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두 재미과학자의 분투-김광섭 천안함

‘화공학회 강연 취소’ 김광섭 박사

1번 글씨 연소 여부, 합조단-반합조단 모두 틀렸다

합조단, 어뢰의 흡착물질이 /알루미늄산화물이란 건 /어뢰설 스스로 부정하는 꼴 /수중 폭발에선 나올 수가 없다 /선체 전체로 퍼졌다는 흡착물도 /알루미늄, 철 판재에서만 발견 /부식이 원인일 가능성 보여줘 /반합조단 과학자들의 실험은 /바닷속 환경과 너무 달라 /폭약조차 쓰지 않은 건 허점

 김광섭 박사는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과,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정기영 안동대 교수로 대표되는 이른바 ‘반합조단’ 과학자들 사이의 논쟁에서 제3의 독자적 견해를 보였다. 그의 주장은 천안함과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부품의 흡착물질(백색 분말)의 성분과 매직잉크로 쓰인 ‘1번’ 글씨의 연소 여부를 놓고 합조단과 반합조단 모두 잘못된 실험과 분석에 입각해 논쟁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브릭 커뮤니티에서 “흡착물질 종결자”로 통해 

 그는 2010년 7월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글을 쓴 이래 15편 이상의 과학 기술적인 보고서와 논평을 통해 이런 견해를 밝혀왔다. 

 예를 들어 흡착물질이 합조단이 주장하듯이 비결정성 알루미늄산화물이라면 그것은 어뢰의 수중 폭발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아니므로 스스로 어뢰설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는 것이다. 합조단이 주장하는 비결정성 알루미늄산화물은 해수에 존재하는 황산이온과 반응할 수 없다. 그러나 합조단 최종보고서에는 모든 흡착물에 상당한 양의 황산이온이 존재한다고 되어 있어 모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물질이 수중 폭발에서 생성됐다거나 생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흡착물질이 비결정성 알루미늄산화물이 아니라고 의문을 제기한 이승헌 교수의 반박도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주장은 알루미늄 분말을 공기 중에서 1100℃로 가열하여 녹인 뒤 물에 넣어 냉각시킨 자신의 실험 결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실제 바닷속 폭발과 유사한 실험이 전혀 아니었다. 가장 취약한 점은 그의 시뮬레이션 실험에서는 폭약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성된 알루미늄산화물은 결정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합조단의 수조폭발 실험은 폭약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역시 잘못된 것이었다. 알루미늄 입자의 크기나 그 양이 얼마인지도 문제지만 폭약을 탄두라는 외피 없이 바닷물 속에 직접 넣었기 때문이다. 모든 해군의 어뢰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합성 폭약은 폭발 순간엔 폭탄 자체의 분해물이나 폭탄 제조 때 미리 넣어둔 산화물질과 즉각 그리고 최대한 반응하도록 설계돼 있다. 주변의 물이나 산소와 반응하는 것은 폭발 뒤 탄두의 외피가 파괴되고 그때 바닷물과 접촉하면서다. 또 이 폭발은 알루미늄 분말 입자의 크기, 폭약과의 성분 비율, 산화제의 첨가 여부 등에 따라 충격파, 버블제트, 온도 등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김 박사에 따르면 그러므로 어뢰 제조에 사용된 똑같은 알루미늄 합성 폭약 없이 시뮬레이션(실제와 비슷한) 실험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1940년대부터 성능이 뛰어난 어뢰를 개발하기 위해 미국 해군의 주도로 흡착물과 관련된 실험적 이론적 연구들이 있었다. 김 박사는 그럼에도 합조단과 반합조단 누구도 그런 연구를 참고한 흔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의 이런 제3의 과학적 분석은 많은 언론들이 합조단과 반합조단의 치열한 공방에 치우치면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기엔 그의 분석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다. 그의 논문에 나오는 복잡한 화학식을 이해하려면 화학 일반은 물론이고 열·유체역학 흡착 등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밝혀낸 과학자(생명공학)들의 누리집 브릭 커뮤니티엔 천안함 카페 ‘과학의 눈으로 본 천안함 사고 원인’(bric.postech.ac.kr/scicafe/?SciCafeId=warship)이 있다. 이곳의 일부 논자들은 그를 ‘흡착물질 논쟁의 종결자’로 부른다. 

