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부부는 닮지 않는다...닮은 이들이 만날 뿐 사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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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모방이 얼굴 근육 바꾼다'는 30년 전 가설
 인간 판정단·인공지능 교차 검증 결과 근거 없어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 부부 생활에 관한 대표적 속설 가운데 하나다. 과연 실제로 그럴까?
이 속설이 더욱 그럴 듯하게 여겨진 데는 이 속설을 이론으로 격상시킨 논문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자들이 발표한 연구 논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미국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욘스(Robert Zajonc)가 이끈 미시간대 연구진은 25년 전과 후의 부부 얼굴 변화를 사진으로 비교한 결과, 부부가 장기간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외모 유사성이 커졌다는 내용의 논문 `배우자의 외모 수렴'을 학술지 `동기와 정서'(Motivation and Emotion)에 게재했다. 외모 유사성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신혼 초와 25년 후의 사진을 보여주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예컨대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표정을 흉내내게 돼 얼굴 모습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안면 근육을 습관적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다 보면 얼굴이 영구적으로 변할 수 있다. 연구진은 행복하다고 답변한 부부일수록 얼굴 유사성이 더 컸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에 근거한 추정이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이를 검증한 결과를 공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부의 외모가 서로 닮아간다는 건 근거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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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비슷한 사람끼리 부부 인연 맺는 경우 많아

연구진은 1987년의 연구가 표본 수가 12쌍으로 극히 적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표본 수를 대폭 늘려 같은 실험을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당시엔 12쌍의 사진을 비교했다. 이번엔 517쌍의 부부 사진을 온라인에서 수집해 신혼 때(결혼 후 2년 이내)와 20~69년 후의 사진을 비교했다. 단 백인 이성부부의 사진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비백인 부부와 동성 부부는 의미있는 분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사진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외모 유사성 평가에서도 사람과 함게 인공지능을 동원했다. 인간 판정단은 온라인을 통해 153명을 모집했으며, 인공지능은 최고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안면인식 알고리즘(VGGFace2)을 이용했다. 먼저 비교 대상을 선정한 뒤, 이 사람의 실제 배우자와 무작위로 선택한 다른 5사람을 함께 보여주고, 누구 얼굴이 가장 비슷한지 순위를 매기도록 했다.
그 결과 연구진의 예상과 달리 부부가 서로 닮아간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인간 판정단은 오히려 부부의 얼굴이 서로 약간 더 달라졌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물론 아주 미세한 차이다.
연구진이 이번 연구로 얻은 수확은 따로 있었다. 외모가 비슷한 사람끼리 상대방을 부부로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배우자가 아닌 임의로 선택한 다른 사람의 얼굴과 비교한 결과, 이런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우리는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동류혼'(homogamy), 즉 그중에서도 외모가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며 "이런 점에서는 이전 연구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의 결론은, 부부의 얼굴은 닮은 구석이 많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닮은 사람끼리 만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외모는 관심사, 성격, 지성, 태도, 가치관, 생활수준 같은 여러 특성을 반영하며 이것이 얼굴 닮은 부부 탄생의 바탕이 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수렴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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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구 결과라도 검증 필요...학계에 메시지 남겨

이번 연구는 학계 풍토와 관련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메시지를 던져줬다. 같은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이전 연구 결과라도 유효성 또는 타당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공동연구자인 컴퓨터심리학자 마이클 코신스키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사회과학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는 새롭고 획기적이며 기삿거리가 되는 이론을 내놔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과장되거나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개념과 이론이 넘쳐난다는 점”이라며 “학문은 절대적으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연구자들의 작업에 잠재해 있는 결함을 드러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걸' 꺼린다는 점에서 `현장 청소'(Cleaning up the field)는 오늘날 사회과학자들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일지도 모른다며 연구를 주도한 젊은 과학자 핀 핀 테아-마콘(Pin Pin Tea-makorn)의 도전에 찬사를 보냈다. 현재 스탠퍼드대 전기공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테아-마콘은 대학 웹사이트에 `수학과 공학을 응용해 사회심리학 질문에 답하는 것'을 자신의 관심사로 밝혔다.
두 사람은 `얼굴만으로 이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을 검증하는 것을 다음 연구 프로젝트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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