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없는 장난놀이, 그것도 4D 버전 태평육아

“하루 종일 뭐하고 노세요?” 얼마 전에 생협 마을모임에서 같은 또래 아기를 키우는 엄마에게서 받은 질문이다. “네?... 글쎄요...그냥 특별한 건 없는데요...;;”



be58eeb5f8c60cc0b838f4819e13ed38.생각해보니 따로 놀아본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냥 생활이 놀이요, 놀이가 생활이랄까? 그 엄마와 더 이야기를 해보니 요즘 뭘 하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서, 아예 놀이 프로그램을 등록했다고 했다. 아... 바야흐로 ‘돈 주고 놀이를 배워야하는 세상이 도래했구나!’ 싶었다. 이른바, 영유아대상 사교육 시장이다. (내가 원래 좀 늦다) 옛날에는 형제들끼리, 혹은 동네에서 다 해결되던 것인데... 마을이 없어졌다는 생생한 방증이기도 했다.



영유아 놀이 프로그램들이 내거는 건 오감발달, 창의력, 두뇌 개발 등이다. 돈이 없어서도 못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도 글쎄요...다(안 해봤으니 여우와 신포도 심보일 수 있음^^). 설사 두뇌와 창의력, 감수성 등 개발된다고 해도, 벌써부터 사교육 시장에 진입할 생각이 없다. 대신, 가난한 엄마로서 돈 안 들이고 맘껏 해줄 수 있는 단 하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선사하자는 게 내 생각이다. (눈치채셨다시피 어느 책 제목 카피했음)



b327a83d448292ad67916d21059be43e.나는 어느 정도의 결핍이 아이를 궁리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런 개똥 철학을 근거로 여기저기서 하나씩 얻은 장난감들은 좀 있지만, 장난감을 사주지는 않는다.(사람 일은 모르니 ‘아직은...’이라는 꼬리말 추가^^) 내가 아이를 위해 해주는 일은 아이의 행동반경, 손이 닿는 지점(호모 파브르가 되면서 수위상승 중.^^) 아래에 있는 위험한 것들을 죄다 높은 곳으로 이주시키고, 집 통째를 아이에게 내주는 일이다. 그러면 아기는 집안 구석구석을 쏘다니며 온갖 잡동사니를 모조리 끄집어내며 놀거리를 찾아다닌다. 마치 굶주린 하이애나처럼...ㅋㅋㅋ 장난이 아니라 그 눈빛은 가끔은 비장하고, 순간순간 반짝반짝 빛난다(물론 더러는 심심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 모든 행위를 조금 고상하게 포장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탐구하고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정!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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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은 아이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지만, 장난감이 없으면 자기가 스스로 기획할 수밖에 없다. 셀프서비스를 위해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쥐어짜내야하니, 창의적이지 않을래야 창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최고의 창의력 교육!) 그 대신 집은 창의력의 발현, 실험정신 충만으로 엉망진창, 한마디로 개판!!!이 된다(위에 사진은 평소에 비하면 양반중 양반^^). 온갖 책과 살림살이들이 그야말로 무질서와 혼돈! 그 자체다. 그 꼴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푹푹 나온다. 매번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치울 수도 없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만 청소하는 것에 만족하고, 나머지는 그냥 혼돈과(+먼지) 속에서 산다. 가끔 심란한 생각이 들면, 주문을 외고, 기도도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여기서 유아->唯我X, 幼兒O)! 이 유희의 인간을 사랑하게 하옵소서~(날라리 교인이라 기도발이 영~안 먹혀서 그런지, 그래도 한숨은 나온다만...ㅋㅋ^^)



96ed0c87a4df476cbb82ffac66e860f7.그렇다고 내가 장난감은 무조건 나쁘다, 장난감은 필요없다는 식의 장난감 무용론자는 아니다. 장난감은 아이들 놀이의 매개체로서 훌륭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새 걸 사주지만 않았을 뿐, 만들어도 주고(한 두번이 고작이지만...), 누가 쓰던 걸 물려주면 무조건 쌩유베리 감사해한다. 단, 장난감은 장난감일 뿐, 그 자체가 놀이일 수는 없다는 거다. 장난감을 가지고 누구와, 어떻게 노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한참 불타는 열애 중인 연인들을 보라! 선물, 커피, 영화, 여행은 수단일 뿐, 서로 좋을 땐 손가락만 빨고 살아도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아님, 불타지 않는 권태기^^). 요컨대, 상호작용 없는 장난감은 앙꼬 없는 찐빵, 아니 그보다 못하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더러 뭐가 부족해서...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가 자랄 때보다 풍족한 시대에서 자란다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넘치는 물질의 풍요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가지고 놀 ‘도구’를 넘어 ‘소유’의 대상으로 장난감을 탐닉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풍족한 것은 장난감과 인스턴트 음식, 그리고 사교육뿐이라는 말도 있다. 오호...통재라~



b6076c824744881778bc844703181f92.엄마는 손녀딸이 두 돌이 지나고 말을 하려고 하자, ‘뭘 시킬 때가 되지 않았냐’고 한다. (자유방임육아의 종결자 우리 엄마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이야...) 아마 다른 할머니들로부터 뭔가 듣고 하는 소린 거 같다. ‘난 엄마처럼 키울거야’라고 하면, ‘그때랑 다르지, 그땐 어려워서 뭘 제대로 못 시킨 거고...’ 제대로 뭔가 못해준 것 같은 자책감 같은 게 묻어난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가난했지만, 제대로 된 장난감 하나 없었지만, 내 어린 시절이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로웠는지 말이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함께 놀 궁리를 하며 산으로 들로, 시장과 골목을 들락날락거리던 그때가 한 때 인정 좀 받았던(자뻑...쏘리^^), 내 상상력과 창의력, 무엇보다 행복의 근원이라는 걸 엄마는 모른다. 좀 부족한 게 좋은 거다. 과유불급! Less is More! (오... 문자, 영어 동원)  그래야 진정한 토이스토리가 온다. 그것도 4D 버전으로다....실전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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