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이 새벽 달빛에 검광을 번쩍이며 달려든다. 얼굴 위로 내려오는 검을 피하며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 거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에 떨어진다.” 영화 대본이 아니다. 무협 소설의 일부도 아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자신의 자서전인 <백범일지>에 쓴 일본 경찰을 제압하는 장면이다. 칼을 쥐고 달려드는 일본 경찰은 아마도 무술을 단련한 검도 유단자였을 것이다. 그런 일본 경찰을 백범은 맨손으로 제압하고 3개월 뒤 체포된다.

 백범은 여관에서 마주친 이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자객이라고 여기고 ‘선빵’을 날린다. 그 선빵은 주먹이 아니라 발길질이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큰 호령과 함께 그 왜놈을 발길로 내질렀다. 그 놈은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단 아래로 떨어졌고, 나는 쫓아 내려가 왜놈의 목을 짓밟았다.” 백범은 발로 내지르고 밟았다. 이렇게 내지르고 밟는  것은 택견의 주된 발 공격술이다. 실제 택견의 초대 인간문화재인 송덕기(1893~1987)는 생전에 백범이 택견의 고수였다고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 택견 경기에선 반칙 기술

 조선의 보부상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익힌 택견은 지금의 스포츠형 택견이 아니었다. 생사를 겨루는 택견이었다. 그 택견을 ‘옛법 택견’이라고 부른다. 황인무(40)씨는 옛법 택견의 고수이자 지도자이다. 칼을 들고 죽인다고 덤비는 일본인 경찰을 무기 없이 맨몸으로 때려잡은 백범의 기상을 잇는 강한 택견이다.

 옛법 택견의 기술을 보자. 먼저 손 기술. 코침주기는 손바닥으로 얼굴 정면을 내려 찍기. 낙함은 손바닥으로 턱을 내려찍기. 턱걸이는 손바닥으로 턱을 쳐 올리기. 줄띠잽이는 손가락으로 상대방 목줄을 움켜잡기. 활개뿌리기는 손을 편 채 손등으로 상대방 얼굴을 후려치기. 발기술은 좀 더 살벌하다. 곧은 발길질은 발가락을 구부린 채 상대의 복부를 마치 창으로 찌르듯 직선으로 내지르는 기술이다. 송덕기의 스승이자 조선말 전설적인 택견꾼인 임호는 이 발길질을 제대로 하면 상대의 내장이 터진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꿈치찍기는 허벅지를 뒷꿈치로 감아 공격하는 것이고, 깎음다리는 무릎을 쓸어내리듯 내리찍어 관절을 절단내는 기술이다. 허벅지를 밟고 뛰어 올라 상대의 머리를 팔꿈치로 내리찍는 기술과 머리 위까지 밟고 올라 뛰어 넘으며 두발로 공격하는 ‘두발당상’도 있다.

 두 손을 빠르게 회전하며 쉼없이 손날 공격하는 ‘도끼질’과 주먹을 짧고 빠르게 내지르는 ‘장못치기’ 역시 옛법 택견의 필살기이다. 지금의 택견 경기에서는 하면 안되는 반칙 기술들이다. 택견 경기에서는 주먹을 질러서도 안되고, 발을 들어 곧게 차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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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복 아닌 평상복장으로 시범

 송덕기의 제자로 결련 택견협회 회장인 도기현 씨로부터 옛법 택견을 전수받은 황씨는 외모는 평범하다. 어릴 때 몸이 매우 아팠다. 고관절에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인 무혈괴사증을 앓았다. 왼쪽과 오른쪽 다리의 길이가 무려 7㎝나 차이가 났다. 두 다리를 모두 깁스한 채 6개월을 누워 지냈다. 일곱 살 때였다. 마음껏 뛰노는 또래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하지만 부모님의 정성으로 기적적으로 나았다.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 때 처음 달리기를 했다. 놀랍게도 1등을 했다. 운동이 좋았다. 중학교에 올라가 레슬링부나 야구부에 들어가서 운동하고 싶었지만 어머님이 극력 반대했다. 질병의 재발을 걱정한 탓이다. 몰래 동네 복싱 체육관에 다녔다. 어머니에게 들켰다. 사흘간 밥도 안 먹으며 졸랐다.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고교 2년 때 도내 복싱 신인선수권대회에 나가 우승을 했다. 하지만 복싱은 감량의 고통이 심했다.

 우연히 택견을 봤다. 배우고 싶었다. 수소문해서 도장을 찾아가 택견을 배우기 시작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택견 지도자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액션 영화배우의 길도 모색했다. 청소년기에 자신을 흥분시켰던 이소룡, 성룡, 장 클로드 반담처럼 무술을 멋진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독립영화에도 출연했고, <연평해전>, <하루>의 상업영화도 출연했다.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로 연극 무대의 주연으로도 활약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무술을 디자인하고, 직접 연기를 해서 몇 편의 단편 영화도 제작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결련 택견 도장에서 옛법 택견을 지도한다.

 “택견은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성행하고 전수된 우리 무예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서기 위해선 현대적 감각의 몸짓이 가미돼야 합니다.” 황씨는 도복이 아닌 평상복장으로 시범을 보였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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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룡이 중국 무술 알렸듯이

 황씨는 매일 오전과 오후 합쳐서 4시간의 개인운동을 한다. 그 가운데 오전은 손 단련 운동을 한다. 사실 그의 두 손은 무서운 무기이다. 손등과 손바닥, 팔뚝 등 손 전체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강하다. 일반인들의 두 배 정도 손이 두껍다. 그는 손등을 내리쳐 자동차 앞 유리를 깬다. 자동차 앞유리는 일반 판유리 사이에 강한 인장강도를 지난 합성수지 필름을 넣어 가공한 특수유리이다.  황씨는 또 손등으로 대리석을 떡 자르듯 절단한다. 1.5㎝ 두께의 대리석 3개를 겹친 채 격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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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씨는 지난 15년간 손을 단련해왔다. 생나무에 손등과 손날, 손바닥과 팔뚝 안쪽과 바깥쪽을 각각 500번씩 부딛쳤다. 두 손을 모두 하면 5천 번. 살갗이 터지고 아물고를 반복했다. 처음엔 2시간 30분 걸리던 수련 시간이 지금은 6천 번 부딛치는데도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격파는 결코 옛법 택견의 수련 과정의 전부가 아닙니다. 저 스스로 만족을 얻기 위한 수련일 뿐입니다.”

 그는 이미 독일, 프랑스,미국 등에서 세미나를 통해 옛법 택견을 시범보였다. 그는 한민족의 택견을 세계적인 무술로 만들기 위한 택견 무술 영화 제작을 꿈꾼다. 마치 이소룡과 성룡이 중국 무술을, 토니 자가 무에타이를 세계적인 무술로 전파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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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동영상 결련택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