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둘째, 어떻게? -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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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상.

예부터 어른들이 즐겨 즐겨 하시던 말씀 하나. ‘같은 부모에게서 나왔는데, 어쩌면 형제, 자매가 이리도 다르냐?’

나도  “자매가 참 다르다.” 이런 말을 꽤나 들었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비교해서 말이다. 결론은 대체로 이랬다. 독립심이나 책임감은 내가 더 있었던 반면 예능적 재질이나 손재주, 인물은 동생이 더 낫다. 성격적으로는 내가 평소 말이 없고 애교가 없는 것에 반해 여동생은 애교도 있고, 사소한 일에도 잘 웃었다. 소소하게 엄마와 가족을 챙기는 건 여동생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와 내동생은 참 정말 달랐고, 지금도 다르다.

 

# 현실.

요즘 내가 여섯 살, 세 살(20개월) 두 딸을 보면서 드는 생각. “어쩌면 자매가 이리도 다르냐?”

외모부터 성격, 성향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것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양볼이 통통한 편이라면, 둘째는 상대적으로 갸름하다.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하고 차분한 큰딸과 달리 둘째는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활발하며 겁이 없다. 낯선 친구들을 만나면 고개도 못들고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는 큰딸과 달리, 둘째는 또래와 잘 어울리는 편이다.

 

 이 얘기는 여기에서 각설하고. 여튼 성향이 다른 두 딸 덕분에 요즘 나는 부쩍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 한 명일 때와 두 명일 때, 아이를 돌보는 일이 차원이 다르다.”고 아이 둘셋을 키운 선배 엄마들의 푸념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둘 양육이 힘든 건 자녀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서가 아니다. 큰아이와 다른 작은아이가 너무도 달라서다. 큰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새로운 육아 경험, 작은아이한테 엄마의 보호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쏠리는 데 따른 중압감, 큰아이한테 갖게 되는 미안함 등 심리적 요인에서부터 육체적인 고통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특히 내 경우엔 성향이 다른 둘째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이유는 첫아이를 너무도 편하게 키운 탓도 있다. 고백하자면 큰딸을 낳았을 때, 난 아이한테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신혼생활을 2년 정도 갖겠다고 했으나 결혼 3개월만에 덜컥 원치않는(?) 임신을 한 탓도 있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도 아이를 키울 준비도 전혀 하지 못한 상태였다. 큰딸이 태어났을 때도, “예쁘다”는 생각보다 ‘앞으로 어떻게 키우지? 이제 내 인생도 끝이네.’라는 절망적인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37살에 딸을 얻은 남편은 나와는 반대였다. ‘수아~ 수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육아는 전적으로 남편이 맡았다. 지금도 남편에겐 오로지 ‘수아’뿐이다. 목욕 시키는 일, 이유식을 먹이는 일을 포함한 육아 대부분을 남편이 직접 했고, 지금도 그렇다. 심지어 당시 남편은 출산휴가 3개월을 끝낸 뒤 복귀하는 내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 내가 육아를 전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지금도 남편과 큰딸 사이는 매우 돈독하다. 큰딸은 아빠부터 찾고, 지금도 아빠가 씻겨주는 걸 더 좋아하며, 아빠와 잠을 잔다.



덕분에 난 큰아이 육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동안 해방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큰딸 역시 부모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차분하게 대화로 말해주면, 받아들이고 고집을 피우거나 떼를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신의 욕구를 들어주지 않더라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장녀 같은 스타일이라고 할까. 어릴 때부터 잠투정도 없었고, 한번 잠들면 환한 불빛이 들어오거나 시끄러워도 아침까지 절대 깨지 않으며, 기저귀도 24개월 즈음에 쉽게 뗐다. 평소에 안아달라고 조르는 편도 아니고, 어느 때부터인가 ‘엄마가 힘들어서 못 안아준다’고 하면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착한 딸이었다.

