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이야기2] 아이 포기할까? 나쁜 생각도…차마! - 생생육아



7f15ecf69354b4bdce2f5053de45da3e. » 지난해 12월 가족과 함께 떠난 경주여행에서. 당시엔 몰랐지만, 이때 이미 뱃속에서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셋째 임신은 솔직히 내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이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마음의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나는 지난 6개월간 베이비트리 회원들과 함께 힘들게 공개 다이어트를 해서 15kg를 감량한 상태였다!!!!! 날씬한 몸을 즐겨볼 겨를 도 없이, 다이어트를 하는 와중에 또 임신을 한 셈이다. 다이어트 한답시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못먹고, 그 좋아하는 술도 입에 안 대고 지내왔는데... 앞으로 열 달간 살을 다시 찌우고, 술을 못먹는다고 생각하니 으악~)



남편도 나도 울상을 지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고 오랜 침묵. 깊은 고민 끝내 내가 “포기할까?”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할까?”라고 답했다. 설령 내가 그릇된 생각으로 잘못된 선택을 결심했다 해도, 내심 “낳아 키워보자”는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다시 또 고민.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더 생각해야겠다.”



여동생에게 임신사실을 알렸다. 동생은 “지금도 힘든데, 잘 결정하라”며 안쓰러워했다. 결국 친한 회사 선배께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선배는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하늘이 주신 귀한 생명인데, 낳아서 잘 키워야지. 축하해!” 뒤늦게라도 누군가에게 축하의 말을 들으니, 울적한 기분이 확 날아갔다. “내게 축복받은 일이 생긴 거구나...”



하지만 내가 속물인 인간인 탓에, “아들이면 힘들어도 낳겠지만, 또 딸이면 어떻하나?”는 생각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의 성별을 알고 난 뒤, 출산 여부를 결정하자는 아주 나쁜 생각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낙태수술이 횡행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처럼 아이의 성별을 선별해서 아이를 낳고 싶은 이들이나, 그런 사정이 있는 경우 선택지는 이것뿐이다.) 이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최종 결정 역시 유보 상태로 남겨 두었다. 임신사실 역시 여동생과 회사 선배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을 검색했다. 다음과 같은 검색어로. “낙태” “임신중절수술”



수년 전만 해도 불법낙태와 임신중절수술이 횡행했던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원하진 않는 임신을 했거나, 나처럼 같은 성별의 자녀를 내리 두고 있는 경우 태아성감별을 해서 선별적으로 낙태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도 돈줄(?)인 낙태수술 환자를 반겼고, 낙태수술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바로 시술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2005년만 해도 한해 평균 35만건의 불법 낙태수술이 이뤄졌다!



그런데, 1~2년 전부터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산부인과 의사 모임인 ‘프로라이프’가 불법 낙태수술을 하는 병원을 검찰에 고발한 뒤부터 낙태수술을 받기가 쉽지 않아진 것이다. 의사들끼리 서로 고발하게 되면서, 너도나도 몸을 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2~3년 전만해도 “성감별을 해서 수술을 받았다”는 글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수술 잘하는 병원을 소개해 달라”는 글과 그에 대한 답변이 넘쳐났다는데 이런 문의글도 인터넷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24주 이전 낙태수술이 불법이다. 유전학적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이 있거나,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에 걸렸거나,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을 했거나, 임신으로 산모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에 한해서만 산별적으로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나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원치 않았다고 해서, 원하지 않는 성별의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중절수수를 하는 건 100% 불법행위다.



결국 인터넷을 뒤졌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들은 얻지 못했다. 그리고 주변에 아는 지인들을 통해서 괜찮은 병원(?)을 추천받으려는 시도 역시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애초부터 무모한 시도이긴 했지만, 이렇게 병원 자체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인가?(물론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나쁜 마음이 포기가 되지 않았다. 또다시 회사 선배한테 조언을 구했다.



“선배, 셋째 낳는 게 좋을까요? 제 솔직한 마음은 아들이면 낳고, 딸이면... 딸이 나쁜 건 아닌데 둘로 족하고. 기왕 아이를 한 명 더 키울 거면 다른 성별을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양쪽 부모님도 지금껏 내심 아들을 바라고 계시기도 했고요.(집안에 손자가 단 한명도 없는 관계로) 시아주버님도 딸만 둘이고, 저희도 딸만 둘이거든요.”



“아들이든, 딸이든 뭐가 중요해? 아기들은 다 제 복을 타고나. 걱정하지마. 셋째가 복덩이가 될 거야.”



“그래도... 점을 보면 성별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 아이의 성별을 몰라도 낳는 게 좋은지, 안 낳는 게 좋은지 정도는 알려주지 않을까요?”



지금껏 나는 점이라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양쪽 집안 모두 특별한 종교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주나 운명 같은 것을 믿지도 않는다. 나와 남편이 결혼할 때 역시 ‘궁합’을 보지 않았고, 결혼날짜를 잡을 때 ‘기일’을 따로 잡지도 않았더랬다. 그런데 점이라니... 벼랑 끝으로 몰리니, 별 생각을 다 하게 되는군.



“내가 아는 점집이 있는데 같이 가볼래? 5년 전에 친구따라 가서 한번 봤는데, 당시엔 그분의 말이 엉터리라고 생각했어. 근데 1~2년 지나니까 그 말이 다 맞더라고. 2011년 사주도 볼겸 기분전환 차원에서 한번 가보자.”



“정말요? 좋아요.”



2010년 12월31일, 오후 이른 종무식이 끝난 뒤 그 점집에 갔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내년에는 정말 아이와 육아에 대한 짐을 내려놓고 내 일,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었다. 셋째다. 지금은 딸만 둘을 키우고 있다.”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선생님은 책을 보며 내 사주를 주~욱 훑으셨다. 그의 말씀은 이랬다. “아이 낳으세요. 나중에 이 아이가 컸을 때 ‘내가 왜 이런 아이를 포기하려 했었나’ 생각하며, 웃음지을 날이 있을 겁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몇년 간 당신의 사주는 안 좋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1년 뒤인  2012년 8월부터 팔자가 풀린 것이다.”



순간 내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내 어깨를 짖누르고 있던 모든 짐을 한꺼번에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낳아야겠어요.”



선배 역시 “잘 생각했어. 복덩이라니까! 그리고 다 제 복 타고 나니까, 걱정하지마.”



그날 밤 가족끼리 케잌에 촛불을 켜놓고 조촐한 송년파티를 하면서, 남편한테 점을 보고 온 얘기를 털어놓았다. 남편은 껄껄~ 웃더니, “그래. 낳자. 힘들어도. 내가 많이 도울게”라고 격려해줬다. 사실 남편도 내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2010년 크리스마스 날부터 2010년 마지막 날까지 지난 일주일간 나만큼이나 혼란스러웠고, 그만큼 깊은 고민을 한 듯 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 경제적 능력, 가사와 육아의 분담 등 남편를 짖눌렀던 짐 역시 나 못지 않게 무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남편에게 고백하지 않은 말이 하나 있다.



“아이의 성별 알 수 있을까요?”라는 내 물음에 대한, 점을 보시는 선생님의 답변 말이다.



“당신 사주에 ‘아들 자’가 보이지 않는다.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마음을 비워라.”



아~ 결국 셋째 아이마저 ‘공주님!’이란 말인가!!!



그놈의 술 때문에 그 새벽 셋째가 덜컥 바로가기

TAG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