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이는 한라산, 애틋함이 커져갑니다_ 2월 한라산국립공원 답사 후기 뭇생명의 삶터, 국립공원

올해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약칭 국시모)이 창립한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20년 동안 국시모는 기대와 우려, 낙담, 분노, 희망 등 인간이 갖는 온갖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표현하며 살아왔다.

20년을 맞이하며 국시모는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일이다. 이는 앞을 전망하기 위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1월26일 덕유산국립공원에서 진행된 회원모두모임에서는 20년 맞이 사업의 하나로 21개 국립공원 현장을 답사하자는 계획을 확정하였다. 국시모, 창립 20년, 21개 국립공원 현장 답사, 첫 대상지, 사무처가 선택한 곳은 한라산국립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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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시모에게 한라산국립공원은 가장 모르는 국립공원이다. 관련 자료도 없고, 발걸음도 적었으며, 현장 모니터링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국립공원이다. 국시모에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립공원을 관리하고 있는 환경부-국립공원관리공단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라산국립공원은 21개 국립공원 중 유일하게 환경부-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리하지 않는 국립공원이다. 한라산국립공원은 제주특별자치도가 관리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은 한반도 최남단에 있다. 높이는 1950m로 남한에서 가장 높다. ‘한라산’ 하면, 나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한라산 높이는 ‘한 번 구경 오십시오.’라고 한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는 나의 한라산에 대한 애정 정도를 반영하는 기억이다. 그 다음이 백록담, 노루, 조릿대, 영실, 남벽, 윗세오름대피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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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록담  윗새오름대피소

 

한라산은 1966년 10월 12일 천연기념물 제182호인 한라산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1970년 3월 24일에는 국립공원으로, 2002년 12월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 2007년 6월에는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2010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제주도 곳곳에 표기된 ‘자연과학분야 유네스코 3관왕’은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을 말하는 것인데,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은 아마도 ‘관왕’ 이란 표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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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라산국립공원 답사는 한라산에 오르는 일만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련 연구자를 만나고, 한라산운동 단체와 사람을 만나고, 제주도에 사는 회원을 만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번 한라산국립공원 답사엔 초록숨소리를 담당하는 김민정 간사와 지리산학교 구례/곡성 아름다운 길 걷기반이 동행했다.

 

2월 26일 장흥 노력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 성산포항으로 들어갔다. 하늘은 어둡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같은 나라, 비행기로는 1시간, 배로는 2시간이면 닿는 땅인데 제주는 여전히 낯설고, 그래서 기대된다. 장흥 노력항을 출발한 배안에서 잿빛바다를 바라보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오른쪽이 제주, 왼쪽이 우도입니다. 우리 배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어 저속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선내 방송에 눈이 떠졌다. 제주도다! 멀리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가는 13번 국도에 서면 월출산국립공원이 한눈에 보이고, 수도권 전철 도봉산, 망월사, 회룡역을 지날 때면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지역이 한눈에 보인다. 한눈에 보이는 것들은 눈을 감아도 한눈에 그려진다. 한눈에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그리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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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어디에서든 한눈에 보이는 한라산

 

제주도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제주시내로 이동하여 낮밥을 먹고 고정군 박사를 만나기 위해 한라수목원으로 향했다. 고정군 박사는 30년 동안 한라산 생태를 연구한 사람으로, 학계에서는 한라산 생태와 고정군을 동의어로 생각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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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제주조릿대, 구상나무, 노루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2012년 발간한 ‘한라산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 책자 여기저기를 펼치며 한라산국립공원 생태와 이를 기록하고, 분석하기 위한 한라산연구소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한라산연구원은 한라산국립공원만이 아니라 제주도 전역의 생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라산국립공원 생태계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4월 발간되는 초록숨소리에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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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조릿대

 

지리산국립공원, 그곳에 사는 구상나무에 대해, 구상나무의 빠른 쇠퇴를 어떻게 기록해야하는지 고민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지리산자락에 산다면서 뭘 고민합니까? 산으로 가야지요. 줄기차게 가서 기록하고, 그게 우선입니다. 그게 쌓이면 좋은 자료가 되고, 근거가 됩니다.’ 대체 난 뭘 고민하고, 왜 주저하는 걸까?

 

비 내리는 제주를 걷고, 차를 기다리고, 간간히 느껴지는 바다냄새를 맡으며 뭔지 모를 사명감과 뿌듯함으로 한라산국립공원 첫날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한라산연구소가 있는 한라수목원엔 수선화, 애기동백꽃과 매화가 한창이었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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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기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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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

 

2월 27일, 한라산국립공원에 올랐다. 어리목에서 사제비동산, 만세동산을 지나 윗세오름대피소까지 4.7㎞, 처음엔 힘들고, 중간엔 덜 힘들고, 나중엔 편안한 길이었다. 눈이 쌓이고, 곳곳에 빙판이 있어 미끄러웠으나 아무 것도 문제되지 않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졸참나무와 제주조릿대로 뒤덮인 숲, 군데 군데 모여사는 구상나무, 사제비동산을 지나며 펼쳐지는 오름과 바다, 파란 하늘과 잿빛, 초록빛 나무들의 조화, 봄이나 가을이었으면 더 아름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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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참나무와 제주조릿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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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상나무와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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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세동산에서 바라본 오름과 바다

