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니 아빠가 변했다!!! 태평육아

8f0f7f363d500de211c7e4e0bef4e9e8.나는 이기적이고, 한 성질 한다. 다혈질에 호불호가 분명하고, 업앤다운이 좀 있다. 이미 혼인 시장에서는 노처녀로 분류되었을 때도 친정 엄마는 한 번도 결혼에 대해 압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괜히 남의 집 귀한 아들 고생시킬까 봐!!!’였다. 그런데, 내 주위에서 뭣 모르고 어영부영 하던 남편이 얻어 걸렸다.^^



엄마는 “니 성격을 받아주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천사!”라고 했고, 살아보니 남편은 짝퉁일지언정 천사라는 A급 브랜드를 달만 했다. 지랄 맞은 나랑 살면서도 남편은 화를 낸 적도, 큰 소리를 낸 적도 없다. 어떤 일에도 일희일비 하지 않고, 업앤다운 없이 편한 성격이다.(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한번 화 내면 무섭다고 겁을 준다. 아직 때가 안 온 걸까? 흐흐흐) 그런 성격은 미치고 팔짝 뛸 일이 많은 육아에서 빛이 났다. 신생아 때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밤낮 없이 울어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내고, 안아달라고 보채면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안아주었다. 나는 그렇게 못하니, 자연스럽게 육아는 아빠 몫이 되어 갔다. 다른 건 몰라도 젖을 물릴 땐 재우는 건 내 몫이었는데, 이제 젖도 끊어지니 잘 때도 아빠에게 딱! 붙어서 잔다.



6506ad912980c64d611ec02fcf32a549.나는 이런 남편이 육아와 살림에 재능이 있다고 치켜세웠고, 남편도 그런 흑심(!) 가득한 칭찬을 싫어하지 않았다.그리고 육아휴직, 또는 아예 전업주부가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특히 같은 엄마들은)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는 우리 딸을 보고 ‘효녀’라고 했고, 나도 그런 딸에게 모성애보다는 무한한 동지애를 느끼곤 했다. ‘징징’거리거나 떼를 쓸때 ‘아빠한테 가봐!’라는 한 마디면 만사 오케이였다. 남편은 신기하게 아이의 요구나 불편을 알아내 해결해 주었다.(일례로 이가 나느라 아파하는 걸 먼저 알아채고, 최근엔 토마토 껍질이 입 천장에 붙어 '낑낑'거리는 걸 보며 그걸 빼내주었다. 나는 절대 몰랐음-.-;;;) 특히 나는 아기가 울면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은데, 남편의 귀는 신기하게 잘 참아냈다. 불혹의 나이는 아직 멀었는데, 흔들림 없는 불혹의 정신은 높이 사줄만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요즘 남편의 입에서 슬슬 한숨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아기 목욕시키고, 책 읽어주다 재우고 나면, 大자로 뻗어서 ‘아이고…’, ‘휴우~’ 톤다운된 한숨 메들리가  흘러나오곤 한다. 그런데 남편이 육아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 시점이 하필 여름이라는 것이 문제다. 여름은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에게 쥐약이다. 안 그래도 가만 앉아있어도 더워죽겠는데, 요 껌딱지 같은 딸내미가 와서 달라붙으니 남편이 사정이 딱하다. 특히 밤에 문제다. 남편이 딸내미를 재워놓고 슬그머니 빠져 나와 자리를 옮기면 어느 샌가 알아채고 따라와 딱 붙는다. 그제 밤에는 방이 덥고 답답해서 슬그머니 거실로 나갔다고 한다. (나는 상황파악 못하고 쿨쿨^^) 소파에서 겨우 잠들었는데, 딸내미가 귀신 같이 따라 나와서 소파 위로 올라오더라는 거다. 이쯤하면 TV에서 기어나온 '링'의 귀신보다 더 무서웠을 듯^^.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와보니 둘이서 대충 엉겨서 자고 있었다. 남편이 아직 꿈나라인 딸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깊은 한숨에는 딸바보로만 살았던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이제 손발 다 들었다는 포기,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묻어있었다. 



대표 딸바보였던 남편, 지랄 맞은 내 성격도 참아냈던 남편이 점점 변해간다. 딸에게 딱 붙어서 충전하는 듯 했던 남편이 이제 좀 떼어달라고 나에게 SOS를 보내는 날도 있다.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며 아기를 달래고 어르던 남편의 입에서 자조적인 한숨 메들리 뿐만 아니라 치근거리는 딸에게 목소리를 내리깔고 경고성 멘트도 날리기 시작했다. 해도 별도 따다준다더니 하루 아침에 변심한 연인의 이별 통보를 받은 심정이 그럴까? 변심한 아빠를 보고 금방 울음이 터질락말락 울긋불긋, 표정이 아주 복잡미묘하다.(사실 아주 볼 만 했다.^^)



24a3c1267a98be63641d48778bfeadae.‘애 볼래? 밭 맬래?’ 하면 ‘밭 맨다’는 말이 있는데, 새로운 속담 하나 추가다. ‘육아에 장사 없다!’. 특히 혼자 하는 육아는 정말 답이 없다. 엄마, 아빠, 할머니, 도우미...누가 됐든 한 명이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 누구라도 힘들  수 밖에 없다. 태초에 육아는 여러 사람이 같이 나눠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인류사를 보더라도 육아는 공동체 안에서 여럿이 하던 것이었다. 가끔 친정엄마가 옛날에는 애들을 몇 명씩 낳아 키웠는데, 기껏 아이 하나 키우면서 엄살이냐고 타박을 주지만, 옛날과 요즘은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옛날에 내가 자랄 때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며 공동체 안에서 자랐지, 엄마 손에서만 크지 않았다. 그때는 오히려 농구팀, 축구팀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공동체, 마을, 사회안전망도 무너진 요즘은 곡예 수준의 높은 희생 또는 자본을 요구한다. 



요즘 부쩍 피로감을 호소하는 남편을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더위 타는 남편에게 에어컨은 못 사줄 망정, 요~ 껌딱지라도 떼어주는 게 맞다. 그게 육아공동체라는 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인 우리집 창건(!) 취지에 맞다. 그나저나, 저렇게 강력한 부녀인력(引力)을 형성하고 달라붙는 껌딱지를 어떻게 떼어내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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