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입양되지 않았다면..." 생생육아 칼럼

내 사랑 다엘

“나도 입양되지 않았다면…”

시설 퇴소 청년들의 열악한 삶

제1187호
 
‘선한 울타리’ 대표 최상규씨. 정은주
 

예전에 다엘이 아기 때 있었던 보육원 수녀님에게서 들은 얘기다. 정성껏 아이들을 키워 8살이 되면 다른 시설로 보내는데, 그 아이들이 가끔 찾아온단다. 옮겨간 시설에서 형들에게 맞아 상처 난 아이의 얼굴과 헌 옷, 헌 신발을 보면 가슴이 아파 이것저것 먹이고 위로한 뒤 돌려보낸다고 했다. 이곳도 자신이 몸담을 데가 아님을 알고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수녀님은 먹먹한 마음을 전했다.

 

입양되지 않았다면 내 아이가 만 18살까지 살아야 했을 시설 생활, 이후는 어떨까? 퇴소할 때 받는 정착금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최대 500만원 남짓이다. 개인 후원금을 합쳐도 월세방 하나 얻기 어려운 돈으로 세상에 나가야 한다.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단체인 ‘선한 울타리’의 운영자 최상규씨를 만났다. 그는 2015년 시설 퇴소 청년을 위한 지원단체를 설립해 멘토링, 취업·주거 지원을 해왔다. 최 대표가 털어놓는 속사정을 들으니 참담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시설에서 퇴소한 아이들은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해도 몇 달이 지나야 입학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 학기 동안 빚내어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니 공부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소년소녀가장 전세임대 지원도 아이들이 다가가기에는 절차가 까다로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많은 경우 친권을 포기하지 않은 부모 때문에 임대주택 지원도 못 받으니 결국 비싼 월세방이나 고시원을 전전한다. 최 대표는 차라리 아이들이 원가정과 단절돼야 자립이 쉬워진다고 했다. 부모가 친권을 포기하지 않다가 아이가 퇴소할 때 나타나 권리를 주장하거나, 심지어 정착금을 착취하고 연락을 끊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이 그리운 아이들은 부모에게 모든 것을 덥석 맡기곤 한단다. 부모가 아이 양육을 국가에 넘긴 뒤 최소한의 의무 이행도 하지 않을 때 외국처럼 친권 박탈을 하는 게 상식 아닐까? 부모의 존재가 때로 아이들의 입양이나 자립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혈연 타령을 할 것인가.

 

시설에서 퇴소한 청년들은 자기 신분을 노출하거나 사회 전면에 나서는 걸 극도로 피한다. 그 결과 이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이익단체도 거의 없다. 다른 소수자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을 감수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최상규 대표는 입양가족이다. 그의 딸이 시설 퇴소 청년들의 삶을 알고 난 뒤 “나도 입양되지 않았다면 그들처럼 힘들게 살 뻔했다”고 말했다 한다. 딸의 말을 듣고 그는 더욱 이 일에 매진하고 있다. 정부의 국민 소통 창구 ‘광화문1번가’에 시설 퇴소 청년을 위한 적극적인 복지 정책을 제안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가 숙여졌다. 내가 감당하기 버거워 외면했던 현실을, 누군가는 손에서 놓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그의 짐을 나눠 져야 마땅하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187호(2017. 11. 20)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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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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