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독재자는 마천루를 좋아한다, 왜? 사회경제

Ryugyong_Hotel_-_August_27,_2011_(Cropped) (1).jpg » 평양의 105층짜리 류경호텔. 2011년 촬영한 사진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독재자는 '흰 코끼리'에 집착한다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경제력 차이는 무려 48배에 이른다. 미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에 따르면 지난해 구매력평가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은 1조9290억달러였다. 반면, 북한은 400억달러에 불과하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경제력 차이를 드러내는 풍경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초고층건물만 떼어놓고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한국에서 100층이 넘는 건물이 등장한 건 최근의 일이다. 올 4월 지상 123층의 롯데월드타워(높이 555미터)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런데 경제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북한에선 1980년대부터 105층짜리 건물 공사가 시작됐다. 높이 330미터인 평양의 류경호텔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87년에 시작된 이 건물 공사는 5년 후 중단됐다가 2008년에 재개됐다. 현재 건물 외관은 모두 갖춰졌지만 호텔이 영업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풍부한 경제력과 밀집된 인구가 있는 곳일수록 건물이 고층화한다는 통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왜 이런 양상이 전개되는 것일까?

 이를 독재 통치자들의 ‘흰 코끼리’(white elephants) 집착 성향에서 보는 학자들이 있다.  ‘흰 코끼리’란 희소의 가치는 있지만 값 비싸고 쓸모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왕이 선물한 '대식가' 흰코끼리를 먹여살리느라 기둥뿌리가 뽑히는 신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타이의 옛 설화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주요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대형 올림픽 스타디움들이다. 그러나 권력과 초고층건물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모든 독재자들이 똑같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TOP1.jpg » 세계 초고층 건물 건축 추이. 맨오른쪽 위가 2020년 완공될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타워다. 높이 1007미터로 인류 사상 최초로 높이 1킬로미터를 넘는 빌딩이 된다. 연구 보고서에서 인용


 

초고층건물, 독재체제에서 평균 1.6개 더 지어

 

노르웨이 오슬로대의 연구진이 최근 독재자와 초고층건물의 상관관계에 대한 나름의 분석 결과를 내놨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의 초고층건물 데이터베이스와, 스웨덴 예테보리대 정치학부와 미국 노터데임대 켈로그연구소가 함께 만든 '민주주의 다양성 지표'(V-Dem) 점수 자료를 비교 분석해 얻어냈다. 민주주의 다양성 지표는 정당의 숫자, 부패 및 언론 자유의 정도 등을 토대로 민주주의 구현 정도를 점수화한 것이다. 연구진은 <독재자와 초고층건물:독재권력 하에서의 현대 흰코끼리>(Autocrats and Skyscrapers: Modern White Elephants in Dictatorships)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인구와 소득, 도시화 등 다른 변수들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걸러냈다. 그 결과, 가혹한 독재체제가 성숙한 민주정치체제보다 초고층건물(높이 150미터 이상)을 평균적으로 1.6개 더 짓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민주체제에서 독재체제로의 이행은 완공되는 건물 높이를 150미터 높이는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진은 “권위주의 정권이 세운 초고층건물이 모두 ‘흰 코끼리’는 아니지만, 독재체제에선 뚜렷한 경제적 인센티브가 없는 경우에도 고층 건물을 지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밝혔다.

 

Burj_Khalifa (1).jpg » 현재 세계 최고층 건물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높이가 828미터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유가 뭘까? 이번 분석은 초고층건물을 짓는 이유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초고층건물 건축에서의 정부 역할만을  따로 떼어보려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명확한 분석은 없다. 다만 논문 제1저자인 호콘 옐로브(Haakon Gjerlow) 연구원은 그 이유에 대해 “독재자들이 초고층 건물이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국제 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아니면 초고층건물이 독재자와 부패의 연결고리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초고층건물이라는 대형 사업이 체제 내 동맹세력에 주는 시혜일 수 있다는 얘기다. 

TOP2.jpg » '허영의 높이'가 가장 큰 상위 10대 건물. 연구 보고서에서 인용

 

세계 최고층 건물의 29%는 '허영의 높이'

 

전통적으로 고밀도 건축물은 도시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실제 건축된 초고층건물들을 살펴보면 도시화를 경험하지 않은 독재국가에서 출현할 가능성이 더 높게 나왔다. 특히 강력한 통치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오로지 건물 높이를 늘리기 위한 다른 구조물을 세울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허영의 높이’(vanity meters)라 불렀다. 세계 최고층 건물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부르즈 칼리파(828미터) 건물 높이의 29%인 244m는 비거주 건축공간이다. 유럽에서 11번째로 큰 건물의 높이에 해당하는 구조물을 쓸모없는 공간으로 장식한 셈이다. 연구진이 집계한 '허영의 높이' 상위 10대 건물 중 8개가 중동과 중국에 몰려 있다.

