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1000만년 전 시작된 '주당'의 역사 생명건강

04901451_P_0.jpg » 인류가 술을 마셔도 탈이 나지 않도록 알코올 분해능력을 갖게 된 건 1천만년 전부터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한 송년회에서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는 장면. 한겨레신문 김정효 기자.

 

 식생 변화로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온

 고릴라-침팬지-인간 공통조상 영장류

 1천만년 전 알코올분해 효소 변이 등장

 

 올해도 어김없이 송년회 철이 왔다. 매년 찾아오는 주당들의 계절이다. 하지만 연말까지 왁자지껄한 송년회가 이어졌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송년회를 일찌감치 마무리하고 연말연시는 조용히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송년회에서 빠지지 않는 게 술이다. 분위기를 쉽게 돋우는 데 술만한 게 없는 탓일까? 가끔가다 도가 지나쳐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술이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인간은 언제부터 이렇게 술과 친해졌을까? 일에서 벗어나는 주말만 되면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알코올중독 때문일까, 타고난 유전자의 발로일까?

이런 의문을 해소해줄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 플로리다주 산타페 칼리지의 매튜 캐리건 교수(생물학) 연구팀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121일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인간의 알코올(에틸알코올) 분해 능력은 1000만년 전 인간-고릴라-침팬지 공통조상 영장류의 유전자 돌연변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능력은 인체 내의 알코올탈수소효소(alcohol dehydrogenase enzyme) ‘ADH4’에서 나오는 것이다. 혀와 식도, 위에 분포하는 ADH4는 알코올 분해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첫 단계를 실행하는 효소다. 모든 영장류 동물의 몸에는 이 ADH4가 있다. 하지만 이 효소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알코올 대사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여우원숭이나 개코원숭이는 이 효소를 갖고 있지만 인간보다 알코올 대사 능력이 떨어진다.

캐리건 교수팀은 화석화한 동식물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고유전학 기법을 활용해 알코올 분해 능력을 갖춘 ADH4의 기원을 찾아나섰다. 이들은 영장류 17종을 포함한 포유류 28에서 7천만년에 걸친 영장류 역사 각 시기별로 ADH4 효소 단백질을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5000만년 전 영장류의 ADH4는 적은 양의 알코올을 매우 천천히 분해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 1000만년 전의 인간-침팬지-고릴라의 공통조상 영장류에서 채취한 ADH4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알코올 대사 능력이 40배나 좋아진 것이다. 1200~1300만년 전 이들과 분리된 오랑우탄에서는 이런 변이 ADH4가 발견되지 않았다.

 

 shutterstock_55904239.jpg » 약 1천만년 전 땅으로 내려온 고릴라-침팬지-인간의 공통조상 영장류에게서 발효된 낙과를 주워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ADH4 효소 돌연변이가 생겨났다. 사진은 과일을 먹는 침팬지. http://africawildlife.org/chimpanzee/

 

땅에 떨어진 과일이 발효되면서 알코올 듬뿍

ADH4 돌연변이 가진 영장류가 생존경쟁 우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천만년 전의 갑작스런 변화는 1600만년 전 신생대 마이오세(중신세) 중기에 일어난 기후변화에서부터 잉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이 시기는 지구가 냉각되면서 인류의 기원지인 동아프리카지역의 밀림 생태계가 초원 생태계로 바뀌던 시기이다. 무성했던 밀림이 사라지면서 나무 위에 살던 영장류들은 먹을 것을 찾아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기후변화로 먹을 것이 줄어들자 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낙과에도 손을 대게 됐다. 하지만 낙과를 먹으면 위통이 오고 구토를 하는 등 곧잘 탈이 났다. 땅에 떨어진 과일들이 각종 박테리아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당을 알코올로 바꿔주는 발효균들도 있어서, 이 균들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과일 속에는 알코올이 쌓여갔다. 그러던 중 약 1000만년 전 발효된 낙과를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돌연변이 효소가 생겨났고. 이 돌연변이를 가진 영장류가 점차 자연의 선택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캐리건 교수는 “ADH4의 새로운 돌연변이가 없는 영장류들은 발효된 과일을 먹고 쉽게 탈이 나거나 취해버림으로써 자신의 영토를 지키고 먹이를 찾는 데 지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새 돌연변이가 있는 영장류는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orangutan_with_baby.jpg » 나무 위에 사는 오랑우탄에겐 고릴라, 침팬지와 달리 알코올 분해 능력이 없다. http://www.worldwildlife.org

 

유전자 부적응에 따른 질병? 생존경쟁이 낳은 진화의 산물?

