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편견 없애는 ‘물타기 연구소’를 설립하다 생생육아 칼럼







입양부모들의 우려 중 하나는
'우리 아이가 입양 사실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 어쩌나?'하는 것이다.
실제로 초등 2학년 때 다엘의 학급 아이 하나가
'네 엄마가 너를 돈 주고 사왔지?'하고 다엘을 놀린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다엘의 학급에서 입양수업을 하게 되었다.
수업의 첫 장면을 옮겨와 본다.

 

 입양수업.jpg » 대안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했던 입양수업 

 

먼저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다엘이 우리 집으로 오기 전에 우리 가족은 입양가족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아니었다고 아이들이 답했다.
“그럴 것 같지? 근데 우리 집은 다엘이 오기 전에 이미 입양가족이었어.”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의 할머니, 즉 다엘의 증조할머니는 입양된 분이었거든.
그러니까 다엘이 오기 전에도 우리 가족은 입양가족이었고,
입양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지 몰라.”
아이들은 ‘아, 그렇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물었다.
“이중에 다엘 말고도 입양된 친구가 있을까?”
없다는 대답에 다시 질문했다.
“그럼 엄마 아빠 중에 입양된 분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고 하여 또 물었다.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는?”
잘 모르겠단다.
“너희들 가족 중 누군가 입양된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있을 것 같다고 아이들이 입을 모았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입양가족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나니,
이산가족 상봉처럼 손 잡고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후 나는 입양을 말할 때 ‘물타기’가 매우 중요한 전략임을 알게 되었다.
‘물타기’라는 말은 주식 거래방법을 말하는 경제용어에서 나왔는데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쓰인다.
‘사람들의 주의를 사건의 핵심을 벗어난 사항이나 다른 사건으로 끄는 행위’.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서 뭔가 꼼수를 부린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편견이 많은 사회에선 핵심이라 부르짖는 어떤 것에 대해
한 발 비켜서서 비틀어 생각할 때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저 애는 입양아야’, 이런 시선에 물타기를 하면
‘우린 모두 입양가족이야’ 라는 근사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리적 조건 등에서 비롯되어 숱한 침략전쟁에 시달려왔고
임진왜란 때 전체 인구의 1/3이, 한국전쟁 때 백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런 역사 속에 전쟁 중 부상자와 이산가족, 부모가 사망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입양은 매우 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예로부터 대를 잇기 위해 입양했던 경우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21세기 오늘날의 대한민국 입양부모 중에는
공개입양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 몸 속에 도도히 흐르는 것은 입양인의 피다.
누구나 근본적으로는 입양된 자가 아닐 수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당연한 얘기를,
너와 나의 피를 집요하게 구분하는 의미로 활용하는 세태에 대해
본격적으로 물타기를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가 속한 입양가족 모임의 구성원들은
우리 모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자고 합의했다.
장소는 동네 카페,
새로운 출발이라는 중차대한 소식을 접하고
늘 그랬듯이 달랑 세 명의 인원이 속속 집결하였다.
차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일사천리로 연구소의 명칭과 설립 취지를 정하고
임원 선출 과정을 마쳤다.

 

세 명 모두 중책을 맡게 된 우연(?)을 서로 축하했다.
먼저, 뛰어난 통찰력과 혜안으로 입양계의 괴수로 우뚝 선 연구소장,
입양의 참된 의미를 홍보하는 지혜와 냉철함을 두루 갖춘 홍보국장,
젊은 두 임원을 받들며 연구팀을 진두 지휘하는 연구팀장.

 

진두 지휘할 팀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작은 흠이지만,
유일한 팀원이자 팀장을 맡은 내가 각오를 발표했다.
‘앞으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 회원들을 선별 영입하여 방대한 연구를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여, 향후 지나치게 많은 후원금이 답지할 것이 염려되어
‘과한 후원은 사양한다’는 아름다운 문구도 발기문에 추가하였다.

 

물타기연구소2.jpg » 입양 편견 철폐를 위해 새롭게 ‘물타기 연구소’를 설립하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 들어와서 차를 주문했을 때,
주인장께서 ‘차가 너무 진하면 물을 타서 드시라’며
뜨거운 물을 추가로 내온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물타기’는 우리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연구소는 온 우주의 기운이 도와서 설립되었다.
동네 공부모임에서 진일보 했으니 이래서 이름이 중요한가 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에 담긴 미신에 대해,
지속적이고도 힘차게 물타기를 하자는 각오를 나누었다.

 

앞으로 ‘물타기 연구소’를 통해 입양 관련 연구의 혁혁한 성과가 쌓이고
대한민국 입양계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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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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