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박테리아벽돌, 세포로봇...사물인가 생물인가 기술IT

thing5.jpg » 열가소성 수지로 만든 4D프린팅 물체 실험. 열을 가하면 납작한 별 모양이 꽃받침 형태로 바뀐다. 머티리얼스 앤 디자인

재료공학, 인공지능, 생명과학 기술이 결합
새로운 방식의 움직이는 사물 잇따라 등장
서울과기대, ABS수지 4D프린팅 물체 개발


영국 메리엄웹스터사전에 올라 있는 `사물'(Things)의 여러 정의 가운데 첫째 항목은 `살아 있는 것과 구별되는 움직이지 않는 물체"(an inanimate object distinguished from a living being)
이다. 한마디로 움직이지 않는 물체란 얘기다. 과학기술은 스스로 움직이는 사물을 만들어 이런 전통적 개념을 허물어 뜨린다. 원조는 형상기억합금이다. 형상기억합금이란 고온에서 형성했던 형상을 기억하고 있어서 저온에서 심하게 모양을 바꿔놓았더라도 열을 가하면 다시 본래 형상으로 돌아가는 합금을 말한다. 1960년대 미국 해군연구소가 니켈-티타늄 합금에서 형상기억 현상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해 지금은 온도센서나 개폐 장치, 인공심장 펌프 등 의료기기, 전자기기, 의류 등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형상기억합금에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한 4D 프린팅 기술 연구도 활발하다. 4D란 이름을 붙인 건 3차원에 시간이라는 차원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입체(3D) 구조가 시간이 흘러 모양이 변한다는 뜻을 담았다.
최근엔 형상기억 기능이 없는 열가소성 고분자 화합물을 이용한 4D 프린팅 방법도 개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박근 교수(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연구팀이 재료공학 공개학술지 <머티리얼스 앤 디자인>(Materials & Design) 3월호에 소개한 이 방법은 가로, 세로 등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열 가소성 재료를 3D 프린팅하는 이종적층 방식으로 물체를 제조하는 것이다. 열을 가하면 적층 방식에 따라 물체의 모양이 여러 형태로 바뀐다. 연구팀이 사용한 재료는 가전기기, 전자부품에 많이 쓰는 ABS 수지다. 연구진은 납작한 별 모양이 입체 꽃받침 형태로, 길쭉한 막대가 하트 모양의 고리로 바뀌는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실험에선 섭씨 150도에서 변형이 이뤄졌지만, 연구진은 앞으로 60도에서도 변형할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할 계획이다. 헤어드라이어처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로도 쉽게 변형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단 이 방식은 형상기억합금과 달리 변형한 뒤에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연구진은 열 자극 후 영구 변형이 필요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박 교수는 "깊숙한 곳의 필터나 재활 기구 등 개인 맞춤형 도구 제작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thing4.jpg » 하이드로겔 합성수지로 만든 ‘땀 흘리는 로봇손’. 미 코넬대 제공

열 나면 땀 흘려 식혀주는 로봇손

스스로 땀을 내 열을 식히는 로봇도 선을 보였다. 과열은 로봇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이다. 특히 비금속 재료로 만든 소프트로봇은 금속성 로봇에 비해 열을 방출하는 힘이 약하다. 냉각팬을 붙이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로봇의 부피와 무게가 커지는 부담이 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이를 피하기 위해 물을 표면에 흘려 내보내 열을 식히는 비금속 재질의 로봇손을 개발했다.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로봇손에 나 있는 작은 구멍들이 열리면서 물이 흘러 나온다. 우리 몸의 땀샘과 같은 원리다.
로봇손의 재료는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하이드로겔 합성수지다. 3D 프린팅 기술의 원조격인 광경화(SLA) 적층 제조 방식을 적용해 각각의 손가락을 제작했다. 수지에 레이저 빔을 주사해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방식이다.
손가락 내부에 물이 들어 있고, 표면에는 미크론(1미크론은 1천분의1mm) 크기의 미세한 구멍이 나 있다. 저온에선 이 구멍들이 닫혀 있다가 30도가 넘으면 표면 확장과 함께 구멍이 열리면서 물이 땀처럼 밖으로 흘러 나와 열을 식힌다. 냉각팬 같은 별도의 장치가 필요 없어 친환경적인 냉각 방식이다. 실험 결과 물이 증발하면서 표면 온도는 30초 안에 21도까지 내려갔다. 연구진은 냉각 효율은 사람 땀의 3배 이상, 냉각 속도는 팬보다 6배 빠르다고 밝혔다.
단점은 물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없다는 것. 또 물이 흘러나오면 로봇손이 물건을 잡는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 연구진은 물을 응축기로 다시 흡수해 저장하거나 물건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로봇 표면에 특수 코팅을 입히는 등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로봇손의 땀 분비 능력은 오염물질 제거 등 다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thing1.jpg » 광합성 박테리아로 만든 벽돌. 미 콜로라도대 제공

