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라는 큰 선물 생생육아 칼럼

내 사랑 다엘

선생님이라는 큰 선물

내 아이 말이 완벽한 진실될 수 없는 이유

제1196호
 
다엘의 초등 첫 담임선생님 ‘제비꽃마리’. 정은주

 

다엘을 대안초등학교에 보낼 때 지인이 조언했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대안학교를 생각해봐도 늦지 않다고. 그러나 나는 대안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이에게 더 큰 선택의 기회를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공교육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대안학교는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엔 아이의 의사가 중요해지는데, 제대로 선택할 기회를 주려면 어린 시절 대안교육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대안학교에서 다엘이 가장 큰 덕을 본 건 사회성을 키운 점이다.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엘이 덩치 큰 상급생에게 맞았다고 했을 때, 반사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떠올랐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은 나의 편 가르기 구도를 단번에 불식해주었다. 내가 가해자로 생각했던 학생에 대해 선생님이 갖고 있는 깊은 이해와 애정을 확인하고 든 생각은 이랬다. ‘이 선생님이라면 전적으로 믿고 아이를 맡겨도 되겠구나.’

 

이후 학생들 간 다양한 갈등 상황을 겪으며 내 아이의 말이 완벽한 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는 자신의 입장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극히 부분적인 진실만 말할 수도 있다. 이 점을 부모들은 알면서도 놓친다. 선생님은 다엘이 했던 싸움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상대 아이는 몸으로 때리고 다엘은 말로 때려요.” 선생님의 시선이 아이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아이들은 그 선생님을 ‘제비꽃마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학교 마당에 핀 작은 꽃들의 이름을 따서 아이들이 붙인 별명이다. 이번 겨울방학식을 마지막으로 제비꽃마리는 학교를 떠나며 작별인사를 했다. 20대를 오롯이 학교에 헌신한 선생님을 보내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물 흘렸다. 선생님은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하기 위해 떠나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안교육과 연관된 삶을 살 것이라 했다.

 

평소 선생님은 기초학력을 다지는 공부는 물론 세상을 보는 눈과 자립의 힘을 중시했다. 이번 겨울방학식 때 선생님의 숨은 계획 덕택에 다엘은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고 피아노 연주를 해냈다. 선생님으로부터 자신감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다엘에 대해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1학년 때와 비교해서 지금 어떤 점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요?” 내 질문에 선생님이 답했다. “다엘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예뻤어요. 곱고 여리고 따뜻한 기질을 가졌죠. 달라진 점이라면 고슴도치처럼 바짝 긴장해 다가오는 사람을 찔러대던 가시가 이제는 강아지 털처럼 부드러워진 거예요.” 아이를 섬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찡했다.

 

마음속으로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드린다. ‘제비꽃마리, 안녕히! 선생님을 포함한 교사회의 도움으로 다엘의 격렬했던 유년기가 충만하게 채워졌어요. 대안적 삶을 위한 여정에서 다시 만나요. 사랑합니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196호(2018. 1. 22)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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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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