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 2억명의 목숨을 구하다...천연두 박멸의 두 영웅 미래인

life6.jpg » 2020 생명의미래상 수상자인 빅토르 즈다노프(왼쪽)와 윌리엄 페기(오른쪽).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 빌 페기·소련 즈다노프에게 `생명의미래상'
사상 최악의 전염병 천연두 박멸에 기여한 공로

천연두(일명 마마)는 기원전 3천년께 인도, 이집트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상 최악의 전염병 가운데 하나다. 20세기에만도 무려 5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일컬어지는 치명률 30%의 가공할 질병이다. 그러나 인류가 처음으로 박멸에 성공한 질병이기도 하다.
이 천연두를 박멸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미국의 전염병학자 윌리엄(약칭 빌) 페기(William Foege, 1936~)와 옛 소련의 미생물학자 빅토르 즈다노프(Viktor Zhdanov, 1914~1987)가 `세상을 구한 이름없는 영웅'으로 뽑혔다.
미국 보스턴의 민간연구단체 생명의미래연구소(Future of Life Institute)는 `생명의 미래상'(Future of Life Award) 2020년 수상자로 두 사람을 선정했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전 세계는 과감히 천연두 박멸 운동에 나섰고, 이어 효과적인 확산 차단 방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마침내 과학자들이 1979년 12월9일 천연두의 박멸을 확인하자, 세계보건기구는 1980년 5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공식 선언했다. 천연두는 인류가 최초로, 그리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정복한 전염병이다. 연구소는 천연두 박멸 41주년을 맞은 지난 9일 이들에 대한 온라인 시상식을 가졌다. 상금은 1인당 5만달러.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천연두가 박멸됨으로써 20세기에 2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구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날 온라인 시상식에 참석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이들은 우리가 질병을 물리칠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 상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나아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영웅적 행위를 했음에도 그동안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life2.jpg » 천연두 박멸 소식을 전한 세계보건기구의 월간지 `월드헬스' 1980년 5월호 표지. 세계보건기구
천연두 박멸 프로그램을 이끌어낸 즈다노프

즈다노프는 소련 보건부 차관으로 일하던 1958년 제11차 세계보건총회 연설에서 전 세계가 천연두 박멸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해 천연두와의 전쟁에 불씨를 지폈다. 당시엔 동서냉전이 극심했을 때이지만 그는 미국과 소련이 함께 천연두 퇴치에 나서도록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세계가 힘을 모아 노력하면 10년 안에 천연두를 근절할 수 있다"고 역설하면서 자신의 나라인 소련이 2500만회 접종분량의 백신을 국제사회에 기부하도록 설득했다. 이는 이후 개발도상국가들이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됐다. 세계보건총회는 1959년 그의 제안(Resolution WHA11.54)을 받아들여 천연두 박멸 캠페인에 나섰다.
포위접종 백신 전략을 개발해 성공시킨 페기

빌 페기 박사는 1970년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천연두 박멸 프로그램 책임자로 일할 당시 포위접종( ring vaccination)이라는 백신 전략을 개발했다. 이는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한테 우선 예방주사를 맞게 하는 질병 확산 억제 전략이다. 불이 났을 경우 마을 전체가 아닌 불이 난 집부터 물을 뿌리는 것과 같다. 예컨대 누군가 질병에 감염됐을 경우 추가 감염 가능성이 있는 가족, 이웃, 친구 등을 조사해 1차 접촉자, 2차 접촉자, 3차 접촉자 이런 식으로 분류한 뒤 그룹별로 백신을 접종한다. 이 방법은 제한된 백신 물량으로 전염병 확산을 차단하는 데 큰 효과를 내는 것으로 평가받아 이후 아프리카의 에볼라 등에도 적용됐다. 1977년부터 6년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장을 역임했던 그는 지난 9월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장에게 개인 서한을 보내 미국이 이번 코로나19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은 `학살'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life5.jpg » 천연두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 생명의미래상 유튜브 갈무리
"과학과 국제협력, 담대한 목표가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다"

생명의미래연구소가  이들을 수상자로 선택한 것은 이들의 활동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 모두는 천연두 박멸에 결정적 기여를 한 두 사람에게 빚을 졌다"며 " 이들은 질병과의 싸움에서 과학과 국제 협력의 엄청난 가치를 입증했다"고 말했다. 해마다 `운명의날 시계'를 발표하는 미국의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의 레이첼 브론슨 회장은 "두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과학의 존중과 적극적인 국제 협력, 담대한 목표 설정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MIT 물리학자이자 우주론자 맥스 테그마크 교수의 주도로 설립된 생명의미래연구소는 2017년부터 이 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제1회 수상자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 핵잠수함 부함장이었 해군 장교 바실리 아르키포프에게 주어졌다. 쿠바 인근 해상에서 임무 수행중이던 그는 극도의 긴장감을 견디다 못해 핵 어뢰를 발사하려던 함장을 끈질기게 설득해 인류를 제3차 세계 대전 공포에서 구해낸 공로다. 2018년 제2회 수상자 역시 옛 소련 장교였다. 1983년 잘못 울린 핵 미사일 발사 경보에 침착히 대응한 소련 방공사령부 당직장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주인공이었다. 그해 9월26일 아침 당직을 서던 그는 미국을 감시중인 인공위성으로부터 미국이 5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신호가 오자, 이것이 오보임을 직감하고 대응 매뉴얼을 따르는 대신 시스템 오작동을 보고함으로써 인류를 핵전쟁 위기에서 구했다. 2019년 제3회 수상자는 1960~1970년대에 생물무기에 관한 국제적 금지 운동을 이끌어 결국 1972년 생물무기금지 협약을 맺도록 한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매슈 매셀슨 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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