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청중은 사운드보다 비주얼에 더 감흥한다 생명건강

연주실황 음반 평가 실험 결과

청각보다 시각에 영향 더 받아

전문가-아마추어 간 차이 없어

 

“그는 연주할 때 긴 머리카락을 채찍처럼 휘두르고, 땀방울이 객석으로 날아드는가 하면, 여성 팬들은 흥분한 나머지 까무러치거나 속옷을 벗어 무대로 던졌다.”
 위에서 말한 `그`는 누구일까? 답은 믹 재거도, 지미 페이지도, 랑랑도 아닌 19세기 헝가리의 피아니스트인 란츠 리스트다.
 그가 극장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본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그가 커튼 뒤에서 연주했다면, 그의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음악 애호가들은 펄쩍 뛰며 반박할 것이다. “무슨 소리야? 우린 공정해. 가식적인 행동 따위에 현혹되지 않는다구. 중요한 건 음악이야!”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연주의 질에 대한 평가는 청각보다는 시각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발행하는 ‘글로벌 동향 브리핑’은 21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실린 이런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했다.
04717477_P_0.jpg » 공연장의 청중들은 사운드보다 비주얼에 더 영향을 받는다. 조용필의 5월31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공연 모습.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겨레신문서 재인용.  

<네이처>에 따르면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치아-정 체이 박사(심리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번주 미 <학술원회보>(PNAS)에 기고한 논문에서, 음악애호가들을 당황시킬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체이 박사가 실험 시작 전에 “곧 연주실황이 담긴 음반이나 뮤직비디오를 평가하는 실험을 할 텐데, 무엇을 가장 중점적으로 볼 예정인가요?”라고 질문하자, 83%의 피험자들(훈련받지 않은 아마추어 음악 애호가는 물론 전문 뮤지션까지도 포함됨)은 이구동성으로 `사운드`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연구진이 피험자들에게 세계 10대 음악경연에서 3위 안에 든 뮤지션들의 연주실황을 들려주거나 보여준 다음,“ 누가 1등을 했을지 맞춰 보세요?”라고 물은 결과, 청중들의 말은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전문가와 아마추어로 이루어진 피험자들에게, 3가지 방법(오디오, 오디오+비디오, 비디오)으로 연주실황을 시청하게 했다. 그 결과, `오디오만 청취한 경우`와 `오디오와 비디오를 동시에 시청한 경우`에는 적중률이 약 33%였다. 전문가와 아마추어 사이에 적중률 차이도 없었다. ‘비디오만 본 경우’에는 적중률이 46~53%였다. 이번에도 역시 전문가나 아마추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심리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체이 박사는 “나 역시 클래식 연주가로서, 이번 연구결과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평가기준`과 `우리가 실제로 평가하는 기준` 사이에 커다란 갭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캐나다 오타와대의 빈센트 베르예론 박사(음악철학)는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공연용으로 작곡된 음악(클래식 포함)은 음향예술인 동시에 시각예술이다. 따라서 음악은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연구는 문제의 핵심을 찌른, 매우 우수한 연구”라고 그는 논평했다.
 체이 박사는 “사운드가 연주자의 기교를 나타낸다면, 비주얼(행동, 표정)은 연주자의 열정과 동기부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청중들, 특히 아마추어들은 비주얼에 높은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아마추어들은 전문가들보다 연주자의 열정과 동기부여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그들이 전문가들과는 달리, 세세한 사운드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맥길 대학의 대니얼 레비틴 박사(음악심리학)는 이번 연구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논평하며, “어떤 의미에서 시각이 청각보다 더 원초적(primordial)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혹자는 우리가 시각적 화려함에 현혹되면, 연주자의 음악적 깊이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언어에는 음성언어만 있는 게 아니라 신체언어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연주자의 몸짓과 표정을 연주의 일부로 간주해도 좋은 것 아닐까.
 연주자의 비주얼(표정과 몸짓)은 사운드에 ‘플러스 알파’를 제공해 음악의 폭과 깊이를 더해 준다. 체이 박사는 “많은 연주자들은 본능적으로 ‘시각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아마 믹 재거도, 프란츠 리스트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cn=GTB2013080346&service_code=03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3-08-21     

※ 원문정보:
Chia-Jung Tsay, ”Sight over sound in the judgment of music performance“, PNAS, Published online before print August 19, 2013, doi: 10.1073/pnas.1221454110
http://www.nature.com/news/musicians-appearances-matter-more-than-their-sound-1.13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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