 

한라산국립공원은 지리적 위치와 해발고도, 지세 등의 영향으로 아열대에서 한대 기후대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기후대에 사는 다양한 식물들, 한라산국립공원은 2000여종의 야생식물과 5000여종의 야생동물 삶터이다. 한라산국립공원에 사는 야생식물 중 특산식물이 90여종이나 된다하니, 한라산국립공원은 정말 대단한 곳이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준비해 간 낮밥을 먹고 어리목으로 내려와 한라산국립공원사무소와 어리목 탐방안내소를 돌아봤다. 한라산국립공원엔 3개의 사무소와 2개의 안내소가 있는데 어리목에 있는 사무소가 전체를 관장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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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국립공원사무소  ↑ 어리목 탐방안내소

 

한라산국립공원에서 일한지 19년째라는 오희삼 님은 육지에 있을 때 ‘사람과산’이라는 산악잡지에서 일했다고 한다. 육지와 다르게 제주도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특별하다고, 정신적 상징성도 있지만 삶터이기도 하다고, 나무나 약초를 캐려 해도 한라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에서 도채, 도벌을 단속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였다. 그는 일주일에 2~3회 정도 한라산에 오른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한라산국립공원 이야기도 4월 초록숨소리에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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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국립공원 답사 마지막 날, 제주참여환경연대를 찾았다.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에 반대하며 창립된 ‘제주도개발특별법제정반대범도민회’가 제주참여환경연대의 시작이다. 20년 넘게 참여자치, 환경보전, 도민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해 활동해온 제주참여환경연대에게 한라산국립공원은 남다른 곳이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2001년 한라산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생태해설가 양성교육, 어린이생태교육, 생태관광 등 여러 과제들을 성실히 수행하며 한라산국립공원과 인연을 맺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한라산 케이블카를 도민들의 힘으로 백지화시켰고, 생태해설가 양성교육을 통해 발굴된 한라생태길라잡이는 한라산국립공원 관음사지구에서 10년 넘게 자연해설을 하고 있으며, 제주시자활후견기관, (준)평화인권센터, 곶자왈작은학교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는 든든한 버팀목들을 만들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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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참여환경연대가 운영하는 교육문화카페 ‘자람’

 

한라생태길라잡이를 통해 제주참여환경연대와 인연을 맺어 지금은 상근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홍영철 대표와의 만남은 원칙을 지키고, 일꾼을 길러내고, 서로 나누는 일은 힘겹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일임을 느끼게 해줬다. 20년을 맞이한 국시모에게 제주참여환경연대 활동은 의미 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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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참여환경연대를 나와 제주4․3평화공원으로 향했다. 제주4․3평화공원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김용철 회원은 제주4․3평화공원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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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효 작가 사진공방에서 (왼쪽 김용철 회원, 오른쪽 강정효 작가)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인 제주로 내려와 제주4․3평화공원에서 일하며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두 아이의 아빠, 김용철 회원과의 2시간은 소박하고 아련한 시간이었다. 학교 선배의 강압에 못 이겨 국시모에 가입한 게 아니라, 자연은, 국립공원은, 한라산은 지금 이대로 놔둬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회원을 유지하는 거라 말하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학창시절,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위해 밤낮없이 거리를 오가던 김용철 회원, 그는 지금 제주도의 아픔과 평화의 공간에서 일하며, 생명 일반에 대해 한없는 존중을 표하며 살고 있다.

 

김용철 회원의 차로 강정효 작가를 만나러 애월읍 광령리로 향했다. 그는 한라산 작가라고도 불린다. 한라산에 대한 그의 사랑은 글과 사진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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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공방 마당에 서면 한라산이 한눈에 보인다

 

그가 한라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기자생활을 하면서였다. 일반 기자였던 그는 한라산과 가까워지기 위해 사진기자를 자처했다. 사진기자가 된 후 줄기차게 한라산에 오르내렸다. 그러면서 한라산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라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개발업자들에 대항하여 구체적 자료를 근거로 한라산 케이블카를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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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 관련 자료가 빼곡한 강정효 작가 서재

 

그는 제주도와 한라산을 구분하는 건 의미 없다고 말했다. 용암동물만으로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될 수 있음에도 한라산을 함께 등재 시킨 이유가 무엇이겠냐고, 한라산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용암동물은 제주도와 동일시되는 한라산과 동시 등재해야만 상승효과가 있다고 누구나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사진공방을 지으며 백록담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창을 냈다. 그의 책상은 한라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그는 한라산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한라산을 보며 글을 쓰며, 한라산을 보며 메일을 보내고, 한라산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의 사진공방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 무, 보리, 매화도 한라산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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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효 작가와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했다. 그와 헤어져 버스를 타고 제주도 산길, 밭길을 달려 성산포항으로 가는 동안 제주도의 하늘은 회색빛으로 바뀌었고 바람은 거세졌다. 한라산에서 불어온 바람에 냉기가 담겨있는 걸 보니 날이 추워지려나 보다.

지리산을 바라보며 사는 나는, 한라산과 함께 삶을 꾸려내는 제주사람들에게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지리산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리산으로 들어가고 싶은 나는, 한라산에 대한 제주사람들의 그리움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2월말 진행된 한라산국립공원 답사는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제주도와 한라산국립공원이 애틋하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글과 사진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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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