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청산선사 6/도인열전 도인열전

국선도 청산선사 6/정각도(正覺道) 수련

 중기단법(中氣丹法)을 수련하다
 
청산이 노인에게 끌려가다시피 하여 처음 도착한 곳은 저녁 무렵 속리산의 어느 작은 바위굴이었다. 먼 길을 걸어 피곤하여 바로 잠에 빠질 만도 한데 어린 청산은 무서움과 두려운 마음에 잠은커녕 기회를 봐서 도망칠 궁리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고, 동이 틀 무렵 소변을 본다고 하고 도망을 치려고 했으나 별안간 노인이 산이 무너질 것 같은 큰소리로 “너 어디 가느냐? 이리 오너라” 하고 호령하여 두려운 마음에 포기하고 다른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아침이 되어 밥을 받아보니 말로만 듣던 생식가루였다. 어린 청산은 실망과 함께 못 먹겠다고 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앞으로 먹을 것은 이것밖에 없으니 우선 이것 먹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못 먹겠으면 물이나 마시고 그만두어라. 며칠 굶으면 이것도 맛있게 먹을 터이니.”
 청산은 절망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으므로 다시 기회를 봐서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로 청산은 며칠 간격으로 기회다 싶으면 도망치기를 세 번이나 했는데, 그때마다 노인이 앞에 나타나 길을 막아서 되돌아오게 되었다. 
 한번은 노인이 없어서 하늘이 준 기회다 생각하여 먼 거리까지 도망쳐 하산한 줄 알았는데, 노인은 먼저 와 길을 막아서고는 빙그레 웃었다. “소용없는 생각 말어. 못 가게 되어 있는 거야. 어서 올라가자.”  
 결국 청산은 하산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념은 결심으로 변하여 노인이 가르쳐주는 것을 배워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먼저 산 생활에 적응하려면 생식에 적응을 해야 했다. 청산은 노인이 주는 대로 생식을 하다가 차츰 스스로 생식을 구하여 먹게 되었다. 생식으로는 주로 칡, 산콩, 솔잎, 풀뿌리 등이 쓰였고, 대부분 가루를 만들어 보관해두었다가 먹었다. 이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옷은 다 떨어지고 해져서 더 이상 걸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짐승의 가죽으로 아래만 가리고 다니게 되었고, 또 산 생활에 적응되다 보니 옷은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어느덧 몇 개월이 지나가는 데도 노인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청산은 단조로운 시간만 보내게 되어 여러 번 질문을 드렸지만 언제나 대답은 한결같았다.
 “생식에 자신이 생겼느냐? 여기 정좌하고 가만히 앉아 있거라. 아무 생각 말고, 마음이 완전히 비워져야 다른 무엇이 들어갈 것 아니냐. 잡념이 시시각각으로 마음에 떠오르면 아직 먼 것이다. 부모 생각, 세상 생각, 허연 밥 생각, 뜨뜻한 이불 생각, 돈 생각, 집 생각, 그런 것들이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공부는 그런 것 없이 하는 공부가 첫째야. 도(道)는 무슨 도이건 허심(虛心)과 공심(空心)에서 출발하는 거야. 그리고 네 생각, 네 판단, 네 고집 같은 네 모든 것도 다 없어져야 해. 그런 후에야 하늘의 법(法)이 네게 들어오는 법이거든. 아무 소리 말고 눈 감고 고요히 앉아 있어. 때가 되면 내가 알아서 모든 것을 가르쳐줄 터이니까.”
 이렇게 어느덧 1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고요히 앉아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1년간은 몸과 마음을 더욱 깨끗하게 하는 기초 훈련으로, 큰 도를 이루기 위한 아주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어느 날 노인은 청산에게 ‘들머리나라’라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도화(道話)라고 한다. 오랜 옛날 들머리나라에 세단 도사라는 분이 젊은이들에게 국선도법을 가르쳐서 도를 이루고 훌륭한 인물들이 되어 외적의 침입을 막고 나라를 구했다는 내용이었다. 노인은 들머리나라 이야기를 다 들려주고는 밖으로 나오게 하여 몸을 골고루 움직이게 한 후에 처음으로 호흡법을 가르쳐주었다.   
 “고요히 앉아서 모든 생각을 다 버리고 돌단자리 숨 쉬는 것을 배워라. 숨을 들이쉴 때는 배꼽 아래만 나오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배꼽 아래가 들어가게 하면서 부지런히 계속하여라. 숨을 들이쉴 때 마음으로 수를 다섯까지 헤아리고, 내쉴 때 여섯부터 열까지 헤아려라. 수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헤아려라.”
 청산은 이제야 돌 깨는 법을 가르쳐주시나 보다 하고 돌 깨려는 욕심에 한참을 하니, 잘 되기는커녕 배만 아프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그만두고 싶었다. 
 “아직도 욕심이 가득하구나. 배가 아픈 것은 욕심이 있어서 힘을 주어 하늘기운을 들어갈 곳 없이 받으려 하기 때문에 아프고, 오만가지 생각은 또한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니 한 가지 욕심이 생각으로 바뀌고, 생각은 또 생각을 낳아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나는 것이니 그 욕심을 부리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은은하게 하여라. 그러면 오만가지 생각도 없어지고 배도 아프지 않다. 어서 해보아라.”
 할 수 없이 다시 앉아서 했지만 계속 잘 안 되었다. 차라리 숨을 입으로 내뱉으니 후련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한참을 하고 있으니 노인이 다시 말했다. 
