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뚫고 찾아온 진객 ‘회색바람까마귀’ 윤순영의 시선

지난달 군산 어청도서 한 마리 관찰
먼 길 떠나기 앞서 사냥에 바빠
다른 섬에서도 “새 보기 힘들다” 증언
군산 어청도의 회색바람까마귀. 1961년 평북 용천군 신도에서 암컷 1개체가 잡힌 이후 40년 만에 가거도에서 관찰됐고 이후 매우 드물게 관찰되는 나그네새이다.
군산 어청도의 회색바람까마귀. 1961년 평북 용천군 신도에서 암컷 1개체가 잡힌 이후 40년 만에 가거도에서 관찰됐고 이후 매우 드물게 관찰되는 나그네새이다.

4월15일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탐조에 나섰다. 여름철새가 이동하는 길목이기에 다양한 새들을 해마다 관찰하기 적합한 곳이다. 어청도는 군산항에서 뱃길로 72㎞, 중국 산둥반도와는 300㎞ 떨어진 섬으로 서해 중부 해역 중 육지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새로운 배가 취항하면서 기존에 2시간 20분이었던 군산~어청도 항해시간이 1시간 40분대로 단축되었다.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항구 정경. 철새의 주요한 이동 통로에 놓인 섬이다.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항구 정경. 철새의 주요한 이동 통로에 놓인 섬이다.

어청도에 도착하자마자 날씨가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여기저기에서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육지보다 십 여일 이상 늦게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여름철새의 정거장이라 하기엔 너무 한적하다. 새들의 이동이 활발할 시기에 맞춰 방문했음에도 눈에 띄는 새가 없다. 초겨울을 연상케 하는 추위 탓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간혹 보이는 노랑눈썹멧새, 붉은뺨멧새, 유리딱새 몇 마리가 여름철새들의 이동 시기임을 알린다.

노랑눈썹멧새.

노랑눈썹멧새.

쇠붉은뺨멧새.
쇠붉은뺨멧새.

별다른 성과 없이 일주일이 지나갔다. 4월22일 작은 텃밭 한 곳에서 흰눈썹황금새가 관찰되고 황금새, 진홍가슴새를 보았다. 흰눈썹울새도 찾아왔다. 수컷 흰눈썹울새는 해마다 관찰되었지만 암컷 흰눈썹울새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암컷은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먼 거리를 날아와 기력을 회복 중인 황금새.
먼 거리를 날아와 기력을 회복 중인 황금새.

흰눈썹울새 암컷.
흰눈썹울새 암컷.

그 다음 날 운 좋게 희귀조류인 회색바람까마귀를 만났다. 마음이 설렌다. 회색바람까마귀는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중국 남부, 일본 남부, 대만, 하이난, 안다만제도, 대순다 열도, 팔라완에 서식하는 새다.

회색바람까마귀가 나뭇가지 꼭대기에 앉아 사냥감을 노린다. 이제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회색바람까마귀가 나뭇가지 꼭대기에 앉아 사냥감을 노린다. 이제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1961년 10월11일 평북 용천군 신도에서 암컷 1개체가 잡힌 기록이 처음이며, 이후 오랫동안 기록이 없다가 2000년 5월 21일 전남 신안 가거도에서 1개체가 관찰되었다. 최근 전남 신안 홍도, 전북 군산 어청도, 충남 태안, 인천 옹진 소청도, 문갑도 등지에서 관찰되고 있는 희귀한 나그네새다.

사냥에 나서는 회색바람까마귀.
사냥에 나서는 회색바람까마귀.

회색바람까마귀는 한 쌍이나 단독 또는 작은 무리로 발견되기도 한다. 5월과 6월에 3~4개의 알을 낳는다. 조용히 움직이는 새지만 둥지에 접근하면 큰 새조차도 공격하는 대담하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다른 새들의 노래를 흉내 내기도 한다. 백두산 높이의 고도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매우 조용하게 움직인다.
매우 조용하게 움직인다.

몸길이는 29㎝이며 깃은 전체적으로 엷은 회색이다. 몸 윗면의 색이 아랫면보다 더 진하다. 이마에 폭 좁은 검은색이 있고 눈을 중심으로 얼굴 주변에 흰색 반점이 있다. 눈은 붉은색이다. 꼬리는 길고 가운데가 오목하며 꼬리 끝부분이 휜 듯이 양쪽 바깥쪽으로 향한다. 빛을 받으면 깃털에서 은빛 광택이 난다. 회색바람까마귀는 충분한 먹이를 먹어야 길을 떠날 수 있기에 사냥에 열중한다.

나무를 옮겨 다니며 사냥감을 찿는 회색바람까마귀. 안개가 끼어도 사냥에 큰 불편함이 없는 것 같다.
나무를 옮겨 다니며 사냥감을 찿는 회색바람까마귀. 안개가 끼어도 사냥에 큰 불편함이 없는 것 같다.

오늘따라 안개가 심하게 끼어 멀리 앉아있는 회색바람까마귀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높은 나무 꼭대기에 반듯한 자세로 서 있듯이 앉아있던 회색바람까마귀가 풀숲에서 낮게 날아가는 곤충을 급습한다. 회색바람까마귀는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으로 날아가 사냥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안개가 잠시나마 약해졌을 때 관찰이 가능했다.

날아가는 곤충을 사냥하는 회색바람까마귀.
날아가는 곤충을 사냥하는 회색바람까마귀.

그러나 다시 안개가 바람을 타고 바닷가에서 마을로 밀려온다. 회색바람까마귀가 안개에 묻힌다. 회색바람까마귀는 사냥을 하면서 시야에서 멀어져 가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아쉬운 만남이었지만 새가 잘 관찰되지 않는 시기에 희귀한 녀석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갈 길은 바쁘고 사냥감은 풍족하지 않다.
갈 길은 바쁘고 사냥감은 풍족하지 않다.

이곳 어청도 주민들도 올해는 새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추워서 그런 게 아니겠냐며 되려 묻는다. 여러 주민과 대화하다 보니 한결같이 어청도의 이상기온을 걱정하고 있었다.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새들의 이동 길목에 있는 다른 섬에도 전반적으로 새를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갈 길이 바쁜 회색바람까마귀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갈 길이 바쁜 회색바람까마귀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지난 겨울 작은 겨울철새들이 매우 적게 관찰되었던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새들은 생태계의 정점에 위치하여 자연환경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혹여 기후변화 때문은 아닐까.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탐조인들도 철새들의 이동 시기가 늦고 개체 수가 적어진 것을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다양한 새들을 만나지 못한 채 열흘간의 아쉬운 탐조를 마쳤다. 5월이 되면 더 많은 새가 번식지로 향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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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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