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 기획 북핵 20년, 3가지 의문(하) 북핵 20년

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5348자 30면 김종대





북한은 3차 핵실험으로 핵무장에 성큼 다가갔다. 이제 북한의 핵보유는 지난해 미사일 성공과 더불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지난 20여 년간 한반도를 전쟁 위기까지 몰고 간 벼랑 끝 위기와 협상을 반복해온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에 더욱 위협적인 대치 구도를 형성해왔다. 최초로 핵문제가 불거진 1991년 당시 이종구 국방부 장관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한 '엔테베식 군사작전'으로 영변을 폭격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1994년에는 그 이전에 북한이 국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데 대해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기로 결심하고 미군 동원령을 선포하기 직전까지 가는 위기가 있었다. 한편 2002년 말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무장관은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이준 국방장관에게 북한의 핵미사일을 선제 타격하는 새로운 작전계획 '5026'을 제안해 합의한 바 있다. 이후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미국은 이준 장관과의 협의를 근거로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적 폭격을 거론함으로써 한반도 안보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1994년의 위기는 제네바 협정으로, 2002년의 위기는 6자회담이라는 또 다른 기회의 창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임박한 파국은 그다음 시기로 연기되는 가운데 한반도 안보문제의 궁극적 해소라고 할 수 있는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의 결정적 기회가 정치적 이유로 무산돼온 과정이기도 했다. 

이상한 '노이즈 마케팅' 

2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에 여러 차례 위기와 협상을 반복해온 북한 핵문제는 이제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북한 핵무장은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로, 북한 정권을 설득해도 소용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의 북한 핵문제를 회고한다면 이런 비관주의 주장에는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북한이 오직 핵무장으로 체제 유지와 국가 생존을 추구하는 단일한 목표로 가고 있다면 현재 북한의 행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첫째, 왜 이렇게 요란하게 핵보유를 선언했느냐는 점이다. 비핵 국가가 국제적 감시망을 피해 핵무장을 하려면, 조용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핵을 개발해 완성도를 높이다가 어느 날 의심할 여지없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드러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하게끔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냉전 초기에 소련은 자국의 핵개발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다가 핵을 실전에 배치한 다음에야 이를 인정하는 '기정사실화 전략'을 구사했다. 이 때문에 소련의 핵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한 미국은 몇 번이나 소련에 대한 핵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소련뿐만 아니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어느 핵개발국을 보더라도 핵개발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시키다가 어떤 시점에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전략이 국제 감시하에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아직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지 않은 북한이 굳이 헌법에 핵보유국 조항까지 신설하고 국제사회에 핵실험을 예고하는 요란한 방식을 택하는 이유가 뭘까? 또한 어렵게 구축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적대국인 미국에 공개하면서까지 핵개발 능력을 외부에 노출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이 이렇게 시끄럽게 핵을 개발하니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무려 3개의 대북 제재 결의안(1718호, 1874호, 2078호)을 통과시켰고, 국제사회의 더욱 강화된 감시와 제재로 핵무기 보유가 늦어질 수 있다. 이런 사례는 북한 이외에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은 이제껏 핵보유국이 통상적으로 선호하는 기정사실화 전략과 가장 동떨어진 이상한 경우다. 가끔 경제시장에서 요란스럽게 말썽을 부려 주목을 끄는 '노이즈 마케팅'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실제로 1994년에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기로 결심하고 40여만 명의 미군을 동원하는 상황까지 나아갔고, 2002년에도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시설을 타격하는 우발계획(Contingency Plan)으로 작전계획 5026을 수립한 바 있다.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 핵을 개발하는 것은 '핵무기 보유 이외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것은 핵을 통해 미국과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안보문제의 해결에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간 핵위기는 주로 북이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던 핵능력을 외부로 표출함으로써 발생했다. 1994년 제네바 핵협상 타결로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수용해 핵시설을 비교적 투명하게 관리하다가, 2002년 협정 이행이 중단되고 재차 핵위기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제임스 앤드루 켈리 차관보에게 이전의 플루토늄 확보와 달리 "우라늄 농축도 할 수 있다"는 도발적 발언을 한 게 빌미가 되었다. 이후로도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를 보면 마치 적절한 시기에 핵능력을 공개해 대외 협상력을 높여왔다고 볼 수 있으나, 이런 과정이 핵개발에 과연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보수 진영은 북한에 핵보유 외에 다른 목적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 북한은 일관되고 확고하게 핵보유를 추진하는 것이라면 북한은 왜 은밀하게 핵개발을 진행하지 않는지, 그것도 20년 넘게 험난한 과정을 감수하는 비효율적 방식으로 핵을 개발하는 것인지 설명이 곤란하다. 

핵개발에 따른 전술 변화가 있는가? 

