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대충, 적당히, 태평육아법 태평육아

df2fa74e7b1d3bc6f930c6c12dfa3a35.좋아하던 직장 선배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을 하겠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인간적이고 자상하면서 섬세했던 선배와 허물 없이 지냈고, 이 선배 때문에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사표를 던지자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리고는 정말로 뒤도 안 돌아보고 진부령으로 산골로 들어가버렸다. 부인이 시골 보건소 소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생긴 일이었다.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선배였기에, 그가 어떤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됐다. 그런데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간 양반이 영 엉뚱한(?) 짓(!!!)만 하고 있었다. 하긴 씨는 열심히 뿌리고 있었다. 농사짓겠다고 얻어놓은 밭은 놀리고, 엉뚱한(!!!) 곳에... 그렇게 첫째 낳고 슬슬 농사를 시작한다더니 지금까지 내리 삼남매를 낳고 자식농사만 짓고 있다.



‘자식농사도 농사’라는 말이 있다. 농사에는 때가 있고, 때마다 해야할 일이 있다. 그러고보니 농사와 자식농사가 정말 닮은 게 많다. 농사라고 하기도 우습지만,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농사에 대해서도 한 수 배운다. 한창 아이가 커갈 때라 그런지, 새록새록 밭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이 문득문득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준다. 가끔 뒤통수 때리는 돈오!의 경지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



e4ebb15d22a50789eaf5c20607519909.“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농부들이 자주 가는 논밭 농사가 더 잘된다고 한다. 실제로 한 가운데 벼보다 논두렁 가까이 있는 벼들이 더 크다는 거다.  이걸 잘못 들어서 헬리콥터맘인지 매니저맘인지가 되라는 말로 들으면 큰 오해다.  여기서 발소리는 그냥 왔다가는 발소리다. 내가 여기에 있다,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알리는 발소리다. 뭘 어쩌란  말이 아니다. 자꾸 손 대고, 빨리 크게 자라도록 비료 뿌리고, 벌레, 잡초 죽이려고 농약 치다가는 지금 당장은 잘 자라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토양 자체를 망치게 된다. 이 말은 자식농사에 큰 힌트를 준다. 많은 인위적인 개입과 물질적인 투입보다는 스스로 잘 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기다리는 힘이 작물이든 자식이든 잘 자라게 만든다.



 “꼼꼼하게 1번 보다는 설렁설렁 2번이 낫다”



농사를 지을 때 시간과 힘을 많이 들이는 부분이 김 매기다. 처음에 밭일을 할 땐 그랬다. 성격대로 죽기살기로 밭을 맸다. 그랬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거 같은 게 딱 죽겠는 거다.



06230121f5b41b6e9d8463e0f8de5bdf.그때 농부스승님 가라사대, 밭 맬 때는 “꼼꼼하게 1번 보다는 설렁설렁 2번이 낫고, 설렁설렁 2번 보다는 놀멍쉬멍 3번이 낫다”고 하셨다. 아, 그런 거구나! 왜냐? 김매기는 끝이 없다. 특히 요즘처럼 장마 지나가면 몇날 며칠을 해도 끝이 안난다.  끝이 없는 일을 한꺼번에 완벽하게 하려고 들었다가는 들것에 실려나가기 딱 좋다.



자식농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잘 키워보겠다고 와락 달려들었다가 어느 순간 지긋지긋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매기도 끝이 없다지만, 자식농사만하려고...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 농사든 자식농사든 놀멍 쉬멍 즐기며 해야 길게 오래갈 수 있는 것 같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 거다.”



한참 농사에 썰(^^)을 푸시던 농사 스승님이 물었다.



“농사는 누가 짓죠?”



"네?"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겁니다.”



선문답 같지만, 너무나 사실이다. 농부가 아무리 애를 써도 농사가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결국 하늘이 도와야 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땅은 정직하니까 성심성의껏 농사를 지으면 어떤 결과든 결과는 꼭 있다. 그러나 어떤 결과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만큼 했으니까 이만큼 얻겠다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농사 중에 가장 힘든 농사가 자식농사라는 말처럼 어차피 내 맘대로 안 된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며 아이를 키웠다간 큰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투입을 적게 하자는 주의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너무 많은 투입을 하면 어느 순간 기대를 하게 될 수 밖에 없으니까. 예를 들어 친구한테 몇번 밥을 샀는데, 친구가 한번도 밥을 안 산다고 생각해보라. 처음엔 호의로 선물을 주고 도움을 줬는데, 상대방이 몰라준다고 생각해보라. 친구가 아니라 어느 순간 원수지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투입(투자)을 적게(적당히) 하면 기대가 자연히 적어질 거고, 그러면 서로 욕심과 기대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명언과 지혜가 너무나 많다.  콩은 왜 세 알씩 심는지, 농사를 지으면 왜 철이 드는지, 가을엔 가난한 친정보다 왜 밭에 가면 좋은지 자연히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지혜들이 아이를 키울 때 큰 지혜가 되어준다. 자연만한 스승이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지금까지 내 결론은 태평농법이다. 적당히 밭에 가고, 적당히 김 매주고, 적당히 잘 자라면 그게 최고다. 크게 키우겠다고, 잘 키우겠다고 달려들다가는 오히려 농사를 망칠 수 있다. 크게 잘 키워서 장에서 좋은 값 받을 생각 없다. 작년에 배추값이 금값일 때 배추 좀 잘 키워보겠다고 매주 풀 뽑아주고, 웃거름 주던 내 배추보다 그냥 심기만 하고 한두 번만 와서 보고 갔던 내 친구의 배추가 훨씬 실하고 컸었다. 기를 쓰고 달려들지 말자!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 절대 희생하지 말자! 대충대충, 적당히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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