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대로 거두리라 생생육아 칼럼

다엘은 할머니와 참 많이 닮았다.
특히 자기주도적인 면.
요즘 조손 간에 부딪치는 일이 너무 잦아서
내가 마음 수련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늦은 시간에 샤워를 하고 나오니
다엘이 눈물을 씻고 있었다.
엄마 기다리면서 메디컬 다큐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TV를 끄셨단다.
“빨리 자라! 이제 엄마 없어도 혼자 자야지!”
할머니의 이런 강압적인 태도에도 화가 났지만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한참 재미있게 보는데 꺼버리자
서러움이 폭발한 것이다.

 

반항심이 날로 커지고 있는 다엘은
울분을 풀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날 잠자리에 누워서 자신의 신묘한 아이디어를 말했다.
“엄마, 할머니도 늦게까지 TV 보시는 거 건강에 안 좋지?”
“그렇지.”
“그럼 내가 가서 꺼버릴까? 얼른 주무시라고.”
“그래도 할머니한테는 TV가 낙인데 그럼 안 되지.”
곰곰이 생각하던 다엘이 말했다.
“누전 차단기를 내려 버릴까? 한참 TV 보다 꺼지면 얼마나 속상한지 아시라고.”
말도 안 된다고 했던 나도 차츰 감정 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다엘이 살금살금 나가서 현관의 누전차단기를 내렸다.
긴박감에 오그라드는 몸과 킥킥대는 웃음을 참으며 다엘은 얼른 이불 속에 숨었다.
잠시 후, 할머니의 목소리,
“정전이 됐나 보다! 어떻게 된 거지?”

 

다엘은 어설픈 연기를 하며 잠자다 깬 듯 방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 내가 외쳤다.
“누전 차단기가 작동했나 보네. 다엘, 라이터 좀 갖고 와!”
당황하니 말이 헛나와서 손전등을 라이터라고 한다.
차단기를 올리고 다시 전기가 들어오는 걸로 상황 끝.

 

잠시나마 할머니를 궁지(?)에 빠트린 다엘의 소심한 반항에
내가 함께한 건 과거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엄청난 성취욕으로 자식들의 삶을 디자인했다.
사춘기 때 오빠와 동생은 나름의 격렬한 반항기를 거쳤지만
나는 숨죽이고 순종하는 쪽이었다.
반전은 나이 들어 시작됐다.

 

성장기에 제대로 반항하지 못했던 나는
아이를 키우며 때늦은 공격양상을 드러냈다.
자꾸 다엘에게 제재를 가하고 훈계하는 어머니에게
스스로도 예기치 못한 격렬한 분노를 느낀 것이다.

 

어머니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공부에 대해서
나는 다엘에게 강조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거라기보다 무의식적 저항 탓이었다.
다엘이 유치원에서 어깨 너머로 한글을 깨우치는 동안
집에서도 좀 가르쳐 보려고 마주 앉으면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밀려들었다.
해결하지 못한 내 성장기의 과제가 아이의 양육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맞서 싸우기엔 어머니가 너무 노쇠하고 힘이 없었다.
내 어린 시절 기세 등등했던 ‘젊은 엄마’는 사라졌다.
다엘에게 틈틈이 말한다.
할머니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 옛날식 생각을 버릴 수 없으니
다엘이 이해하라고.
엄마 어렸을 땐 할머니한테 비 오는 날 먼지 나듯 맞으며 컸다고.
다엘에겐 별로 와닿지 않는 얘기였다.

 

13세!
수많은 학자가 이들의 독특한 행동양상에 대해 연구했던 문제의 나이.
여기에 도달한 다엘은 매우 정확하게 변하고 있다.
요즘은 할머니보다 한술 더 뜨는 행동을 하며 말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식사하시라고 불러도 TV삼매경에 빠진 할머니를 보고는
TV를 뚝 꺼버리며 다엘이 외친다.
“식사! 식사! 빨리 오세요. 밥 다 식어요!”
그럼 할머니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나오신다.
식탁에선 할머니 밥그릇에 계란찜을 푹 떠서 얹으면서 말한다.
“골고루 드세요. 편식하면 키도 안 크고 건강에 안 좋아요.”
“노인이 무슨 키가 큰다고 그러냐. 넌 아이니까 많이 먹어야지.”
“할머니는 노인이니까 많이 먹어야죠!”

 

내가 끼어든다.
“다엘 말이 틀린 거 하나 없네.
노인이라고 해서 키가 안 큰다는 법칙은 없어요.
법칙이 있다 한들 항상 예외도 있는 거예요.”
다엘과 내가 연합하여 할머니께 소소한 반항을 하면서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빨리 먹어라, 얼른 자라, 어서 공부해라…’
쫓기는 심정이 가득 담긴 할머니의 이런 말들,
전쟁세대의 불안을 이해하면서도
다엘에게 필요한 건 단지 바라보고 웃어주는 것이다.
나 역시도 변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아이에게 내 말이 가서 닿지 않고 튕겨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길어지려 한다.
그럴 땐 아차,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지켜야 할 것은
짧고 강하게 말하기,
부연 설명 하지 않기.

 

자아가 여물고 있는 소년으로, 청년으로 크고 있는 다엘,
잘 자라줘서 고맙다.

 

다엘 할머니 엄마.jpg » 작년 뉴질랜드에서 다엘과 할머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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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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