“알루미늄수산화물이 부분적으로 황산화” 

  김 박사가 준비했던 지난 4월 말 한국 화공학회 총회 발표 논문은 “천안함 침몰사건: 흡착물과 1번 글씨에 근거한 어뢰설을 검증하기 위한 버블의 온도 계산”(파워포인트 60여쪽)이다. 이 논문은 알루미늄 폭약의 수중 폭발에 관한 기존 연구와 새로 개발한 이론과 합조단·반합조단의 실험 자료의 해설을 근거로 하고 있다. 논문의 초점은 흡착물질의 형성과 그 성분, 버블제트의 온도를 계산하는 것이다. 초청 강의는 취소됐지만 김 박사는 이를 학술적인 논문으로 재작성해 국제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이 발표 논문에서 김 박사는 우선 흡착물질의 성분을 비결정성 알루미늄산화물(AlxOx)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젤라틴화된(흡착성의)’ 알루미늄수산화물의 부분적으로 황산화된 물질(SaGAHs)로 제시했다. 이는 폭발로 생성된 알루미늄산화물이 물과 반응해 젤라틴화된 수산화물로 변하고 해수의 황산이온을 흡착·흡입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바닷물의 황산이온과의 화학적 변화를 거쳐 생성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합조단 최종보고서 부록에 포함된 흡착물질의 열분석 실험자료(TGA/DTA)가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고 김 박사는 밝혔다. 


 그에 따르면 합조단의 알루미늄산화물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오류를 지적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흡착물질이 천안함 선체, 선미 가운데 알루미늄과 철의 판재에서만 발견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합조단의 흡착물질 생성에 대한 견해를 ‘총알설’로 비유한다. 버블의 붕괴 과정에서 폭약에서 유래한 흡착물질이 총알처럼 날아와 선체 선미 등에 분산돼 붙어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흡착물질이 알루미늄 및 철의 판재에서만 발견된다. 그뿐만 아니라 폭발의 영향권 밖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 문제는 반합조단 쪽의 의뢰로 양판석, 정기영 교수가 독자적으로 흡착물질을 분석해 내린 결론에도 해당된다. 이들은 폭발에 의해 생성된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며 침전에 의해 생성된 물질(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 바스알루미나이트)로 밝혔다. 그러나 침전설은 이런 흡착을 설명 못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자신의 ‘SaGAHs 설’은 해수에 의한 분산과 수소결합에 의한 흡착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흡착물에서 얻어진 모든 실험 결과와 그에 관련된 모든 관측들이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합조단은 1번 어뢰 잔해의 프로펠러 등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을 알루미늄 폭약에 의해 생성된 물질로만 봤다. 이 폭발로 생성된 흡착물질만 해도 합조단이 분석한 것처럼 균일하거나 단일한 물질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흡착물질과 관련한 김 박사의 주장 가운데 또다른 핵심적인 논거는 이 흡착물질(SaGAHs)이 폭발로만 형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알루미늄 판재들이 철과 전기적으로 연결되면 이른바 갈바닉(Galvanic) 부식(이종금속 접촉부식) 현상에 의해 흡착물질이 형성되는데, 이는 알루미늄 폭약의 폭발로 생성된 흡착물질과 화학적으로나 육안으로 봐도 거의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거된 어뢰 부품의 프로펠러가 50일간 해수에 있었다면 그 흡착물질은 폭발이 아닌 부식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알루미늄과 물질 분석에 전문성이 있는 과학자들은 폭발인지 부식인지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합조단은 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신들의 실험에서 나온 백색 분말과 1번 어뢰, 선체 등에서 발견되는 백색 분말의 동질성을 증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흡착물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김 박사의 이런 주장은 수중 폭발에 의한 버블제트를 부정해 온 반합조단과는 달리 알루미늄 폭약의 버블제트 폭발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전제에서 보더라도 합조단은 1번 어뢰의 천안함 공격이라는 결론을 입증하는 과학적 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번 글씨’ 연소 논쟁이 소모적인 이유 
 
