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맹금류 3대 강자가 벌이는 ‘분원리 전투’ 윤순영의 시선

팔당호와 경안천 만나는 먹이터…물수리, 흰꼬리수리, 참수리 몰려 티격태격
경안천이 팔당호와 만나는 경기도 광주시 분원리는 겨울철 맹금류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참수리(왼쪽)와 흰꼬리수리가 먹이터를 놓고 다투고 있다.
경안천이 팔당호와 만나는 경기도 광주시 분원리는 겨울철 맹금류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참수리(왼쪽)와 흰꼬리수리가 먹이터를 놓고 다투고 있다.

기러기를 시작으로 겨울 철새가 몰려들면 포식자인 맹금류도 이들을 추적한다. 10월 중순께부터 광주시 분원리를 찾아가 물수리와 흰꼬리수리를 관찰해 왔다.

통과 철새인 물수리는 9월 말부터 한 달 동안 머물면서 한강하구, 광주 경안천, 강원 남대천, 서산 천수만, 울산 태화강, 포항 형산강 등에서 사냥에 열중하며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물수리는 하루에 서너 번 사냥에 나선다.

물수리가 사냥감을 살핀다.
물수리가 사냥감을 살핀다.

사냥감을 발견하고 빠르게 돌진하는 물수리.
사냥감을 발견하고 빠르게 돌진하는 물수리.

강준치로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강준치로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수면 위에 펼쳐진 풍경이 수채화 같은 이곳 분원리에 ‘탈취의 고수’인 흰꼬리수리가 나타날 무렵이면 물수리는 목적지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한다. 흰꼬리수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제법 큰 물고기를 잡더니 요즘은 가볍고 작은 물고기를 주로 사냥한다. 비행속도를 높여 흰꼬리수리를 따돌리기 위한 전략이다. 작은 물고기를 여러 번 사냥하는 것이 큰 물고기를 사냥하여 빼앗기는 것보다 낫기도 하다.

물수리의 사냥감을 탈취한 흰꼬리수리.
물수리의 사냥감을 탈취한 흰꼬리수리.

다른 흰꼬리수리가 달려들자 탈취한 먹잇감을 떨어뜨리는 흰꼬리수리. 먹이 쟁탈전은 겨우내 흔하게 벌어진다.
다른 흰꼬리수리가 달려들자 탈취한 먹잇감을 떨어뜨리는 흰꼬리수리. 먹이 쟁탈전은 겨우내 흔하게 벌어진다.

11월 초에는 참수리가 나타났다. 새들이 월동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먹이터와 잠자리를 선정하는 것이다. 특히 맹금류는 우선 사냥을 위한 전망대를 정하고 개인 영역을 확보한다. 영역 확보는 월동과 생존이 걸려 있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되면 물수리가 다른 대형 맹금류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진다. 나그네새인 물수리는 30여 일간 머물렀던 장소를 미련 없이 뒤로 하고 먼 길을 떠난다.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사냥감을 살피는 참수리. 사냥을 위해 반나절 내내 기다리는 날도 종종 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사냥감을 살피는 참수리. 사냥을 위해 반나절 내내 기다리는 날도 종종 있다.

사냥감을 발견한 참수리가 날아오른다.
사냥감을 발견한 참수리가 날아오른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큼직한 누치를 사냥했다.
큼직한 누치를 사냥했다.

흰꼬리수리와 참수리는 분원리 최대의 맞수이다. 서로 겹치는 사냥터에서는 치열한 먹이 쟁탈전을 벌인다. 12월 초 본격적인 겨울나기가 시작되면서 맹금류들이 자리를 잡는다. 이때쯤이면 한반도에서 월동하는 맹금류들이 다 찾아왔으리라 생각된다.

참수리와 흰꼬리수리의 공중전. 겨울나기는 치열한 경쟁이다.
참수리와 흰꼬리수리의 공중전. 겨울나기는 치열한 경쟁이다.

흰꼬리수리는 오리류를 사냥할 때 부부가 협공하거나 혼자서 사냥을 한다. 때론 부부 중 한 마리가 사냥감을 몰아 놓고 안심시킨 뒤 사냥하기 좋은 위치에 미리 잠복했던 흰꼬리수리가 급습하여 사냥하는 전략을 펴기도 한다.

흰죽지는 맹금류의 표적이 되는 분원리의 오리류이다.
흰죽지는 맹금류의 표적이 되는 분원리의 오리류이다.

흰꼬리수리가 오리류를 사냥하는 모습은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참수리가 오리류를 사냥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참수리는 주로 분원리와 팔당댐 아래에서 민물가마우지와 흰비오리의 공격을 받았거나, 댐의 물살로 인해 충격을 받아 죽었거나 기절한 물고기, 또는 너무 커서 가마우지가 삼키지 못했던 물고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그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흰죽지를 사냥한 흰꼬리수리.
흰죽지를 사냥한 흰꼬리수리.

참수리는 온종일 보이지 않기도 하고 먼 거리에 앉아 있다가 별다른 행동 없이 날아가 버리기 일쑤다. 오랫동안 탐조를 하다 보니 이제는 새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 대신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12월이 되면 분원리 경안천에서 생활하던 흰꼬리수리와 참수리가 팔당댐 하류에 사냥터를 마련한다.

경기도 광주시 분원리 경안천 풍경. 초가을에 맹금류들이 많이 날아드는 곳이다.
경기도 광주시 분원리 경안천 풍경. 초가을에 맹금류들이 많이 날아드는 곳이다.

경안천이 팔당호와 만나는 분원리 일대 모습. 좌측에 팔당댐이 보인다.
경안천이 팔당호와 만나는 분원리 일대 모습. 좌측에 팔당댐이 보인다.

우리는 새가 그저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기만 하는 바보 같은 동물이라고 생각하여 새대가리라는 비속어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조금만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새들은 예민하고 영리하며 치밀한 계산을 통해 행동한다는 것을. 새는 나무가 있다고 무조건 앉지 않고 하늘이 있다고 무조건 날지 않는다. 집 뜰 안으로 들어오는 참새에게 길이 있듯이 모든 새에게는 길이 있다. 특히 맹금류는 필요 이상의 살생을 하지 않는다.

흰꼬리수리의 공중전. 한반도를 찾아온 겨울 철새들은 힘겨운 겨울을 견뎌낼 것이다.
흰꼬리수리의 공중전. 한반도를 찾아온 겨울 철새들은 힘겨운 겨울을 견뎌낼 것이다.

이동 시기에는 맹금류를 비롯한 모든 새가 무리를 형성해 안전을 도모하고 치밀한 은폐 기술로 둥지를 튼다. 바람을 읽고 바람을 타며, 정확한 거리를 계산하여 사냥하고 자유자재로 급선회하는 등 말 그대로 하늘을 지배한다.

무리를 이루는 새들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갑작스러운 위협이 닥쳐도 서로 엉키지 않고 한 치의 오차 없이 하나가 된 움직임을 보인다. 날아갈 때는 천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무리 개체 수가 많아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이용하기도 한다.

먹잇감을 뜯어먹고 있는 흰죽지수리.
먹잇감을 뜯어먹고 있는 흰죽지수리.

땅을 딛고 사는 우리는 땅에서 사는 동물들이 더 영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땅과 하늘을 오가며 두 곳의 시각을 모두 가진 새는 분명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12월로 접어든 이맘때 새들은 안정된 터전을 마련하고 겨울 채비를 끝냈다. 부모가 가르쳐 준 지혜를 기억하며 한반도를 찾아오는 새들은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약속의 터전을 계속 찾을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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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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