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는 소리가 없다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 27 /바른 말은 반대로 들린다/기침섬통배 氣針閃通背  

 

 

 

루슬요보를 행하여 나온 오른손의 장이 다섯 손가락이 모아져 일직선을 그으며 아래쪽 땅을 향해 내려가면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이것이 기침氣針의 동작이다. 마치 기로 형성된 침을 아래를 향해 내리꽂는 것처럼 한다. 양 무릎을 구부리며 동시에 허리를 일으켜 상체를 세우는데 두 손은 날이 밖으로 향해 있는 십자수의 모양이다. 이어서 왼발이 앞으로 나가며 상체가 왼발 쪽으로 기울어지는데 이와 동시에 왼손은 왼 어깨 앞으로, 그리고 오른손은 오른 가슴 위쪽으로 장심이 밖을 향해 나온다. 마치 아이가 까꿍하는 모습과 같다.

그리고 다시 허리가 우측으로 돌아 왼손과 오른손이 허리를 따라 돌다가, 다시 허리가 역회전하면서 오른손이 권으로 바뀌어 가슴 앞 쪽에 나와 선다. 왼손은 왼쪽 옆구리 쪽에 있다. 왼발에 체중이 실려있고 오른발은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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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섬통배氣針閃通背는 그 이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매우 예리하며 신중하고 집중력이 있는 초식이다. 앞의 표적을 향해 나아간 상태에서 아래쪽 땅을 향해 기의 침을 내리꽂는데 그 예리함이 땅에 꽂히는 것 같다. 마치 표창을 땅에 꽂는 것 같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기침氣針을 주욱 내려 긋는 것도 같다.

그런 다음에 오뚝이처럼 서서 왼발을 내딛으며 두 손을 휘저어 자세를 바꾸며 허리를 돌려나오는데, 그 품새가 번개같다고 해서 섬통배閃通背이다. 앞쪽으로 향했던 자세를 돌연 뒤로 바꿔서 뒤쪽을 치는 형세가 된다. 앞과 뒤를 동시에 보고있는 초식이다.

 

어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갖고 사물이나 일에 임하면 그것의 한쪽 면밖에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앞에 목표물이 있다고 여겨 앞을 향했으나, 이미 상대는 뒤쪽에 있다. 왼쪽이라고 여기고 취하려 하나 이미 오른쪽에 있다. 방향착오가 되는 경우들이다. , , , 타를 동시에 통합적으로 보고 유연함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니, 기침섬통배의 수련이 그와 같다.

 

잡념을 지우고, 사려가 없어야 하리

 

屛除雜念 병제잡념

無思無慮 무사무려 (태극구결)

 

보통 사람들은 단 한순간도 잡념이 없는 때가 없다. 전혀 원하지 않을 때조차 찾아오는 손님이 잡념이라는 불청객이다. 불교수행에서는 이 잡념을 번뇌라 하여 수행을 방해하는 마구니로 여긴다. 사려思慮란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이것도 번뇌와 한 종류가 되는 것이니,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수련하는 도중에 생각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깊게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생각이란 사물이나 대상을 나누어 달리 여기는 것을 능사로 하는 것이니, 그것을 말해 분별심이라 한다. 수행은 본연의 진리를 찾아들어가는 공부이다. 미리 갖는 생각, 즉 선입견이나 고정된 생각의 상에 붙들려 있으면 통찰력이 잘 자라지 않게 된다. 어떠한 고정된 상도 다 벗어 던지도록 요구되는 것이 수행의 바른 식이 된다.

 

그래서 선에서는 늘상 쓰는 말이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내가 부처다 하면 그것은 부처가 아닌 것이다. 내 말이 절대적이다 하면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에서 바라보고, 통찰하고, 사유하는 것, 그것이 선이기 때문이다. 임제 선사의 말이 요령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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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심히 대하다 보면 정이 반이 되고, 이 정이 된다. 사실 실재實在의 세계에서는 정도 반도 없다. 임시로 설정한 가유假有일 뿐이다. 그래서 환상幻想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는 알고 보면 환상 속에 살고 있다. 환상은 그 속에 빠져있으면 실재인 것처럼 여겨지나, 깨어나서 보면 비로소 환상이 된다.

