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과 태허를 느끼자, 가새잡이로 수련,지금 여기서

수련 지금 여기서/가새잡이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 손을 합장하여 가슴 앞에 두고 잠시 눈을 감아 보자. 어깨에 힘을 풀고 마음을 비우면서 천천히 입허(入虛)의 상태로 나아간다. 마음속에서 맑고 고요한, 너른 공간이 펼쳐진다. 그 공간은 비어있지만 한편으로는 근원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다. 큰 바탕을 이루는 힘은 모든 것을 품을 만큼 크고 넓기에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 여기서의 고요함은 무기력한 침묵이 아니라 다투지 않는 자의 조용한 미소에 가깝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는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지가 발현되기 보다는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이 더 우세하다. 사실 그것은 적막하다! 생동하는 모습을 보고자한다면 흐름과 변화를 이끌어낼 최초의 동력을 부여해야만 한다. 힘들이 섞이고 꿈틀대면서 질료를 입고 구체적 현상으로 표출되는 단계로 넘어가 보자.
 

다시 눈을 뜨고, 합장했던 손을 비벼틀면서 두 손끝이 이루는 각이 90도가 되도록 만들어보자. 한쪽 손등이 아래를 향하게 하여 아랫배 높이까지 지긋이 내리누르는데 이때 손바닥끼리 서로 밀어내는 맞심을 가볍게 준다. 충분히 눌렀으면 다시 힘을 풀고 손바닥을 붙인 채로 두 손을 비벼돌려 위치를 바꾼 다음 반대편 손등으로 누른다. 마지막 순간에는 펼쳤던 손가락을 감싸쥐면서 두 손을 꾸욱 맞잡는데, 이렇게 마주잡은 손모양을 가리켜 가새잽이라 한다. 가새란 엑스(X)자로 교차한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경상도에서는 가위를 가새라고 부른다). 가새잽이로 손을 맞잡는 순간 팔근육은 물론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면서 견고한 모습이 되는데 이는 맺음과 결실, 신념과 신뢰를 상징한다. 간절한 기도의 순간, 확신에 찬 제스처를 보일 때, 혹은 누군가 나를 믿어주기를 바랄 때 이처럼 손을 꽉 맞잡게 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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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이 영(0)에 수렴한다면 가새잽이는 무한한 변화를 예고한다. 손 모양에 익숙해졌으면 이제 흐름을 만들어낼 차례다. 원리는 간단하다. 검으로 베는 동작을 연상하면서 맞잡은 손으로 이리저리 그어본다. 칼날에 해당하는 손날쪽으로 베거나 그 반대쪽으로 걸어드는 것을 기본 움직임으로 삼고 가로, 세로, 하향 빗각, 상향 빗각 등 여러 방향으로 응용해보자. 자유롭게 시도하다가 괜찮은 움직임이 도출되면 그것을 표준화하여 반복하면 된다. 가새잽이는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움직임의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마치 예정된 철길 위를 달리는 것과 같다. 잘 들여다보면 무술적 움직임의 다양한 모습이 가새잽이의 흐름 안에 원초적 형태로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 개화되지 않은 꽃봉오리라고 할까. 움직임이 막다른 곳에 이르러 더 진전할 수 없게 되면 손을 바꿔 잡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열거나 들어갔던 방향의 반대로 빠져 나오면서 계속해서 흐름을 이어나간다. 손이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끊임없이 태극의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새잽이를 한자로는 태극인(太極印)이라고 쓰는데, 여기서 ‘인’은 각인시킨다는 뜻으로 태극의 기운을 몸 안에 새겨 넣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가새잽이 수련에서는 기운이 밖으로 발출되지 않고 압력밥솥처럼 내부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물 속에 들어갔다고 상상하고 스스로 일정량의 저항을 부과하면서 동작을 행하다 보면 몸통의 심부근육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데, 여기서 길러지는 두툼하고 질긴 힘은 유술(柔術)적 움직임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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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런히 모은 손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무극의 상태다. 큰 가능성을 머금고 평정을 유지하 던 마음은 때가 되었을 때 체화하여 그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있으며, 다채로운 흐름으로 펼쳐졌던 움직임 또한 때때로 근원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작은 이기심에 안착하거나 혹은 ‘트이지’ 못한 채 그저 닫힌 세계에서 바삐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따라서 태허와 태극, 이 둘은 항상 같이 있으면서 서로에게 존재의 실마리를 구하는 관계여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삶의 모든 장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글 사진 동영상/육장근(전통무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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