둘째,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안보를 달성하는 데 비핵 통상무기, 즉 재래식 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는 의미를 내포하게 마련이다. 미국은 냉전 초기부터 핵을 증강한 명분 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과도하게 팽창시킨 재래식 군사력을 감축하면서 그 공백을 핵무기로 메운다는 것이었다. 5대 핵무기 보유국과 사실상의 핵보유국들에도 이런 현상은 예외 없이 나타난다. 

핵을 보유하는 목적이 적대국에 비해 재래식 전력이 심각하게 열세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함이거나, 그것이 아니면 재래식 무기 감축을 합리화하는 명분이었다. 한-미 연합전력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인 북한의 경우 군사전략에서 앞으로 보유하게 될 핵전력이 매우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핵을 보유한 이후 북한은 기존 재래식 전력 운용에 상당한 변화를 도모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3차 핵실험이 강행된 이후에도 그 변화의 방향이 구체화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은 이를 암시하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에서는 최근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1990년대부터 북한은 핵과 화학무기 보유를 전제로 한 재래식 전력의 재편을 꾸준히 추진해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부터 북한 군단이 6개 감축되었고, 전방 배치된 군사조직도 3단계에서 2단계 타격체계로 통·폐합되는 등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군사 재편 과정에서 북한 특수부대, 즉 경보병부대가 8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증강되고 서해 공기부양정, 잠수정이 추가 배치되는 등 공세적 기동전력 위주로 재편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핵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도 새로운 전략이 완성되어 이를 실전에서 시험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치명적 약점이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굳이 남한 전역에 그들의 군대를 침투시킬 필요가 없다. 핵무기로 협박을 가하는 그 대상 지역에 그들의 군대가 대규모로 투입돼 개싸움과 같은 전술, 일명 도그택(Dog-tac) 상황이 벌어지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기가 더욱 곤란하다. 핵과 미사일로 멀리서 위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지난 8년간 북한 군사력의 감축은 핵 의존도가 높아진 결과 군사력을 감축해도 무방하다는 방어적 판단에서 나온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다.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 그 이상의 '핵바다'로 만들 수 있다면 나머지 재래식 전력은 방어적으로 운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런 방어적 의도를 우리가 공격적 의도로 잘못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재래식 전력 재편은 아직 실전에 배치하지도 않은 가상의 핵전력과 무관한 것 아닌가, 라는 의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도 돈이 없어 특수부대가 3만 명에도 못 미치는데 북한이 어떤 수로 20만 명이나 보유한다는 것인지, 그 군사적 판단도 의심스럽다. 설령 20만 명의 특수부대를 보유한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많은 병력을 어떤 운송수단으로 남한 전역에 침투시킨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핵무기의 실전 사용 가능성은? 

셋째, 설령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고 해도 핵무기를 언제, 어떤 조건으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북한이 보유하려는 핵무기가 미국과 일본을 위협하는 전략무기인지, 아니면 한-미 연합전력이 북한 지역에 전개되는 것을 차단하는 전술핵인지 명확하지 않다. 일단 탄도미사일과 결합된 전략핵이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지만, 이런 경우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과 과도한 개발비 부담이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소형화된 핵무기로서 단거리 미사일과 야포로 발사될 수 있는 전술핵을 다량 보유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 역시 북한으로서는 막대한 부담과 운용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두 경우 모두 핵을 실전에서 사용함으로써 초래되는 막대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실전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변형된 핵무기로서 핵폭발시 발생하는 전자파를 활용한 EMP(Electric Magnetic Pulse)탄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외에 실제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핵을 보유한 사실만으로 상대방을 협박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을 노린다는 '핵 그림자 전략'(Nuclear Shadow Strategy)이 주된 목적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판단의 문제이므로 검증이 어렵다. 

이런 세 가지 의문을 인정한다면 지난 20여 년의 핵위기와 반전의 과정은 북한이 자신의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관계 재조정에 가장 핵심적 정치적 목표를 두면서도, 일견 핵보유 의지를 점진적으로 내면화해온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동북아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확장하는 전략적 기회로 활용해왔다. 동북아 정세의 판이 다시 짜이는 지금은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핵정치, 강대국 정치의 시대가 열리는 중이다. 이 새로운 국면은 또다시 우리에게 대파국이냐, 대타결이냐는 선택을 강요한다. 



글 / 김종대 군사문제전문가. <디펜스21+> 편집장.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역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안보론'을 강의 중이다. 저서에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전시작전권에서 남북 정상회담까지>가 있다. 


[북핵 20년 기획]
1.  북핵 위기 20년과 3차 핵실험: 합의와 퇴행(중)
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6422자 임수호


2.  북핵 20년, 시시포스 신화 (상)
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2335자 강태호


3.  미완의 합의와 최후의 담판 (최종)
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5819자 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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