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거위 조상부터 희귀 기러기까지…강화도에 다 모였네 윤순영의 시선

회색기러기와 개리 한자리에, 매우 드문 흰이마기러기와 흰기러기도 목격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거위로 가축화한 기러기의 원종인 회색기러기(왼쪽)와 개리.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거위로 가축화한 기러기의 원종인 회색기러기(왼쪽)와 개리.

거위는 4000년 전 이집트 고고학 유물로 남아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랜 가축이다. 가축화는 두 곳에서 각각 이뤄졌는데 유럽에서는 회색기러기가 아시아에서는 개리가 원종이다.

두 기러기는 사는 곳과 이동 경로가 다르지만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인천시 강화도에서 겨울 철새인 개리와 드물게 찾아오는 나그네새인 회색기러기를 만났다. 동·서양 거위의 원종인 야생 기러기를 한 자리에서 만난 셈이다.

회색기러기가 주변의 쇠기러기를 밀어내고 있다.
회색기러기가 주변의 쇠기러기를 밀어내고 있다.

2월 26일 길잃은 회색기러기를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평야에 관찰했다. 이 기러기는 제주도와 충남 천수만,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등지에서 관찰된 기록이 있는 귀한 손님으로 분홍색 부리와 다리가 유난히 눈에 띈다.

회색기러기는 마을과 아주 가까운 논에 터를 잡고 많은 사람과 차량이 오가는데도 개의치 않고 먹이를 먹는다. 외톨이면서도 터줏대감 격인 쇠기러기와 큰기러기에 섞여 거침없이 행동한다.

먹이 활동을 하다가 물이 고인 논으로 날아가 목을 축이고 다시 지정석으로 돌아오곤 한다. 좋아하는 먹이가 있나 보다. 행동이 여유롭고 과묵해 보인다.

힘찬 날갯짓으로 무거운 몸을 공중에 띄운 뒤 목을 쭉 펴고 나는 회색기러기.
힘찬 날갯짓으로 무거운 몸을 공중에 띄운 뒤 목을 쭉 펴고 나는 회색기러기.

회색기러기는 유럽 거위의 원종이다.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분포하는데 북유럽과 중부 유럽에서 번식하는 회색기러기는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서 월동하고 아시아 집단은 몽골과 중국 북부에서 번식하고 인도 북부, 파키스탄, 중국 동부에서 겨울을 난다.

월동지로 가다 우리나라에 종종 들르는 개리.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월동지로 가다 우리나라에 종종 들르는 개리.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개리는 중국에서 기원전 1000년 전 거위로 가축화한 기러기 원종이다. 몽골과 중국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은 중국 중부와 동부에서 나는데 이동 중 우리나라를 거치거나 아예 머물기도 한다.

개리는 큰기러기와 달리 머리와 목 부분에 밝은색과 어두운색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개리는 큰기러기와 달리 머리와 목 부분에 밝은색과 어두운색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강하구에 있는 강화군에는 예성강과 서해안 일원의 충적 평야에 농경지가 많다. 논은 벼를 재배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소중한 자연이기도 하다. 추수가 끝나면 황량한 평야가 펼쳐지고 그 자리엔 새로운 생명이 깃든다. 떨어진 낱알을 찾아 겨울 철새들이 몰려든다.

겨울 동안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먹이 활동을 하던 기러기들은 3월이 되자 마을 앞 논으로 남은 떨어진 낱알을 먹기 위해 몰려든다. 뒤편에는 논갈이가 시작되었다.
겨울 동안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먹이 활동을 하던 기러기들은 3월이 되자 마을 앞 논으로 남은 떨어진 낱알을 먹기 위해 몰려든다. 뒤편에는 논갈이가 시작되었다.

3월 4일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평야에서 매우 희귀한 흰이마기러기를 만났다. 북극에 가까운 시베리아 최북단의 번식지에서 수천㎞를 날아온 진객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있고 세계적으로도 취약종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흰이마기러기의 수는 100마리 이하로 추정한다. 10만 마리 이상이 찾아오는 쇠기러기와 비교하면 흰이마기러기를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어렵다.

멸종위기종인 흰이마기러기. 부리부터 눈 사이로 이마 위까지 올라간 넓은 흰 깃털이 도드라진다.
멸종위기종인 흰이마기러기. 부리부터 눈 사이로 이마 위까지 올라간 넓은 흰 깃털이 도드라진다.

처음 만난 흰이마기러기는 다른 기러기보다 작고 몸에 밀착된 깔끔한 깃털과 몸 전체의 선이 군더더기 없이 미끈하게 잘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리부터 눈 사이로 이마 위까지 올라간 넓은 흰 깃털 그리고 선명한 노란 눈 테와 분홍색의 짧은 부리가 인상적이었다.

날개를 활짝 펼쳐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날개를 활짝 펼쳐 기지개를 켜고 있다.

새들은 바빴다. 번식지로 돌아갈 시기가 다가오면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위해 먹이 활동이 부지런해진다. 월동 때와 달리 번잡한 행동을 보이며 12개 이상의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는 기러기들은 소통도 많기에 다소 시끄러워진다.

이동에 앞서 부지런히 떨어진 낱알을 주워 먹는다.
이동에 앞서 부지런히 떨어진 낱알을 주워 먹는다.

서로의 애정관계도 돈독하게 다짐을 한다. 월동 중에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는 것은 후세를 이어갈 번식을 하는 데 중요하며 한반도의 월동지는 번식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제공한다.

흰이마기러기는 유라시아 대륙 북극권 툰드라에서 번식하지만 유럽 남부에서 드물게 번식하고 유럽 남부와 일본 남부, 중국 양쯔강, 카스피 해 남쪽, 나일 평원에서 월동한다.

강화에서 목격된 흰기러기.
강화에서 목격된 흰기러기.

비행하는 흰기러기.
비행하는 흰기러기.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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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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