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적재산권 침해국 오명 쓸 위기

미 정부, 한국 국방부 집중 감시 돌입
국방부-MS 양자 간 분쟁에 AMCHAM, USTR까지 관심가져 

국방부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양자 간의 분쟁에 불과했던 사안이 확산될 조짐이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 대표가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국제지적재산권연맹(IIPA)이 미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국방부를 거론하고 있다. 당초 언론 보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MS까지 앞으로 언론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방부는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는 데는 국방부가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측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 것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동규 기자 ppankku@gmail.com   


2012년 6월 중순경 미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MS 한국지사장을 불러 국방부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 분쟁을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린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당시 <디펜스21+>는 주한미대사관 공보실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가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낸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MS측도 “확인해줄 수 없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이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이유는 당시 국방부-MS 간의 지적재산권 분쟁이 한미FTA와 관련되는 바람에 투자자소송제도(ISD)가 거론되는 등 이상기류가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FTA에 대한 한국 측 국민감정이 곱지 않은 탓에 MS는 줄곧 해당 분쟁이 한미FTA와는 관계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총대 메는 첫 번째 타자가 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13일 국방부가 국내 IT전문 언론 『전자신문』과 진행한 인터뷰로 인해 국면이 급격히 전환되기 시작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국방부가 MS가 제시한 연간 130억 원 규모의 소프트웨어 사용권 정부계약(GA, Government Agreement)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GA는 MS와 정부기관이 협의를 통해 일정규모의 금액을 지불하기로 합의하면 최신 소프트웨어를 컴퓨터 대수에 맞게 구입하지 않아도 일정 물량을 제공하는 사용권 계약이다. 

13일자 <전자신문> 1면에 실린 ‘MS 잇단 공세에 국방부 ‘카운터펀치’’ 제하 기사에 따르면 나형두 국방부 정보체계통합담당관은 “클라이언트 접속 라이선스(CAL) 비용은 계약상의 문제일 뿐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과 관계없다”, “계약에 문제가 있다면 MS와 계약한 IT서비스 기업과 논의할 사항”이라며 마치 MS와 더 이상 협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들리는 발언을 했다. 이로 인해 협상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여기고 있는 MS관계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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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자국 기업 보호 위해 움직이기 시작

MS의 한 관계자는 “북핵 때문에 국방부에 비상이 걸린 탓에 면담 일정도 미뤘는데 그 시간에 국방부 담당자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며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언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의 폭발력은 단순히 MS를 당황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국방부와 MS의 협상과정을 지켜봐 오던 미국 정부도 더 이상 뒤에서 방관하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인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 에이미 잭슨 대표도 MS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잭슨 대표는 김광우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등 국방부 지휘부를 직접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려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한다. 잭슨 대표는 조만간 AMCHAM 대표 자격으로 박근혜 당선인도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에이미 잭슨 대표는 지난 2월 6일 영자일간지 『코리아타임즈』에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여기서 잭슨 대표는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일부 정부기관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눈감아주는 것은 정부가 추진 중인 정보기술 혁신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잭슨 대표가 지적재산권을 언급한 이유는 현재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자국 소프트웨어 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 2월 8일 국제지적재산권연맹(IIPA)이 미 무역 대표부 USTR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한국 정부 사례를 직접 언급하며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 내 지적재산권 관련 7개 협회가 모여 만든 지적재산권 보호연합인 IIPA는 ‘2013년 스페셜 301조 검토’ 자료에서 한국의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 문제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했다. 스페셜 301조는 미국이 무역 상대국과의 관계에서 자국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특별조항이다. 상대국이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되면 우선협상대상국(PFC)이나 우선감시대상국(PWL) 또는 감시대상국(WL)으로 지정해 협상을 벌이거나 보복조치를 할 수 있다. 보복조치는 특정품목 수입제한, 높은 관세 적용 등이다. 한국은 오랜 기간 우선감시대상국과 감시대상국으로 번갈아가며 지정됐으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연속 감시대상국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이번 스페셜 301조 보고서에서 국방부 등 정부기관의 지적재산권 침해가 거론된 탓에 다시 감시대상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IIPA가 제출한 보고서가 USTR이 감시국을 지정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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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지적재산권연맹(IIPA)이 USTR에 제출한 2013년 스페셜301조 검토 보고서의 일부

 

