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도 할 줄 아는 양보 강 곁에서

자연에 깃든 생명체의 이름을 정확히 구분하여 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민물고기를 구분하는 일입니다. 동료 어류학자를 따라다닌 지 벌써 1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름과 생김새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고작 50종 정도에 머물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열성의 부족함이 첫 번째 이유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채집을 해서 앞에 놓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그게 그것 같기만 하여 돌아서면 잊기 십상이고, 쉽게 접근해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민물고기에 대하여 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피라미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라미를 민물에 사는 작은 물고기의 총칭 정도로 알고 있어 작은 물고기를 만나면 그 생김새와 관계없이 모두 피라미라고 부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피라미는 민물에 사는 다양한 물고기 중의 한 종입니다. 물론 민물에 사는 작은 물고기를 그저 피라미라고 부르게 된 것은 피라미가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하천, 호수, 강을 비롯한 민물에 서식하는 물고기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이 피라미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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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 암컷과 수컷의 모습입니다. 피라미 수컷은 암컷보다 크며, 현재 혼인색을 띠고 있어 체색이 진합니다. <수중촬영 윤순태>

 

그런데 피라미에 버금갈 정도로 개체수가 많은 민물고기가 있습니다. 갈겨니라는 친구입니다. 하천에서 다양한 채집도구를 통해 채집을 해보면 특별한 서식지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피라미와 갈겨니 둘 중 하나가 우점종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 피라미와 갈겨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물고기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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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겨니

 

피라미와 갈겨니는 모두 잉어목 황어아과에 속하는 물고기로서 속(屬)도 같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으로 줄무늬를 들 수가 있습니다.

갈겨니에는 세로 줄무늬가 있습니다. 어류에서 줄무늬의 방향을 말할 때는 머리를 위로 두고 꼬리는 아래에 둔 상태에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진에서처럼 아가미 부근에서 꼬리 바로 앞까지 몸의 중앙을 따라 연속적인 선으로 나타나 있는 갈겨니의 줄무늬는 가로 줄무늬가 아니라 세로 줄무늬가 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피라미에는 가로 줄무늬가 있습니다. 줄무늬가 갈겨니처럼 선으로 나타나는 연속적인 무늬 하나가 아니라 띄엄띄엄 떨어져 여러 개 있는 것이 피라미의 특징입니다. 또한, 갈겨니는 등지느러미 바로 앞쪽에 검은 반점이 있지만 피라미는 이 위치에 반점이 없다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산란 시기는 둘 다 6월에서 7월 중순 사이며, 산란습성은 황어아과에 속하는 물고기들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이들은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고, 모래 위에 주먹 만 한 크기의 자갈이 있는 곳을 산란터로 정합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순식간에 수컷이 접근해 정자를 방사하는데, 수정이 일어난 알들은 서로 엉겨 붙지도 않고 돌에 붙지도 않은 채 곧바로 모래 속으로 미끄러지듯 숨어 들어갑니다. 수족관에서도 산란에 필요한 환경을 잘 만들어주면 산란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분명히 산란이 일어난 것 같은데도 도대체 알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모두 이러한 산란습성 때문입니다. 부화가 일어난 치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모래 속으로 바로 몸을 숨겨 유약한 자신을 지켜냅니다. 이러한 산란습성은 피라미와 갈겨니가 우리의 하천을 대표하는 우점종으로 자리 잡는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라미와 갈겨니가 특별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서식지와 먹이에 대한 특성입니다. 피라미와 갈겨니는 동해로 유입되는 강원도의 하천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체 담수역에서 서식하고 있지습니다. 그러나 갈겨니는 계곡이나 하천의 상류지역에 주로 서식하며 피라미는 하천의 중류지역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먹이에도 차이가 있어 갈겨니는 수서곤충만을 먹이로 삼지만 피라미는 수서곤충 외에 유기물과 식물플랑크톤까지도 먹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갈겨니와 피라미가 서식지를 공유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소화관 내용물의 분석을 통한 식성조사를 해보면 이들이 서식지를 공유할 때 수서곤충, 유기물, 식물성플랑크톤을 모두 먹이로 삼는 피라미는 갈겨니의 유일한 먹이인 수서곤충은 먹지 않고 유기물과 식물성플랑크톤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싸우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피라미가 갈겨니보다 약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양보해도 될 여유가 있는 피라미가 자신의 먹이 일부를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먹이경쟁으로 인한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며 서로 잘 사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특성이 피라미와 갈겨니가 우리의 하천에서 우점종으로 공존할 수 있는 진정한 원동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우리의 살림살이는 몹시 모질고 팍팍해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있는 자는 게다가 더 있게 되고, 없는 자는 없는 그마저 더 없어 지는 세상이라면 한 번쯤 피라미도 할 줄 아는 양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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