 

첫째를 키울 때 ‘힘듦’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둘째를 낳겠다고 감히(?) 결심할 수 있었다. 첫째를 키우는 것처럼, 둘째 아이도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육아 비용은 조금 아끼면 될 것이고, 둘째 아이의 육아문제도 남편이 분담해줄 것이고, 같은 부모한테서 나왔으니 성격이나 성향 역시 큰아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은딸의 잠투정은 3개월 때부터 시작이 되었고, 안아줘야만 잠을 잔다. 업거나 안은 상태에서 잠에 들어도 눕히면 어떻게 알았는지 곧바로 눈을 뜨고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엄마가 들어주지 않으면 뒤로 넘어지면서 운다. 그러다 바닥에 뒤통수를 부딪칠 때도 있고 몸을 비틀다 벽이나 문에 머리를 부딪힌 적도 있다. 요즘은 기저귀를 차지 않겠다고 버텨서 나를 힘들게 하더니, 퇴근하고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다음부터 절대로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나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자신을 안고 있기를 원하는 둘째는 내가 화장실을 갈 때도, 둘째딸의 샤워를 시킬 때도 땅바닥에 자신을 내려 놓으면 기겁을 하면서 운다. 너무 어릴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 어린이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고, 엄마나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깨달으며 분리불안을 느끼는 시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첫째 때와 비교하면 너무 너무 심하다. 내 딸이 아니라면, 절대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잠도 못자고, 퇴근한 뒤 둘째딸을 꼬박 안고 있어야 하는 탓에 두 팔이 늘 쑤신다. 그렇지만 아이가 불리불안을 느끼는 시기인 만큼,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고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게 해야 하니 참을 수밖에 없다.  

 

또한 딸 둘과 내가 함께 있을 때, 둘째한테 손이 먼저 간다. 울지 않게 하기 위해서, 둘째가 울면 시끄럽고 아이가 무엇보다 고통스러워 하니까. 그런 상황을 첫째딸이 어느정도 이해해 주니까 말이다. 반면 매번 외톨이로 방치되기 일쑤다. 밥을 차려 주거나 간식을 챙겨주려고 해도, 목욕을 시키려고 해도, 첫째한테 책을 읽어주거나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둘째가 꼭 방해꾼이 된다. 둘째가 없었을 때는 모든 사랑과 관심이 첫째한테 쏠렸는데, 지금은 큰아이한테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할 때가 더 많다.

 

동생에게 사랑을 뺏기는 것 같은 불안감, 질투심을 느낄 어린 나이인 여섯 살 수아한테 너무 큰 양보를 강요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장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하는 수밖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큰딸도 그런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서인지 대화로 상황을 충분히 이야기하면 참고 수용하는 편이다. 물론 가끔은 그렇게 양보해야 하는 현실이 속상해서 눈문을 흘리곤 하지만. 어릴 적 부모님이 첫째인 내게 무조건적인 양보와 희생을 요구했던 모습이 한때 서운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부모의 모습을 내가 따라하고 있다니.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와 둘째의 양육을,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 건가. 명쾌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늘 고민이다. 특히 지난주 방학을 맞은 두 아이들과 함께 보내면서 그 고민은 더 깊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 전문가들도 첫째와 둘째의 성향과 성격이 다르고, 이에 맞게 사랑과 관심을 줘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6세 아이에게 꼭 해줘야할 59가지>(중앙 M&B)에서도 첫째와 둘째가 다르기 때문에 사랑법도 달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첫째아이와 둘째아이의 성향은 대체로 우리 첫째딸 수아와 둘째딸 아란과 비슷하다. 이는 대부분의 엄마들도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주변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큰아이는 첫째로서 책임감이 강한 편이고, 둘째는 애교가 많거나 장난꾸러기인 경우가 많다. 인물은 첫째보다는 둘째가 더 낫다는 이들이 많고.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아이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자신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가 동생들보다 높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 경우가 많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감과 리더십을 키우지만 둘째의 등장으로 분노, 질투, 불안함을 느껴 어긋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부모는 ‘나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도 엄마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어 맏아이를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둘째 아이는 대체로 매력이 넘치고 사랑스러우며 자유분방한 사교적인 사람이다. 반대로 가끔은 반항적이고 버릇이 없으며 산만하고 참을성이 부족하기도 하다. 또한 다른 형제들에게 주어지는 특권과 관심에 대해 질투심을 가질 수도 있고 형제들 사이에 대화를 주도할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소외감을 갖는다. 따라서 부모는 막내를 귀엽게만 여기지 말고 독립적인 아이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단다. 

얼마 전에 우리 신문 건강면에 실렸던 기사도 도움이 됐다.



기사 바로보기 매달리는 둘째…질투하는 첫째 사랑을 나누는 ‘엄마의 기술’



다행히 나는 막내인 둘째를 귀엽게만 볼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독립적인 아이로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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