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위로 태평육아

일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더블딥’에 빠졌다. 두통이 좀 있었다가 괜찮아 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아주 총체적 난국이다. 성질 더러운 나랑 사는 남편이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집안에 워치콘 3단계에 준하는 긴장이 느껴졌다. 평소 고봉밥을 먹는데, 밥 그릇부터 푹 꺼졌다.(그래도 굶지는 않는다!) 밥을 제대로 안 먹으니, 기운이 없고, 몸이 허술하니 잡생각이 창궐한다. 몸의 효율이 떨어지니, 일의 효율도 급하강이다. 반나절이면 끝낼 일을 며칠째 달고 다니고 있고, ‘일찍 일어나서 해야지’하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악순환이다.



발단은 ‘그날(!)’이었다. 이팔청춘의 곱도 지났는데, ‘그날’ 즈음해서는 얼굴에 여드름부터 올라온다. 뭐 사춘기도 아니고 얼굴 사정까지는 챙길 여력이 없어서 여드름은 패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손발 다 들었다. 출산 전에는 한 번도 '오버나이트'를 써보지 않았다. 지금은 '오버나이트'로도 감당이 잘 안 될 정도로 차고 넘친다. 옷을 버리기는 여러 번이고, 매일 밤 이불 빨래를 만들어놓으니 아침마다 아주 짜증 제대로다.



안 그래도 빈혈 증세가 있었는데, 그렇게 쏟아내니 ‘피가 부족해~’라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출산 전부터 빈혈 기미가 좀 있었다. 게다가 나는 구토 증상 때문에 임신 전후로 철분제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작년에도 빈혈이 있어서 보약을 지어 먹고 괜찮아졌었는데, 작년에 왔던 빈혈이 죽지도 않고 또 온 거다.



‘허무와 좌절’ 시리즈도 기다리고 있었다. 상당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긍정적으로 진행되던 출판 일이 잘 안 되었다. 사실 나는 생각도 없었는데, 오래 전부터 여러 군데서 바람을 넣었다. 한동안 쉬고 있던 두뇌를 가동시켰다. 그런데 서로 다른 생각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러 번의 만남 끝에 철학과 뜻이 맞는 출판사를 만났다. 그 사실만으로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쪽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오히려 오랜 기간 애를 썼던 편집자를 걱정하며, ‘저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라고 쿨한 척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돌아서니 뭔지 모를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 거다. 흑흑



f0630e82178bf3bd6f06f1f5890e5bcf.또 하나의 ‘허무와 좌절’은 아낌 없이 주기만 하던 텃밭에서 왔다. 8월 말에 심어놓은 배추 모종의 생존율이 10% 밖에 안 된다. 워낙 가물어서 하늘도 도와주지 않았고, 배고픈 동물과 벌레들도 가세했다. 심어놓으면 죽고, 심어놓으면 뚝 끊어져 있고... 정말로 '지못미'다. 그래도 어쩌나, 다시 모종을 심는다. 어마어마한 투입대비 어마어마하게 초라한 산출로 ‘허무와 좌절’시리즈의 최고봉이다. 이러다 김장은커녕 종가집(김치) 신세 지는 거 아니냐?는 말이 오고간다. 흑흑흑;;;



마지막으로 명절 증후군(?)도 두렵다. 지금은 초월했지만, 그래도 명절 즈음해서 나는 작아진다. 한마디로 나는 시댁에서 반기지 않는 며느리였다. 이해도, 양보도, 극복도 쉽지 않은 종교문제다. 양가의 의사와 상관 없이 임신하고 우리끼리 살림까지 차렸으니 시댁에서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 우리를 받아들였지만, 아직도 만나면 서로 편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처음 시댁에 갔을 때가 추석이었다. 그날 밤 나는 밤새 훌쩍 훌쩍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었다. 누가 뭐라고 구박한 것도 아니고, 대놓고 뭐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 어색하고 생경한 느낌이 너무 힘들었다. 집에서는 물론 나가서도 늘 과분한 사랑을 받았으면 받았지, 밉상인 적은 별로 없었던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렇게 대접도 못 받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슬펐다.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 혼자서만 겉도는 주변인으로서의 느낌이 참 싫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친정 엄마는 ‘누가 어떻게 하든 내 할 도리는 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때가 되면 하는 시늉은 한다. 지금은 많이 편해졌는데도 추석 때만 되면 쓸데없이 그 서러움이 밀려온다.



04a1028db0510c78fa1ffd4cb6b47ef5.이런 이런 이유로 만사가 귀찮고, 손발도 꼼짝 하기가 싫었다. 뭔지 모를 답답하고 허무함, 무기력증이 쓰나미로 밀려오니 맷집이 좋은 나도 휘청거린다. 내 상태가 이러니 아이가 와서 매달리는 것도 썩 반갑지가 않다. 이제 명사에서 동사 위주로 구사하기 시작한 아이의 말도, 요청도 다 귀찮았다. 그런데 아이는 더 매달렸고, 더 많은 요청과 반응을 원했다. 엄마가 자기를 밀어낸다고 생각하니 본능적으로 더 매달리는 거다.



어제도 멍 때리고 앉아 있는데, 아이가 달려와 정말 애절한 눈빛으로 ‘엄마, 안아죠!’ 라고 말하면 팔을 벌렸다. 몸은 안 따라주었지만, 거절할 수가 없어서 아이를 안았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내가 건성이라는 걸 알고 ‘다시, 안아죠!’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 ‘꽈악~’ 안아주었다. 그 순간, 진통제라도 먹은 듯 몸이 '부웅~'하고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아이의 품을 더 파고 들었다. 안아줬다기보다 내가 세 살 짜리에게 안긴 꼴이었다. 뭘 알기라도 하는 듯이 아이가 내 등 뒤로 넘어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그냥 나만을 위한 맞춤 위로였다. 생명을 안고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뜨거움이 전혀졌다.  왜 아이를 귀찮아만 하고 위로를 청할 생각은 못했을까? 어려도 다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안아주지만 말고, 아이에게 안겨보자. 너무 힘들면 아이에게 위로를 청하자.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지금 그렇게 충전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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