 

조주 선사는 왕이 내방하면 그냥 가만히 원래의 처소에 앉아서 왕을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수행하는 대신이 조주가 너무 거만하지 않은가 하고 불평을 했다.

그 다음에 대신이 조주 선사를 찾아왔을 때는 조주 선사가 일주문까지 나가서 영접을 했다.

만일 조주가 또다시 그 전처럼 하면 봉변을 주려고 했다가 자기를 왕보다 더 극진히 받드는 것을 보고서 도리어 기가 꺾인 대신은 그리고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조주가 떠날 때 따라가 살짝 물었다.

전번에는 우리 군왕을 가만히 앉아서 맞더니, 제가 오니까 어찌하여 일주문까지 나와 저를 영접하십니까?”

대왕과 대신이 어찌 같겠습니까? 대왕은 높으니까 높은 데서 영접하고 대신은 낮으니까 저 아래 일주문까지 내려가서 영접합니다.”

그때서야 그 대신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우리가 선한 것을 선하다고만 규정하고, 불선不善한 것을 불선한 것으로만 말할 때, 노자는 이 둘이 상호 기대어 서로를 자기존재의 근거로 삼아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으로 보아 둘이 아닌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선한 자는 선하지 않은 자의 스승이요(善人者, 不善人之師), 불선한 자는 선한 자의 바탕(혹은 자양)이다(不善人者, 善人之資. 27).”라고 했다.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으로 말하면 선한 자는 영원히 선하고, 악한 자는 영원히 악하다. 그리고 선과 악, 이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 평행선이 될 뿐만 아니라, 선의 입장에서 악은 척결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공자는 정명正名을 말해 천하에 악이 없는 선한 세상을 자신의 이상으로 추구했으나, 노자는 정언약반正言若反을 강조해 정도 반을 통해서만 자기를 실현하고 궁극에 가서는 정도 반도 둘이 아닌(不二) 에 불과함을 설했다.

 

하늘 아래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없다.

그런데

단단하고 강한 것을 치는데 물을 이길 만한 것은 없다.

무엇으로도 물의 성질을 바꿔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이기는 것은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르는 이 없건마는,

능히 그대로 행하지 못하노라.

그러하므로 성인은 말한다:

나라의 온갖 허물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일러

사직의 주인이라 할 것이요,

나라의 온갖 상서롭지 못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일러

하늘 아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것이라 하였으니.

바른 말은 거꾸로 하는 말처럼 들린다.

天下莫柔弱於水, 천하막유약어수

而攻堅强者莫之能勝, 이공견강자막지능승

以其無以易之, 이기무이역지

弱之勝强, 약지승강

柔之勝剛, 유지승강

天下莫不知, 천하막부지

莫能行, 막능행

是以聖人云, 시이성인운

受國之垢, 수국지구

是謂社稷主, 시위사직주

受國不祥, 수국불상

是爲天下王, 시위천하왕

正言若反 정언약반 (78)

 

노자가 도를 은유하는 말로 가장 즐겨 쓰는 말이 인 것 같다.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했고 그 이유로, 물은 만물을 매우 이롭게 잘 하지만 싸우지 않는다(水善利萬物而不爭)고 말함으로써 싸우지 않음(不爭)’을 물의 중요한 덕성으로 꼽았다. 그리고 물은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함으로써(處衆人之所惡), 자신의 선을 이루어간다. 그렇게 되니 물은 거의 도에 가깝다(故幾於道. 8) 라고 써서 물에 대한 예찬은 절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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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서 노자는 물의 부드럽고 약한 특성이 오히려 강함을 이기는 공능을 발휘하게 되고,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로, 그 어느 것도 물과 대적하여 물의 성질을 바꿔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以其無以易之) 강조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이런 물의 덕성과 공능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도(天下莫不知), 그처럼 행하지를 못한다고(莫能行) 탄식한다. 세상 사람들이 물처럼 행하지 못한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위정자들이 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정치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물과 같이 자기를 비우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자신들의 욕망을 비워서 백성들 속으로 물처럼 스며들어가야 백성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심無心무위지치無爲之治이다. 무위지치란 바로 물과 같이 사심 없이 하심下心하여 아래에 처하는(處下) 다스림을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눈에 보이는 강함으로 강함을 이기는 것을 손쉽게 여긴다. 위정자가 요란한 정책들을 내세우며 휘황찬란한 깃발을 휘날리는 것, 이를 위해 막대한 재정적 수요를 공출하고 백성들의 노력을 동원하여 궁궐을 짓네, 성을 쌓네 하는 것들이 모두 강함으로 강함을 다스리는 정치이다.