시멘트 대신 박테리아·젤라틴 투입해
재생·증식하는 `살아있는 벽돌' 개발

최근엔 생명과학기술과 결합한 연구 성과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기술은 살아있는 세포들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살아 있는 콘크리트 벽돌이 등장했다. 재료는 박테리아다. 미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광합성 박테리아를 이용해 시멘트의 주성분이자 바위나 진주, 조개껍질의 주성분인 탄산칼슘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우선 영양분을 섞은 따뜻한 물에서 박테리아를 배양한 뒤 이를 모래, 젤라틴과 혼합했다. 젤라틴은 시중에서 구입한 녹스(Knox) 제품을 사용했다. 이 혼합물을 거푸집에 붓자 식으면서 박테리아가 탄산칼슘을 쌓았다. 침전물은 하루가 지나자 딱딱하게 변했다. 처음엔 녹색을 띠지만 수분이 빠지면서 갈색으로 변했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는 재료공학 분야 학술저널 <매터>에 실렸다.
이 재료의 강도는 어떨까? 2인치 크기 육면체는 사람이 올라서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기존 콘크리트보다는 강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발상자 크기에서는 건축 현장에서 쓰는 벽돌만큼 강했다. 박테리아 콘크리트의 가장 큰 장점은 손상된 부분을 재생하거나 증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벽돌 조각에 영양분과 모래, 젤라틴, 그리고 온수를 섞어주면 박테리아가 증식하면서 벽돌을 만들어간다. 연구진은 7일만에 벽돌 1개가 2개가 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실험을 몇차례 하면 박테리아 벽돌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다. 연구진은 1개 벽돌이 3세대를 거쳐 8개 벽돌이 되는 지점까지 실험했다.
살아 있는 콘크리트는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콘크리트는 물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쓰는 자원으로 꼽힌다. 콘크리트 원료인 시멘트는 석회석을 태워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인류 전체 배출량의 7~8%나 된다. 살아 있는 콘크리트는 이 과정이 필요 없다. 박테리아가 시멘트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광합성을 통해 온실가스를 흡수한다. 경제성을 갖춘다면 콘크리트를 대신할 친환경 건축재료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한계는 있다. 제 기능을 하려면 박테리아가 살 수 있는 습도, 온도가 갖춰져야 한다. 연구진은 앞으로 물과 젤라틴의 양을 줄여도 똑같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계속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연구진은 지구의 건축재료를 직접 가져가기 어려운 우주에서 현지 물질과 박테리아를 이용해 구조물을 짓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thing2.jpeg » 균사체를 2주간 배양해 만든 초보 형태의 스툴 의자. 나사 제공

나사, 균사체로 달-화성 기지 건축 방안 연구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은 더 나아가 균사체로 화성이나 달 기지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아직은 초기단계라 섣부른 예측은 할 수 없지만 성공할 경우 우주건축의 새 경지를 개척할 것으로 기대된다. 휴면 상태의 균사체를 우주로 가져간 뒤 기본 구조물에 물만 추가하면 균사체가 스스로 구조물을 완성해가는 건축 방식이다. 달이나 화성에 있는 얼음 형태의 물, 우주비행사들에게 요긴한 산소와 균사체의 영양분인 시아노박테리아(광합성 세균), 그리고 균사체가 우주 기지 건축의 3요소다. 균사체는 건축 재료 외에도 물을 걸러주고 소변에서 미네랄을 추출해줄 수도 있다. 균사체 건축 방식을 지상에 적용하면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
thing3.jpg » 뭉툭한 네다리를 갖춘 세포로봇.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제공

개구리세포로 만든 세포로봇...생명윤리 논란도

살아 있는 로봇도 등장했다. 인공지능과 생물학을 결합해 세포들로 만든 로봇이다. 연구진은 "전통적인 기계로봇도 동물도 아닌 새로운 종류의 인공물, 즉 설계가 가능한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설명했다.
미국 버몬트대와 터프츠대 연구진이 만든 이 로봇의 이름은 제노봇(xenobot)이다. 크기가 1mm인 이 로봇의 원산지는 개구리 배아의 줄기세포다. 연구진은 줄기세포를 배양해 심장세포와 피부세포를 확보했다. 심장세포가 로봇의 엔진, 피부세포가 로봇의 몸통이다. 연구진은 그런 다음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특정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두 세포를 입체적으로 결합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로봇은 500~1000개의 세포로 구성됐다. 세포로봇은 직선 또는 곡선으로 움직이면서 작은 물체를 운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세포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최대 10일간 작동했다.
연구진은 바다의 미세플라스틱 수거, 재난구역의 독소 물질 제거, 약물의 체내 전달 등에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세포를 기계처럼 사용하는 만큼 생명윤리에 관한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연구진은 "중요한 것은 공개적인 연구이므로 토론을 통해 최선의 방법을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영국 옥스포드대 실천윤리센터 토마스 더글라스(Thomas Douglas) 선임연구원은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예컨대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신경조직이 있다면 보호받을 필요성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도덕적 문제에서 좀더 자유로울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모든 살아있는 개체는 도덕적 고려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노봇에 대한 판단은 좀더 복잡해진다. 살아 움직이는 사물은 생물인가 기계인가. 공학과 생명과학, 컴퓨터의 결합이 한편에선 사물의 경계를 확장해주고, 다른 한편에선 새로운 숙제를 던져준다.

출처
서울과기대 4디 프린팅
보도자료
나사, 균사체 건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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