  특히 수중 폭발에서의 버블 온도 계산은 흡착물질의 형성과 특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됨에도 합조단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면 매직으로 쓴 1번 글씨는 당연히 타 없어져야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합조단은 뒤늦게 송태호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의 열역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버블 온도에 관한 연구발표(0.1초 만에 28℃로 냉각)를 받아들였다. 송 교수에 따르면 버블 온도와 압력, 그 전달속도, 거리 등을 계산해보면 폭발열은 어뢰 후미부의 글씨를 태울 수 있는 온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송 교수의 버블 온도 계산은 이승헌 교수가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김 박사는 그 반론은 적절치 않은 것이었다면서 “버블이 파괴됐을 때는 고온이지만 저압(0.01기압)이므로 접촉되는 물체가 열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충격파로 고열이 전달되기 전에 어뢰 후미부가 원래 위치보다 폭발 지점으로부터 크게 밀려났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버블 현상은 “부상병이나 주검에 화상 흔적이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송 교수의 버블 온도 계산이 잘못됐다는 데 있다는 것이 김 박사의 지적이다. 그는 송 교수의 연구가 알루미늄 폭약 모델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천안함 사건의 폭발과는 어떤 관계도 없는 것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알루미늄 산화도 계산, 폭발에너지의 충격파와 버블로의 배분, 그 분배에 알루미늄이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하면 알루미늄 폭약의 최저 온도는 1500℃로 계산됐다. 김 교수는 따라서 1번 글씨의 연소 여부로 버블제트 폭발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애초에 1번 글씨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라는 걸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1번 글씨를 둘러싼 논쟁은 비생산적이라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처음부터 합조단에 대해 공정하고 능력있는 독립적인 조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김 박사는 그건 합조단이 국방부에 속하는 기구(국방과학연구소 등)와 많은 조사 인원을 국방부 내의 조직에서 차출한 데서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 실제로 흡착물질 조사와 분석에서 보듯이 합조단은 무능하고 정직하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미국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그는 1989년 미국 전함 아이오와 포탑 폭발사건으로 해군 장병 47명이 사망했을 때 미국도 논란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미국 해군 자체조사는 한 장병이 의도적으로 폭약을 폭발시킨 것이라는 결론을 발표했다. 유가족, 언론과 많은 상·하원 의원들은 믿지 않았다. 논쟁의 소지가 있는 사건에 대한 자체조사는 신뢰를 얻기 힘들다. 특히 군이 자체조사에 나서는 경우에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때문에 더욱 불신을 받는다. 결국 이 사건은 미국 의회 회계감사원이 나서 독립적인 조사기관인 샌디아 국립연구소에 과학기술적인 조사를 맡도록 했다. 샌디아 연구소가 40명의 과학기술자를 동원하여 철저한 조사를 한 결론은 이 사건의 책임이 장병이 아니라 해군에 있다는 것이었다. 김 박사는 국정조사를 통해 “합조단이 미 해군의 조사처럼 이미 정해진 결론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조사를 이끌려고 했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김광섭(72).
서울대 화공과, 미국 퍼듀대 화학공학과 박사. 현재 보스턴 거주. 알루미늄폭약 전문가이며, 다국적 에너지기업 엑손에서 금속표면 산화, 물질의 부식과 촉매에 관해 연구했고, 폴라로이드에선 알루미늄 분말 입자의 화학적·물리적 성질을 연구하며 폴라로이드필름과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영구 보존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용 디지털필름 등을 개발. 이 과정에서 알루미늄폭약 전문가들과 많은 접촉을 함. 미국 과학재단에서는 물질 특허 분쟁에 관여해, 천안함 ‘흡착물질(백색 분말)’ 논란에서는 해당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음. 