노자가 보기에 왕과 귀족들의 하는 짓이 지나치게 명분을 내세우고 백성들의 피와 땀을 수탈함이 극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패권을 위한 전쟁을 일삼아 허다한 백성들을 희생시키고, 날이면 날마다 호화판의 잔치로 세월만 보내는 것이 참으로 개탄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그 영광의 뒤안에 있는, 혹은 전제가 되는 나라의 허물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묻는 뜻을 담아, 그렇게 나라의 허물을 한 몸에 받아들이는 자(受國之垢), 그리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한 몸에 받아들이는 자(受國不祥)가 진정한 사직의 주인이요(是謂社稷主), 천하의 왕으로서 자격이 있다(是爲天下王)고 역설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위정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의식과 삶의 방식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의 입장에서 노자의 말을 곱씹어 보면,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결정이 불러온 결과가 얼마나 엄중하게 되돌아오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탐욕스러움에 빠져 오직 돈돈하면, 그에 걸맞는 돈돈하는 지도자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생명과 평화, 그리고 참된 행복을 중시하고 자신들의 욕망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낮출 각오가 되어있다면, 역시 그에 걸맞는 지도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결국 지도자의 수준이 그 국민들의 수준을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되니, 우리 스스로의 앞길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의식과 행동일 수밖에 없다는 엄중한 뜻을 새기지 않을 수 없다.

 

정언약반正言若反이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쉬는 노자의 숨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 같다. 바른 말은 꼭 반대의 말처럼 들린다는 뜻이다. 노자는 세상 사람들이 허물()’이나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들(不祥)’이 오히려 도와 합치되고, 그러므로 세상살이에도 도움이 된다고 역설적 화법으로 얘기한다.

 

그것들이 무엇이던가? 비록 세상 사람들이 싫어한다하더라도 도를 체득한 성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늘의 덕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곡, , , , , , , , , , , , , , 불곡不穀 등등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듣는 귀가 없는 모양이다. 예수도 여러 차례 말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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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노자가 강조하는 덕성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정반대의 말처럼 들린다. 이것이 정언약반正言若反이다. 반대의 말로 바른 말을 완성시키는 것이 정언약반이다. 바른 쪽의 입장을 해체하여 반대편의 특성으로 스며들어감으로써 오히려 바른 쪽의 논리를 완성시키는 것, 그것을 말해 정언약반이라 한다. 노자의 언어쓰기는 대개 이런 식이다. 한번 찾아가 보자.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다(明道若昧)”

나아가는 도는 물러서는 것 같다(進道若退)”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 한 것 같다(夷道若纇)”

 

윗 덕은 아랫 골 같다(上德若谷)”

큰 결백은 욕된 것 같다(大白若辱)”

너른 덕은 부족한 것 같다(廣德若不足)”

홀로 서있는 덕은 기대어 있는 것 같다(建德若偸)”

질박한 덕은 엉성한 것 같다(質眞若渝)”

 

큰 사각은 각이 없다(大方無隅)”

큰 그릇은 이루어짐이 없다(大器免成)”

큰 소리는 소리가 없다(大音希聲)”

큰 모습은 모습이 없다(大象無形)”

크게 이룸은 결핍된 것 같다(大成若缺)”

크게 참은 비어있는 것 같다(大盈若沖)”

크게 곧음은 굽은 것 같다(大直若屈)”

큰 기교는 서투른 것 같다(大巧若拙)”

크게 말함은 어눌한 것 같다(大辯若訥)”

 

노자가 말한 반대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활동이다.(反者道之動. 40)”는 명제는 정언약반正言若反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반대편으로 되돌아감으로 그쪽까지 아우르는 것, 그것이 노자가 말한 포일抱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이라고 여기고 이를 추구하더라도, 역설적으로 그 반대편()을 향해 가서 나머지 한 쪽을 통섭함으로써 그 정이 완성된다. 도는 이처럼 한쪽의 모습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전함을 이루는 도를 표현하는 말이 바로 여기 정언약반이 된다.

 

글 사진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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