅은색)의 학습 성취도. 사실을 묻는 질문과 개념을 묻는 질문 모두에서 손글씨로 노트한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좋다. 논문에서 인용.

 

연구진의 결론은 이렇다. “노트북 피시 이용은 교육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컴퓨터가 더 쉽게 수업 내용을 기록하는 용도로 쓰이더라도, 수업시간에 노트북 피시를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트북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노트북은 수업에 이롭기보다는 해로운 점이 더 많다.”
 물론 모든 경우에 손 필기가 더 나은 건 아니다. 뮬러 교수는 “회의나 워크숍처럼 내용을 깊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때는 손으로 쓰는 것이 좋다. 쓰고 있는 동안 더 생각을 하게 되고, 따라서 뭐가 중요한 것인지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신이 듣는 대로 받아적을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상사한테서 세세한 지시를 받을 때나 인터뷰 내용을 적을 때가 그런 때다.”라고 말한다.
 여담이지만 이 논문의 제목이 재미있다.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 : 노트북보다 유리한 손글씨 필기(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Advantages of Longhand Over Laptop Note Taking)’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t the sword)”는 경구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경구의 출처는 영국 작가 에드워드 리튼(Sir Edward Lytton)이 1839년 집필한 희곡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 Richelieu)이다. 사상이나 글이 폭력이나 무력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는 문구이다.
 

출처
http://www.psychologicalscience.org/index.php/news/releases/take-notes-by-hand-for-better-long-term-comprehension.html
 
http://www.theatlantic.com/technology/archive/2014/05/to-remember-a-lecture-better-take-notes-by-hand/361478/
http://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a-learning-secret-don-t-take-notes-with-a-laptop/?WT.mc_id=SA
 
http://pss.sagepub.com/content/25/6/1159
http://journalistsresource.org/studies/society/education/longhand-versus-laptop-note-taking
 
http://www.academia.edu/6273095/The_Pen_Is_Mightier_Than_The_Keyboard_Advantages_of_Longhand_Over_Laptop_Note_Taking
http://www.fastcompany.com/3044907/work-smart/how-typing-is-destroying-your-memory?utm_source=mailchimp&utm_medium=email&utm_campaign=colead-weekly-newsletter&position=1&partner=newsletter&campaign_date=04172015
 
http://www.sciencetimes.co.kr/?p=124247&post_typ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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