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미국’, 동아시아의 ‘미국’ 그리고 한국의 5년

‘오바마의 ‘미국’, 동아시아의 ‘미국’ 그리고 한국의 5년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 행정대학원 부원장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그는 정확히 4년 전 전쟁과 경제위기에 지쳐있는 미국에서 “담대한 도전”이라는 모토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대통령으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발목을 8년간 잡았던 이슈는 대테러전이었다. 그 뒤를 잇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 4년은 대테러전과 함께 미국의 경제회복이 가장 큰 이슈였다. 그리고 경제회복은 선거에서의 약속처럼 오바마가 향후 4년 동안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의 과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공직 선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재선 대통령 오바마는 앞으로 자신의 정치적 비전이 실현된 미국, 즉 “오바마의 미국”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4년 전 미국 국민들은 오바마 당선을 미국에서 “담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이제 담대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지쳐가는 듯한 패권국 미국에 대한 과감한 처방을 내려야 할 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 임무의 시작은 “경제 회생의 원칙”하에 “경제 개혁의 논리”를 개발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미국”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심각하고 고질적인 경제병과 정치병에 걸려있다. 1930년 미국의 대공황시기 GDP 대비 미국의 총부채 비율(정부, 기업, 가계포함)은 약 310%였다. 그러나 2010년 미국의 총부채 비율은 대공황보다 많은 369.7%였다. 이중 정부 부채는 GDP 대비 96% 이르렀으며, 2011년 말에는 102%(15조 4,76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2011년 미국 연방 정부가 지출한 예산의 40%가 국채발행을 통해 해외로부터 충당한 자금이었다. 이런 식으로 발행되는 미국 정부의 국채는 국내외 시장에서 인기가 있을 리 없다. 정부 부채의 지속적인 증가는 재정의 화폐화(Monetization)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정부 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그 규모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국가 신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국내외의 국채 투자자들이 줄어들게 되며, 중앙은행은 재정확보를 위한 통화 발행을 통해 정부 채권을 직접 매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2011년 미국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61%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FRB)에서 사들였다. 미국 재정의 화폐화는 사실상 양적완화 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달러의 하락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가 가지는 패권적 지위 상실의 시작이라는 우려를 야기시킨다. 지난 6월에는 스텐더드 앤드 푸어스(S&P), 무디스 그리고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 회사들이 잇따라 미국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경고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고질적인 경제병을 외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바로 재정절벽이다. 재정절벽이란 정부가 재정지출을 급격히 축소하고 세수를 증대하여 재정적자를 강제로 낮추는 방법이다. 그러나 재정절벽이 시행될 경우 시장 유동성의 감소, 급격한 실업률의 증가 등 경제전반이 받아야 할 충격이 적지 않다. 근본적인 처방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역수지적자와 재정적자라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jpg

미국의 양당제 정치는 미국 정치의 자랑스러운 브랜드 네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효율적이고 책임소재가 분명한 양당제 정치는 미국을 완전히 대립적으로 양분시켰다. ‘큰 정부인가? 작은 정부인가?’라는 양당의 이념적 기조는 부자증세와 감세, 국민의료보험제와 의료보험민영화, 이민과 반이민 등으로 완전히 갈려 적정선에서의 타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 5년 간 미국 의회에서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의 상정을 막기 위해 385차례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실행하여 성공을 거뒀다. 참고로 385차례의 필리버스터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레이건 행정부의 임기가 끝난 1989년까지 약 70년 동안에 실행된 수와 동일하다. 이러한 의회 내의 극단적 대립은 이번 대선 기간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 온건협상파들이 거의 대부분 낙마하는 결과를 낳았다. 

의회 중도파가 사라진 상황에서 올해 말 대통령 오바마와 의회의 재정절벽을 둔 협상과 타협은 그리 수월하지 않을 것 같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미국 대선 5일 전 온라인판 기사에서 “위대한 국가의 몰락에 대한 기록”에서 “미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희생을 말하지만, 정작 세금을 내고 사회적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등 연대가 필요할 때면 공동체 의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고 미국 사회를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이 근거가 없는 비난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어쩌면 미국이 앓고 있는 정치병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경제병과 함께 고질적인 정치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오바마의 미국은 참으로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다. 