 

OneWorldTradeCenter.jpg » 뉴욕의 원월드트레이드센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물론 독재자만이 ‘허영의 높이’를 추구하는 건 아니다. 2014년에 개장한 뉴욕 맨해튼의 원월드트레이드센터(One World Trade Center)는 1776피트(541미터)라는 상징적 높이를 확보하기 위해 408피트 높이의 첨탑을 건물 꼭대기에 달았다. 미국이 독립한 해인 1776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Notre_dame_de_la_paix_yamoussoukro_by_felix_krohn.jpg » 아이보리코스트의 `평화의 성모 대성당'. 위키미디어 코먼스

 

독재자 초고층 욕심에 나라빚 2배로

여성참정권 늘어나며 초고층화 둔화

 

연구진은 또 독재자들은 일상적으로 필요 이상의 능력을 과시하려 하는데, 초고층건물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그 사례로 1980년대에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영어이름은 아이보리코스트)의 수도 야무수크로(Yamoussoukro)에 지어진 ‘평화의 성모 대성당’(Basilica of Our Lady of Peace)을 들었다. 이 건물은 당시 1당체제로 국정을 운영했던 후푸에 부아뉘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본따 만든 것이다. 로마의 성당보다 30미터나 더 높게 지어졌다. 권력자의 지나친 욕심이 빚은 이 대형 프로젝트로 인해 가톨릭인구비율이 20%인 이 나라는 국가 부채가 두배로 늘었다고 한다.
연구진은 민주정부와 초고층건물 사이의 연결고리를 알려주는 그 반대의 흥미로운 사례도 소개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보장한 미국의 1920년 수정헌법이 통과된 이후 미국의 초고층건물 건축 흐름이 둔화됐다. 연구진은 여성 참정권 운동이 실패했다면 미국은 1923년까지 초고층건물 높이가 약 17미터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 상태가 계속됐다면 수십년 뒤에는 아마도 1500미터를 넘어섰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참정권 확대로 미국 민주주의가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shang.jpg » 세계 상위 10대 초고층 건물 가운데 5개가 중국에 있다. 사진은 세계 2위인 상하이타워(높이 632미터). CTBUH

 

중국에서 초고층건물이 속출하는 건 왜일까


사실 전세계 초고층건물 건축 데이터베이스를 훑어보면 민주주의 시스템이 약한 곳에서 더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중국이 그런 사례다. 중국은 최근 몇년 동안 세계의 새로운 고층 구조물을 휩쓸다시피 했다. 지난해 완공된 높이 200미터가 넘는 초고층건물 128개 중에서 84개가 중국의 건물이다. 또다른 초고층건물 주도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도 민주주의가 번창하고 있는 나라라고 말하긴 어렵다.
물론 초고층 건물은 국제 사회에 그 나라의 존재감을 알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도시화를 재촉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 연구진은 “독재국가에선 아마 그것도 나름의 발전전략일 수 있다. 길게 보면 들어간 비용보다 경제적 이익이 더 클 수도 있다. 만약 그게 맞다면 독재자들은 민주주의보다 그런 전략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Lotte_World_Tower_(April_30_2017).jpg »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롯데월드타워. 세계 5위 초고층건물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롯데월드타워 30년 건축 스토리가 말하는 것은?

 

30년에 걸친 한국의 롯데월드타워 건축 스토리도 권력과 마천루 사이의 상관관계 사례에 해당할까? 롯데그룹이 건물 부지를 마련한 때는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건축 허가를 받은 때는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이었다. 그 사이 롯데와 정부 간에는 항공 안전, 교통혼잡 유발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숱한 '밀당'이 오고갔다. 롯데 신격호 회장의 오랜 숙원을 풀어준 것은 토건 기업인 출신의 대통령이었다. 한국 최고의 랜드마크를 세운다는 꿈을 안고 독재정권 시기의 끝자락에 땅을 샀으나, 곧 시작된 민주주의 확장기엔 사업을 진척시키지 못하다 민주주의 후퇴기에 들어서 결실을 본 격이다. 롯데월드에도 연구진의 분석틀이 적용될 수 있을까?  
 
출처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7-05-03/autocrats-really-do-build-more-skyscrapers
https://www.citylab.com/politics/2017/05/why-do-autocrats-love-skyscrapers/525336/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2951762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은 성당
http://cafe.naver.com/hotellife/607149
민주주의 다양성 지표
https://www.v-dem.net/en/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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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