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초미세먼지, 잠자는 폐암 유발 세포를 깨운다 생명건강

한국 등 4개국 폐암 발생-대기오염 분석 결과
폐 속으로 침투한 미세입자가 염증 일으키면
휴면 상태의 돌연변이 세포가 종양으로 발전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날의 서울 도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날의 서울 도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해마다 봄이 되면 중국 쪽에서 날아오는 황사가 심해지면서 그렇잖아도 탁한 도시의 공기가 더욱 탁해진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2일 전국 미세먼지(PM10) 농도는 환경기준치의 2.5배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초미세먼지(PM2.5) 농도도 이날 아침 대부분의 지역에서 ‘나쁨’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90%가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800만명에 이른다. 그 중에는 초미세먼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 폐암 사망자가 25만명 이상 포함돼 있다. 영국의 경우 대기오염에 의한 폐암 발생이 전체의 10분의 1로 추정한다. 해마다 비흡연자 가운데 약 6000명이 폐암으로 사망한다. 미국 워싱턴대 보건계량평가연구소(IHME)에 따르면 대기오염은 고혈압, 흡연에 이은 세계 3위의 사망원인이다.

그러나 대기오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폐암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규명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자외선이나 담배 연기 같은 환경 인자는 DNA 구조를 손상시켜 암을 촉발하지만, 대기 오염에서는 그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영국 런던의 프랜시스크릭연구소 연구진이 생쥐 실험을 통해 대기 오염은 새로운 DNA 돌연변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암 유발 돌연변이가 있는 기존 세포의 증식을 촉진하는 염증을 통해 폐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세레나 닉-자이날 케임브리지대 교수(유전학)은 “모든 발암물질이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며, 발암 물질에 노출되면 DNA가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암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연구”라고 말했다.

초미세먼지 노출 3년만에 위험도 ‘껑충’

연구진은 한국과 대만, 영국, 캐나다 4개국의 대기오염 실태와 이들 나라의 폐암 환자 3만3천명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연구진은 특히 폐암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는 흡연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상피세포성장인자’(EGFR) 유전자에 돌연변이에 의한 폐암에 초점을 맞췄다. 이 돌연변이는 비흡연자에서 주로 발견된다.

연구진이 이 돌연변이 폐암 환자들을 분석한 결과, 꽃가루 알갱이의 10분의 1 정도 크기인 지름 2.5㎛(1㎛=100만분의1m) 이하 초미세먼지(PM2.5) 오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기중의 초미세먼지 수치가 높을수록 폐암 발병률이 높았다. 특히 표본 수가 적기는 하지만, 캐나다 비흡연 폐암환자의 경우 초미세먼지에 3년 노출된 후 폐암 발병 위험이 40%에서 73%로 증가했다. 이런 초미세먼지는 자동차나 석탄화력발전소, 땔감나무 연소에서 주로 배출된다.

연구진은 이어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EGFR 돌연변이 조작을 한 생쥐를 이용해 비교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초미세먼지 입자에 노출된 생쥐는 그렇지 않은 생쥐보다 폐암 발생률이 더 높았다. 그러나 쥐의 폐 세포에서 돌연변이 수가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몇주간에 걸쳐 염증 징후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대기 오염에 놀라 폐로 몰려든 일부 면역세포가 염증을 촉진하는 단백질 ‘인터루킨1-베타’(IL-1β)을 방출한 것이다. 연구진이 이를 차단하는 항체를 투여하자 폐암 발병률도 줄었다. 이는 대기오염이 폐에 이미 존재하는 돌연변이 세포의 증식을 촉진했다는 것을 뜻한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알랜 발메인 교수는 <네이처>에 “대기오염이 암을 유발하는 주된 메카니즘은 새로운 돌연변이를 유발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속적인 염증이 기존 돌연변이 세포를 종양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세먼지(PM10)는 대개 기도 및 소화계에서 이동을 멈추지만 초미세먼지(PM2.5)와 극초미세먼지(PM0.1)는 폐는 물론 다른 여러 장기까지 침투한다. Front Public Health(2022)
미세먼지(PM10)는 대개 기도 및 소화계에서 이동을 멈추지만 초미세먼지(PM2.5)와 극초미세먼지(PM0.1)는 폐는 물론 다른 여러 장기까지 침투한다. Front Public Health(2022)

폐암 유발 돌연변이, 세포 60만개 중 1개꼴

연구진에 따르면 EGFR 돌연변이는 건강한 폐 세포에서 60만개 중 1개꼴로 발견된다. 드물기는 하지만 건강한 사람에게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이 돌연변이 세포가 대기오염 물질에 노출된 폐에 염증이 생길 경우 종양으로 발전해가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찰스 스완튼 교수는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가 있는 세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적으로 축적되지만 일반적으로는 비활성 상태”라며 “이번 연구는 대기 오염이 폐에서 잠자고 있던 이러한 세포를 깨워 종양을 형성하도록 촉진한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논문 공동 제1저자인 윌리엄 힐 박사는 “그러나 대기 오염으로 인한 암 위험은 DNA 돌연변이를 직접 유발하는 흡연에 비하면 훨씬 낮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밝혀낸 암 발생 메카니즘은 환경 노출로 인해 발생하는 다른 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며, 암을 예방하는 방법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했다. 발메인 박사는 “폐암의 원인이 새로운 유전자 돌연변이 유발이 아니라면 기존 돌연변이 세포가 활성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염증과 싸울 수 있는 간단한 식이요법이 암의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86-023-05874-3

Lung adenocarcinoma promotion by air pollutants.

Nature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3-00989-z?

https://www.crick.ac.uk/news/2022-09-10_scientists-reveal-how-air-pollution-can-cause-lung-cancer-in-people-who-have-never-smoked

https://www.sciencealert.com/just-3-years-of-air-pollution-can-increase-lung-cancer-risk-study-warns?

https://www.esmo.org/newsroom/press-releases/scientists-discover-how-air-pollution-may-trigger-lung-cancer-in-never-smokers?c

세계 사망원인

https://ourworldindata.org/grapher/number-of-deaths-by-risk-factor

대기오염의 생리적 영향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932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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