동아시아의 미국

지난 6월 미국은 동아시아로의 귀환(Pivot Back to Asia)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오바마의 미국”이 접할 동아시아의 환경 역시 그야말로 수월하지 않은 상황이다. 귀환한 미국이 접할 동아시아는 미국의 국내 상황만큼이나 오바마의 미국에 더욱 더 많은 도전과 과제들을 제시할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의 미국”은 오히려 냉전시절이 그리울 만큼 복잡한 정치환경과 전략적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 무엇보다도 부상하는 중국과 대면해야 한다. 특히 김정일 사후 정치적으로 불안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북한은 현재까지 정치적 안정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의 개혁개방정책을 시도하면서, 동남아의 인도네시아와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물론 실패하였지만 대륙간 탄도 미사일로 사용될 수 있는 위성발사용 로케트를 발사하기도 하였다. 29세 청년 “김정은의 북한”은 군부의 지지 속에 첫 1년을 그런대로 잘 보낸 것 같다. 따라서 미국은 여전히 거만하고 거친 북한과 대면해야 하며, 비핵화라는 숙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부상 중국과 핵확산중인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게는 한미일 공조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일본과 미국의 한국은 영토와 역사 문제에 대한 합의는 뒤로 하고, 한치의 양보도 없는 지루한 외교적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 이상 침체된 경제 상황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는 한국과의 공조를 더 어렵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 간의 영토 및 역사 분쟁이 심화될수록 역사부분에 있어 유사한 피해자 정체성을 공유하는 중국과 한국의 공조가 강화되는 상황은 미국에게 여간 골치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나 일본 중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의 역할은 다분히 축소 될 수밖에 없다. 어느 하나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미국은 동아시아로의 귀환을 선언했다. 

그러나 험난한 귀환의 길을 지나 그 목적지에 이르면 더욱 강력해진 중국을 마주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연평균 10.2%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GDP의 규모도 지난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1조 4538억 달러에서 7조 3185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세계 2위 경제 국가가 되었다. 1인당 GDP도 1135달러에서 5432달러로 증가하였고 국방비 측면에서도 225억 달러에서 899억 달러로 증가하여 세계 2위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에게 중국은 만만한 국가가 아니며, 중국 역시 미국의 과도한 반중정책을 만만디(慢慢的ㆍ느긋한 행동)하게 도광양회나 논하면서 기다릴 국가가 아니다. 더욱이 시진핑의 중국은 바야흐로 향후 10년 간 미국을 넘어 세계 1위 경제국가로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국제적 지위에 걸맞은 국가 안전과 발전 이익에 부응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게 중국의 부상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사안이며, 미국의 국가적 운명을 좌지우지할 중차대한 사안이 된 것이다. 

PLA&USARMY.jpg

향후 5년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

“오바마의 미국”과 “동아시아의 미국”의 역학이 관통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유일하게 미국과 군사적 동맹, 자유무역 협정을 동시에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는 엄청난 무역의존도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비핵화는 한국이 여전히 풀지 못한 숙명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우리는 대선 국면의 한복판에 서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명운이 좌우 될 5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동학이 우리에게는 비극으로 다가왔던 비운의 역사였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이 그랬고, 일본과 미국의 카츠라 태프트 밀약으로 인한 조선의 식민화도 그랬다. 조선의 해방과 분단도 미소간의 냉전체제 시작과 더불어 얻어맞은 유탄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분단의 고착 역시 냉전사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 

물론 우리 스스로도 실기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한반도의 역사가 또 다시 고전하는 미국의 패권과 부상하는 중국이라는 두 국가의 강대국 정치로 인한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이 더더욱 중요하다. 향후 5년 미국과 중국이 빚어내는 세력전이의 정치는 바로 이곳 동북아시아의 핵심 지역인 한반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로 귀환을 선언하였지만 곳간이 텅 빈 미국은 우리에게 보다 많은 부담을 지울 수 있으며, 반면에 보다 강력해진 중국은 우리에게 더욱 거칠게 다가올 수 있다. 미국은 동맹의 이름으로 방위비 분담금 증강을 요구 할 것이고, 보다 많은 전략 무기를 한국에 팔려고 할 것이며, 글로벌 이슈에 가치 동맹의 이름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할 것이다. 중국은 왜 돈은 우리에게 벌어가고 있으면서 한미 동맹을 통해 우리를 포위 하려고 하는가라고 압박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과 중국은 세력전이의 길목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고 세력을 증대하기 위해 강대국 정치의 마각을 드러낼 5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전략 환경을 유연하게 통찰 할 수 있고 한국의 국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더더욱 절실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미국을 상대로 동맹의 상호호혜성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대통령, 그리고 중국과는 전략적 연계성을 유지하면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중국의 지속적 성장에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는 담대함을 지난 대통령이 필요하다. 동시에 남북간의 평화적 공존과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대선을 30여일 남겨둔 지금 우리들은 지난날 국제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지도자들 때문에 한반도의 운명이 고스란히 강대국 정치의 비극이 되었던 역사적 경험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