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한오라기의 혁명> 농부는 '놀고', 농사는 자연이 짓는다. 책읽기

내가 20대를 지나오며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은 꿈의 변화이다. 마냥 어릴 땐 통역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가 머리가 조금 굵어진 다음에는 여행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언어를 배우며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통역가'라는 직업에 끌렸던 것이었고, 거기에 '자유로운'이라는 수식어를 첨부해 변화한게 '여행작가'였다. 사실 그 직업을 갖고 싶은 것보다 '여행'을 꿈꾸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려 4~5년 간의 준비기간 뒤 1년이 좀 넘는 시간동안 여행을 했다. 그리고 변했다. 자연스러운 삶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 후에 내가 쓰던 '자유채색'이라는 닉의 '자유'의 뜻을 '자연'이라고 우겼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라면서. 물론 아직도 맞는 말이라고는 생각한다. 이후부턴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했다.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마냥 여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은 아닐테니까.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여럿 읽었다. 그런 책들을 통해서 알게된 '자연스런 삶'이란 자연에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여행할 때의 원칙처럼 '마치 아무도 가지않은 것처럼' 살다가는 것 말이다. 자연에서 얻은 것은 자연으로 돌려주고, 흔적을 남기지 않을 뿐더러 즐겁게 사는 삶. 일백년 이전의 조상들 삶이 그랬고, 유럽인들이 침략하기 전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이 그랬다. 

그 속에서 얻은 자연스런 삶의 필수 원칙은 '자급자족'이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식량들을 스스로 얻거나 재배하고, 사는 집도 짓고, 옷도 만들어 입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가지지 않고 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삶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나는 삶이다. 아마 '현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은 다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삶으로 바꾸기 위해선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집짓기? 옷만들기? 농사짓기? 아무래도 사는데 가장 비중이 높은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겨졌다. 길바닥에서 잘 수도 있고, 같은 옷을 맨날 입을 수는 있지만 배를 굶고서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나는 불행하게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외가에 놀러갔다가 잠깐씩 일을 도운 것이나 짧은 농활 때 폐를 끼친 것밖에 없다.

아직도 고민만 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이다. 블로그를 하다가 이윤기님의 '농약 비료 제초제 경운기 조차없는 자연농법'이라고 하는 포스팅을 본 것이다. 지체없이 바로 책 주문을 했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않는 유기농은 필수라고 여기고 있었으나 땅을 갈지도 않고 잡초를 뽑지도 않는 '자연농법'이 있단 것을 거의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를 통해 얼핏 들은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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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밭을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퇴비를 줄 필요도, 화학비료나 농약을 쓸 필요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_본문 24p


저자는 힘든 삶의 시기를 보내며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라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은 뒤부터 '헛된 관념'을 버렸다고 한다. 이후 자연농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시도하며 위와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자연농법의 좀 더 구체적인 계기는 성경에 "작은 새는 씨 뿌리지 않고 쪼아먹기만 할 뿐인데, 어찌 인간만이 걱정하는가?" 라는 글귀를 본 뒤부터라고 한다. 

책을 보기 전 가장 빨리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땅을 갈지않고, 게다가 잡초도 뽑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였다. 그리고 모내기를 하지않고 씨를 직접 논에다 뿌린다는 것도 무척이나 궁금했다. 소와 함께 땅을 가는 모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그림에도 나와 있고, 잡초를 뽑는 즉 모내기와 김매기는 농삿일 중 가장 힘들고 귀찮은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고, 직접 씨를 뿌린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의문점에 대해 책은 명쾌하게 답해 주었다. 잡초의 대책으로 클로버 씨를 뿌려 벼나 보리 사이를 메꾼다고 한다. 책에서는 이들을 '풋거름풀'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일종의 '거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식물의 생화학적 작용으로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것이다. 이들 사이로 잡초가 자라나기도 하는데 보통은 가만히 놔두고, 심하게 많이 자라날 때는 뽑아서 그 자리에 놓아둔다고 한다. 잡초가 다시 거름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잡초가 그곳에 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땅을 갈지 않는 농법에 대해서는  '대지는 사람이 갈지 않아도 스스로 갈아가며 해마다 지력을 증대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땅 속의 온갖 생명들이 땅을 기름지게 하는데 땅을 갈게 되면 그 생명들이 큰 영향(때론 죽기도)을 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저자의 실험결과 땅을 갈지 않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본인의 논을 30년간 한번도 갈지 않았다) 그리고 씨를 직접 뿌리는 것은 직접 뿌려도 잘 자라는데 굳이 모를 따로 길러 심는 등으로 노동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저자는 비료조차 주지 않는다. 옛 우리 시골에서 소똥과 인분을 삭혀서 비료로 써 왔던 것과는 다른 면이다. 대책으로는 짚을 모두 논으로 돌려놓는다고 한다. 소 여물로 먹이거나 초가의 지붕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짚 만으로 비료를 대체한다는 것이 얼핏 이해하기 힘들지만 저자는 분명 그렇게 수십년을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실상 그 땅에서 빠져나온 것은 알곡 뿐 다른 건 거의 없다. 이렇게 농사를 지은 결과 그 지역 일대에서 가장 높은 수확을 거두는 곳이 되었단다.

이 이야기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왜냐하면 농사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들고 복잡하며 큰 돈이 든다고 늘 충고듣기 때문이다. 땅을 빌리는 것이야 둘째 치더라도 농기계야 비료야 김매기야 생각만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농사를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써 여간 막연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기계도 비료도 비료도 김매기도 필요없는 농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난다. 

그 아무리 자연농법이라고 할지라도 부지런한 노동은 필수적이다. 그래도 지금 흔히 행하고 있는 '현대 농법'에 비하여는 노동시간은 비교적 줄고, 여가시간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 여가시간은 즉 '노는 시간'이 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지적을 하는데 자신의 마을에 있는 작은 신사에 '예사실력이 아닌 하이쿠'가 적혀져 있었다고 한다. 오래전 마을 사람들이 적어놓은 것이었는데 그만큼 생태적인 생활을 했기에 하이쿠를 지을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이런 농사를 시작하게 되고, 자급자족의 생활로 가게되면 여가시간의 많은 부분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즉, 집을 짓거나 옷을 만드는 등의 일로 바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을 거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 방법은 내가 꿈꾸는 '자연스런 삶' 그 자체다. 언제 쯤 이런 막연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실행을 하게 될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확실히 그 꿈에 가까워 진 느낌이다. 가슴은 책을 읽기 전보다 한층 더 두근거린다. 

농부는 놀고, 농사는 자연이 짓는다. 나의 '자연스런 삶'을 꼭 이루고야 말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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