<기고> 화공학회의 ‘궁색한 변명’ -재미 과학자 김광섭



한겨레  2012.07.12 본지 25면  1판 2040자  김광섭



 나는 지난 4월 말 한국화학공학회의 연례 봄 학술대회에서 천안함 사건에 관해 강연할 예정이었다. 그건 화공학회 초청의 학술적인 논문 발표였다. 이 논문에서 나는 천안함이 1번 어뢰에 의해 침몰했는지 여부를 규명할 가장 중요한 증거인 흡착물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버블온도의 계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논문은 발표되지 못했다. 그리고 6월23일치 <한겨레>는 논문의 내용과 외압에 의해 발표가 취소된 경위를 전했다. 그러자 학회는 6월25일 해명서를 내어 이 보도를 반박했다. 논문 발표를 취소한 것은 학회의 정상적인 활동이며, 취소 이유는 발표내용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궁색한 변명이다. 학회가 오히려 ‘정치적인 기준’을 내세우며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하는 건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한겨레>는 필자의 학술적인 연구를 충분히 전하지는 못했으나 공정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학회는 이 기사를 정치적인 기사라고 표현했다. 그건 필자는 물론이고 <한겨레>를 모독하는 일이다. 누가 더 정치적인 것인가? 
 
 학회는 미리 보낸 필자의 논문을 보고 국가적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고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초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발표 내용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모호한 정치적 기준을 추가해 재심사한 뒤 발표를 취소하도록 했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 기준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공익법인인 학회가 명시한 학회의 임무와 상치된다. 학회는 ‘국가적 문제의 해결’을 학회의 임무라고 명시했다. 학회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 여부에 개의치 말고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학회의 이창하 총무이사는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학회의 기본적인 임무를 무시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둘째, 이 기준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셋째, 이 기준은 학회의 임원들이나 자문위원회 위원들이 개인적인 정치적 의견(편견)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남용될 수 있다. 솔직히 학회는 논문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우려했다기보다는 다른 걸 더 우려했을 것이다. 필자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논쟁이 재연될 경우 피해를 우려했을지 모른다. 학회나 학회의 많은 지도층 인사들의 활동은 정부의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공익단체이자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학회가 정치적인 기준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학회의 기준은 발표된 논문이 정치적으로 이용될지 여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준은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는지, 학술적 가치가 있는지가 돼야 한다. 학회가 내세운 기준은 필자의 논문 발표를 취소하려고 특별히 창안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창하 총무이사의 메일을 보면 학회가 필자의 발표를 취소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려고 고심한 흔적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학회의 임원들이 원로 자문위원회를 연 것은 발표 취소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그 결과 학회의 지도부가 집단적으로 정치적 결정에 가담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한국기계공학회는 2010년 연례 학회에서 천안함과 관련해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학술연구는 흔히 정치적으로 이용되지만, 이러한 이유로 논문 발표가 안 됐다는 보도를 필자는 보지 못했다. 이번 경우처럼 학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해 그런 결정을 내린 예는 없다고 본다. 

 이승종 학회 회장은 논문 발표의 취소는 한국적인 특수한 사정 때문이라며 대회에 참석했던 필자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형식적이고 무책임한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의 국정조사와 같은 방법으로 학회의 잘못된 결정을 조사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계의 풍토가 개선돼야 할 것이다. 한국화학공학회는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이승종 회장은 이런 유례가 없는 ‘비행’이 일어난 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화공학계의 한사람으로 이런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건 오로지 학회가 고유한 임무인 국가적 문제 해결에 중요한 구실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걸 밝히고 싶다. 

김광섭 재미 화공학자·전 미 과학재단 심사위원 

한겨레  2012.06.23 본지 4면  5판 5541자  강태호

TAG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