부끄러운 감시대상국으로 돌아가나

IIPA는 이번 보고서에서 감시국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의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 문제도 심각하다며 한국을 예로 들었다. 한국은 한미FTA에 따라 정부기관이 정품 소프트웨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약속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부기관의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척이 없어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고 표현되고 있다. IIPA는 또한 특정 정부기관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획득 규모가 실제 조직 규모에 비해 현저하게 작고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또 관련 감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아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고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산 확보도 실패했다고 적고 있다. 미국 업계가 국방부와 같은 개별 정부기관과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공적인 결과에 이르지 못 하고 있다고도 지적하며 정부기관 중 국방부를 유일하게 언급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IIPA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지적재산권 문제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미국 정부와도 긴밀하게 협조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말은 국방부로 대표되는 한국 정부기관이 지적재산권 문제를 적법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스페셜 301조에 따라 감시대상국으로 다시 지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AMCHAM과 USTR까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탓에 국방부는 언론 인터뷰 발언처럼 MS의 요구를 무시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MS에 마지막으로 대응한 자료를 보면 과연 국방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 몇 군데에서 발견된다. 국방부는 지난 2월 7일 작년 12월경 MS가 보낸 라이선스 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회신했다.

온라인 게임 오토봇 판례 들고 나온 국방부 

답변서에서 국방부는 여전히 서버접속권인 CAL이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와는 관련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 근거로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판결한 사례를 들었다. 그러나 이 재판 내용은 서버 접속권과 관련이 없는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오토봇’에 관한 것이었다. 피고 MDY사는 원고 블리자드사가 개발한 게임 WOW에서 사람이 따로 조작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괴물을 사냥할 수 있는 오토봇 소프트웨어를 제작해 판매했다가 송사에 휘말렸다. 이 재판의 쟁점은 라이선스 약관상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 오토봇에 대해 계약법을 적용해 라이선스 위반을 저작권 위반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미 연방항소법원은 최종적으로 라이선스 위반을 저작권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결했지만 온라인 게임용 오토봇과 서버접속권 위반을 같은 선상에서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MS측 관계자는 “아무리 찾아도 판례가 없어 그나마 찾아낸 게 그 재판일 것”이라며 “MS가 CAL 때문에 법정까지 간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없다”고 주장했다. MS측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MS가 CAL 구매를 요구한 정부기관은 대부분 GA를 맺거나 적정 수준을 구입했다.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외교통상부, 대법원 등은 MS의 요구에 협상을 벌여 적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으며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도 계약을 맺어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만 협상을 거부하며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눈에 불을 켠 지금 국방부가 언제까지 이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방부는 또한 『전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자신들이 라이선스 계약 담당자가 아니기 때문에 MS가 시스템통합(SI) 업체들과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업체들은 시스템만 구축해줬을 뿐 소프트웨어 최종 사용자가 국방부라는 점이 명확한 이상 이러한 주장이 AMCHAM이나 USTR에도 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차기 정부에 짐으로 남은 지적재산권 분쟁

AMCHAM에 USTR까지 나선 현 시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ITC까지 지적재산권 문제에 뛰어들어야 할 상황이란 것이다. 론 커크 USTR 대표는 지난 1월 30일 ITC에 한미FTA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3월 15일 발효된 한미FTA가 지금까지 미국 중소기업에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 줬는지, 한국에서 겪는 문제점에는 어떤 유형이 있는지 등을 분석해 미국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누리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조사 목표라고 한다. 조사 범위는 상품,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 거의 모든 분야로 ITC는 5월 1일까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렇게 미국 정부가 전방위로 지적재산권 문제 해결에 나서는 지금 가장 골치 아프게 된 건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전 정부가 해결 못하고 간 미국과의 지적재산권 문제를 풀어야할 처지에 놓였다. 현재 국방부에서 MS 문제를 대응하던 담당자들이 속속 교체될 시점도 다가오고 있다. 3월까지 자리를 떠날 예정인 이용걸 국방차관, 김광우 기획조정실장, 유철희 정보화기획관 등이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나가면 다음 담당자들이 고스란히 해결의 책임을 뒤집어써야 할 판이다.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정부가 사태를 여기까지 악화시킨 국방부의 대응을 적절한 것으로 평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경 국방부-MS 간 분쟁을 모델로 CAL에 관한 설명과 업체의 문제제기 시 대응방안 등을 담은 책자를 발간해 정부기관에 배포할 예정이다. 만약 각 정부기관이 국방부 방식으로 지적재산권 분쟁에 대응하면 한국이 스페셜 301조에 따른 감시대상국이 될 확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국방부도 『전자신문』 보도 이후 상황이 급변하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듯하다. 국방부는 해당 기사가 나간 후 MS가 언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자 “기사가 나간 것은 고의가 아닌 우발적 사고”라며 MS에 자중을 요구했다. 그러나 MS 측은 “보도가 나간 후 빗발치는 언론의 사실관계 확인 요구를 묵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상황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까지 협상의 주도권을 잡고 MS를 휘둘러온 국방부는 무리한 언론플레이와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곤경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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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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