 “누가 입으로 숨을 쉬라고 했느냐? 입은 음식이 들어가는 곳이고, 코는 숨을 쉬는 곳인데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어떻게 힘을 얻어 갖겠느냐? 입은 사람이 거칠게 살다가 마지막으로 죽어 갈 때나 입으로 쉬는 것이니 앞으로는 절대 입으로 숨을 들이쉬지도 내뱉지도 말아야 한다. 입은 다물고 눈은 지그시 감고 조용히 앉아서 하여라.”
 이렇게 여러 날 동안 숨쉬기를 하였는데 청산은 잠깐 잠깐씩만 하고 그만두었다.
 그러다 하루는 노인이 칡줄기를 가져오라고 하여 갖다 드리니, 커다란 나무 위에 칡줄기를 걸고 청산의 발을 묶어 거꾸로 매달고 아랫배 숨쉬기를 하라는 벌을 주었다.
 그동안 가르침을 게을리 한 것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것은 참기 어려운 벌이었다. 벌을 받은 이후부터 청산은 열심히 수련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인을 스승님으로 부르고 모시게 되었다. 
 매일같이 이렇게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마음속으로 수를 헤아리지 않아도 스스로 숨을 들이쉴 때나 내보낼 때나 한결같이 고르게 잘 되었다.
 노인은 “이제는 이런 동작들을 하면서 숨쉬기를 하여라” 하며 쉰 가지 동작을 가르쳐주며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청산은 이렇게 국선도의 기초 단계인 중기단법을 1년 동안 하루에 8~10시간씩 매일 수련하며 보냈다. 나이도 어리고 깊은 산중에서 훌륭한 스승에게 일대일로 배우니 심신(心身)의 변화가 무척 다양하고 빨랐다. 
 힘이 다소  나는 것 같았으나 그간 몇 차례 대소변이 나쁘게 나온 적도 있었다. 또는 머리가 몹시 아픈 적도 있었고 손발에 힘이 없고 저린 적도 있었고 몸이 떨릴 때는 끝난 후 기분은 좋으나 힘이 더 빠지는 것 같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손발이 차고 자다가 손발에 마비증세도 있었고 어느 때는 자다가 악을 쓰기도 했었다. 또 수련 중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앞일이 훤히 내다보이기도 한다. 얼마간 배꼽 밑이 흔들리다가 그치고 그쳤다가는 또 흔들린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차례가 지나가도 개의치 않고 계속숨쉬기를 하니 눈에 보이는 것도 없어지고 때로는 드문드문 나타나기도 하고 아주 안 나타나기도 하고 나중에는 수정같이 푸른 물이 고인 웅덩이 같은 것도 나타난다.
 수련중반쯤 부터는 몸도 아주 부드러워져서 어떤 몸을 하고도 숨이 고르게 잘 쉬어지고 마음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맑은 샘물같이 맑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배꼽 아래가 더워지고, 떨리기도 하고, 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지난 일들이 다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들이 궁금하여 스승님께 여쭈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배꼽 아래가 떨리는 것은 네 몸이 이제야 가운데를 잡는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날 그런 것이 올 것이다. 가운데 기운이 움직여야(中氣의 運用) 비로소 너는 ‘단’의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이란 하늘의 기운과 네가 구해다 먹은 땅기운이다. 배꼽 아래에는 단자리(下丹田)가 있어서, 이 단자리에 그 두 기운이 돌돌 모이게 되어 돌단자리라 하는 것이고, 나중에 모든 단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여러 가지가 보이는 것은 네가 아직도 마음이 맑은 물과 같이 깨끗하지 못하여 마음이 흔들리어 나타나는 것이니 더욱 잡념을 버리고 그런 것이 앞으로 수없이 나타나도 아무렇게 생각지 말고서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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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은 중기단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스승님의 사부님을 뵙게 되었다. 이분의 입에서 스승님이 안동 분이시고, 본명은 이송운(李松雲)이시며, 산에서는 청운도인으로 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청운도인의 사부님은 충청북도 분이시고, 본명은 박봉암(朴奉岩)이시며, 모두들 무운(無雲)도인으로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스승님의 가르침과 수련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무운도인의 모습은 연세가 청운 스승님보다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더 젊어 보였다. 청산은 이분을 산중수련 중에 여러 차례 뵙게 되었는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어보면 언제나 자상하게 설명해주셔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매일 꾸준히 중기단법을 수련하던 어느 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야 겨우 마음을 고르고(조심·調心) 몸을 고르고(조신·調身) 숨을 고르는(조식·調息), 곧 네 마음으로 네 몸을 움직이는 첫 문에 들어섰으며 이 가운데 아래 단이 모이는 곳(下丹田)인 돌단자리는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모여 사람 힘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창창하다. 이제 그 길로 쉬지 말고 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으로서 똑바로 가는 길이야. 알겠느냐?”
글 진목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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