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바다를 묻다_ 2013년 단오날에 그(그녀)를 만나자!

지난 6월 13일은 계사년(癸巳年) 단오(端午, 음력 5월 5일)였다. 단오는 1년 중 양(陽)의 기운이 가장 센 날이라 한다. 단오를 며칠 앞 둔 어느 날, 단오 풍습이 남아있는 곳이 없어 아쉽다는 나에게 우범스님은 해마다 단오 때면 화엄사 스님들은 산에 소금을 묻는다고 했다. 귀가 번쩍했다.

산에 소금을? 나의 의문에 우범 스님은 간단히 답했다. ‘소금을 묻어 화기를 잠재우는 거지요.’ 아 그렇구나, 근데 왜 소금일까, 옛날엔 소금이 귀했으니 귀한 걸 묻는 걸까 아님 부정 탔을 때 소금을 뿌리듯이 소금이 화마를 물리치리라 생각하는 걸까.

 

단오 날, 나는 스님들을 따라 산에 올랐다. 화엄사 적묵당 마당을 서성이던 효진 스님은 산에 왜 소금을 묻느냐는 나의 질문에 ‘소금이 뭡니까, 바다에서 나는 것 아닙니까? 바다는 가장 큰 물이지요. 그러니까 산에 소금을 묻는다는 건, 산에 가장 큰 물을 묻는 거예요. 가장 큰 물을 산에 묻어 화기를 잠재우는 거지요.’

화엄사는 단오 때면 산에 소금을 묻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잠시 끊겼던 전통은 6년 전부터 다시 행해졌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원오 스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화엄사만 하는 거 아닙니다. 다른 절에서도 합니다. 화엄사의 화산은, 그러니까 불의 기운이 가득한 화산은 각황전에서 봤을 때 뾰족한 저 산입니다. 전각에 소금을 놓아두기도 하는데 처마 밑, 아래서는 잘 안 보이는 곳에 소금을 넣은 작은 항아리 놓습니다. 역시 단오 때 합니다. 절에서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봉우리, 암자, 다리 등의 이름을 水(물수)자를 넣어 짓기도 하지요. 수정봉, 수정암, 수정교, 수문교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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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사년 단오 행사에 참여한 화엄사 스님들

 

소금과 새참을 챙긴 스님들은 계곡을 건너 산길을 이리저리 헤치며 화산으로 올랐다. 한 차례의 내리막도 없는 산길이었다. 몸에서 불이 나는 듯했고, 얼굴로 올라온 화기는 안경을 뿌옇게 만들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여러 산을 여러 해, 여러 차례 다녔지만 처음 경험하는 열기였다. 내 몸에 이렇게 많은 열과 물이 있다니, 놀라웠다. 스님들도 땀범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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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으로 가는 길

 

땀과 열기에 휩싸인 걸음은 두 시간쯤 지나서야 멈춰졌다. 이곳이라고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봉우리였다. 스님들은 바위 아래 묻어뒀던 항아리에서 작년 소금을 꺼내고 가지고 온 소금을 넣었다. 땅을 파고, 항아리를 꺼내고, 소금을 꺼내고, 소금을 넣고, 항아리를 다시 땅에 묻는 스님의 손길에 정성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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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에 소금을 묻는 스님들

 

화엄사의 화산, 뾰족한 그곳 사방에 소금을 묻은 스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황전을 바라보며 목탁을 치고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산속에서 듣는 반야심경에 몸과 마음이 밝아지는 듯 했다. 화산에 묻힌 소금은 불로부터 화엄사를 지켜 줄 것이다. 화산에서 낭송된 반야심경은 지리산으로 들어오는 뭇 생명들이 평화롭게 숨 쉬게 보살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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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들은 화산에 소금을 묻은 후 합장하고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화산을 오르던 내내 나던 열은 산을 내려와서도 한 동안 계속되었다. 화산의 기운이 나에 이르러 다른 곳으로 흐르지 못한 이유가 뭘까? 내 안의 고집과 어리석음이 화의 기운을 잡아둔 것이리라. 화산에 올라 소금을 묻으며 불로부터 지리산과 화엄사를 지켜달라는 서원을 모았던 단오 날, 화엄사 마당엔 보리수나무가 꽃을 피웠고, 꽃 향에 취한 벌들은 윙윙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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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수나무 꽃

 

지난 주말 화엄사 선방에서 안거 중인 연관 스님을 뵈었다. 연관 스님은 화산은 불꽃모양의 봉우리로, 모든 절에 화산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해인사의 경우는 남산제일봉이 화산인데 불꽃 모양이라고. 연관 스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 화엄사 각황전에 서서 앞산을 보니, 화엄사의 화산은 뾰족이 하늘로 오르는 불꽃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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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황전 앞에서 본 화엄사의 화산

 

연관스님은 절 주변에 동백나무를 심는 것도 화재로부터 절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지 않겠냐고 했다. 동백나무가 불땀이 좋지 못하여 땔감이 귀하던 섬에서도 베어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스님 말씀에 100% 동의했다. 동백나무로 유명한 선운사나 화엄사 각황전 뒷산에 동백나무가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였을까! 그렇다면 동백나무 숲은 절 안에서 시작된 불이 숲으로 번지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숲에서 시작된 불이 절로 번지는 것을 막는 훌륭한 방화림이다.

 

해마다 단오 때면 화산에 올라 소금을 묻는 화엄사 스님들처럼 옛 어르신들도 단오 때면 단오선(端午扇)이라는 부채를 선물하고, 창포(菖蒲)로 만든 창포주를 마시거나 창포물에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올해, 가장 뜨거운 단오를 지낸 나는 내년 단오엔 이웃들과 부채를 나누며 편안한 마음으로 충만한 양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

 

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 사진_ 허명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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