 

알코올 분해 능력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동안 두 가지 가설이 제기됐다. 첫째는 약 9000년전 인류가 음식을 발효시켜 먹기 시작하면서 생겼다는 가설이다. 이 시기에 농사를 지을 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잉여식량이 생겼는데, 잉여식량 저장 과정에서 발효식품을 섭취하게 되면서 알코올 분해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따를 경우, 오늘날 알코올중독은 인간 게놈이 변화된 환경에 아직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갖지 못해서 생겨나는 질병이 된다.

또 다른 가설은 영장류가 8천만년전부터 과일을 먹기 시작하면서 알코올을 섭취하기 시작했다는 가설이다. 이 때는 영장류가 등장해 분화하기 시작하는 시기이자, 속씨식물이 처음으로 먹음직스런 과일을 생산하기 시작한 시기에 해당한다. 과일을 맺는다는 것은 발효를 통해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이스트(효모)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가설에선 나무에 달린 상태에서 조금씩 발효된 과일 속의 알코올을 나무 위에 사는 영장류들이 소량씩 섭취하게 된다. 이 가설을 따르면, 현대 인류의 알코올 선호는 이후 쓸모없어졌다가 인류의 발효 기술 습득 이후 되살아나 도수 높은 술로 방향을 튼 진화의 유물이다. 캐리건 교수팀의 연구는 요즘 각광받는 고유전학을 빌어 좀 더 과학적인 기법으로 인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의 기원을 9천년 전도, 8천만년 전도 아닌 1000만년 전으로 조정한 것이다.  그의 연구 결과로, 알코올 분해 능력은 오랜 기간에 걸친 생존경쟁 끝에 생겨난 ‘진화의 산물’로 격상됐다.

 

23A3B88000000578-2856241-Pictured_are_the_amino_acid_changes_in_the_evolution_of_humans_A-3_1417454711863.jpg » ADH4 효소의 분화 계통도. 맨 아래쪽 붉은색으로 표시된 것이 알코올 분해 능력이 있는 효소다. 약 1천만년 전 고릴라에서 시작해 침팬지, 보노보, 호모 사피엔스로 확산됐다. 캐리건 교수 논문에서 인용. 

 

 

알코올을 섭취하면 뇌가 쾌락을 느끼는 이유는

 

 뉴멕시코주립대의 브렌다 베네피트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우리는 왜 어떤 영장류는 땅에서 살고, 다른 영장류는 그렇지 않은지 궁금증을 품어 왔다. 그런데 이번 연구로 땅에 떨어져 발효가 된 과일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침팬지 같은 영장류가 땅에서 살게 됐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캐리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알코올 섭취가 뇌의 쾌락 경로와 연결되도록 진화한 이유도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알코올 섭취는 당시 인류 조상의 주요 식량원 확보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캐리건 교수는 “당시 알코올에 대한 탐닉은 식품에 대한 탐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코올과 당이 들어 있는 과일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이런 것들을 발견하면 과잉섭취하도록 프로그램됐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틈만 나면 술을 찾는 사람들은 아마도 1천만년 전 영장류들이 먹을 것을 찾아 땅을 헤매던 그 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유리한 ADH4 돌연변이를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던 영장류 그룹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식량원이 다양하고 풍부해진 오늘날에도 알코올 분해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생존 경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달라진 생존 경쟁 환경에서, 뇌의 쾌락 코드와 연결돼 버린 인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은 앞으로 또 어떤 진화 과정을 밟아갈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출처

http://news.sciencemag.org/biology/2014/12/ability-consume-alcohol-may-have-shaped-primate-evolution?utm_campaign=email-news-latest&utm_source=eloqua

http://www.pnas.org/content/early/2014/11/26/1404167111

Matthew A. Carrigan, “Hominids adapted to metabolize ethanol long before human-directed fermentation”, Published online before print December 1, 2014,  doi: 10.1073/pnas.1404167111, PNAS December 1, 2014.

http://www.dailymail.co.uk/sciencetech/article-2856241/We-ve-drinking-alcohol-TEN-MILLION-years-study-finds.html

http://phys.org/news/2014-12-pre-human-ancestors-metabolize-ethanol-humans.html

http://www.medicaldaily.com/human-ancestors-could-drink-alcohol-10m-years-ago-after-we-stopped-living-trees-31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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